공감하는 시인으로 기억…마음의 치유 받았으면
[전남작가] 독학으로 등단 꿈 이룬 박은영 시인
서른 살에 시 입문 12년 도전 끝 신춘문예 당선 등단
집요하게 파고드는 자세로 퇴고 거듭 소설 창작 병행
"가장 쉬운 언어로 한 세계 제시…을의 목소리 응축"
입력 : 2022. 09. 15(목) 17:54
박은영 시인
문학을 포함한 미술과 음악 등 모든 예술 장르 창작인들을 만나보면 대개 어린 나이에 입문한 경우가 대다수다. 유년기부터 문화예술에 뛰어들어 기본기부터 익히면서 프로 예술가로 성장한다. 성인이 된 이후 시작된 예술의 길과는 다소 다른 결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기교육이 필요한 분야 역시 예술 파트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조기에 예술 입문한 것이 아닌, 30대가 돼서야 뒤늦게 입문하는 경우는 조기에 시작한 것보다 몇십배의 노력이 요구된다. 젊은 시절부터 풍파가 있던 삶은 차분하게 삶을 관조하며 어떤 한 가지에의 집중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세상이 흔들렸다기보다 자신의 삶이 심하게 흔들릴 때 예술 파트를 정상적으로 이끌고 나가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문학의 ‘문’자도 관심을 갖지 않다가 이른 나이에 겪게 된 결혼 그리고 이혼 등 삶의 풍파는 그에게 큰 생채기를 남겼다. 아이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자신이 없는 삶을 한때 감내하는 시간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시간제 보육교사와 피아노 강사, 식당 알바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상이 한동안 지속됐다. 삶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정도다. 힘겨운 삶과 사투를 벌이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시적 세계는 이런 자신의 굴곡진 삶과 삶의 그늘을 모두 껴안고 있다. 그는 고립돼 가는 삶을 다독이며 뒤늦은 나이에 문학에 투신해 꽃을 피운 경우다. 전남 함평에 머물며 시창작에 매진하고 있는 강진 출생 박은영 시인(47)의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듯 박 시인은 다른 예술인과는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다. 스승이나 지도교수가 없는 채 생활 속에서 스스로 터득해 시인이 됐다. 독학으로 신춘문예를 뚫었고, 시집을 펴내는 등 시인의 자리를 굳건하게 다졌다.

박은영 시인 첫 시집
박은영 시인 두번째 시집
삶이 흔들리면 사람들은 저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주변을 관망하기 마련이다. 어떤 이는 문화예술로, 어떤 이는 자격증을 취득해 전문직업인으로, 어떤 이는 신앙에 귀의해 종교인으로 살아간다. 각기 분화된 분야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널려 있을 터다. 박 시인은 문학에 도전해 시인의 삶으로 진입한 경우다. 이혼 후 아이를 혼자 키워내야 했기 때문에 서울과 경기도 등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오로지 생계 유지를 위한 사투에 함몰된 탓이었을까.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 무렵 그는 앞이 캄캄한 자신의 시간과 조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했다. 마치 해가 진 친정의 저녁 모습이 자신의 미래같았다고 술회했다. 이때 찾아온 것이 시(詩)였다고 한다. 그의 나이 30세 때였다.

그는 자라면서 한번도 문학을 꿈꾸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한번도 꿈꾸지 않았던 시를 꿈꾼 것은 결과론적으로 그에게 잘된 선택이 됐다. 자신의 흐트러진 삶의 기운들을 하나로 모아내고 새로운 에너지를 응축해낼 수 있는 것 역시 시가 열어줬다고 볼 수 있다.

시가 찾아오기 직전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동시를 쓴 적이 있었는데 칭찬을 들었고, 교내 소식지에 실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 선생님께서 ‘너는 시를 쓰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 기억이 그가 성인이 된 이후 시의 첫 출발점이 됐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그는 ‘시는 내게 보낸 동아줄’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내면서 먹고 살만큼만 일을 하되, 나머지는 글을 쓰는 데 투자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17년에 달한다. 짧지 않은 동안 습작의 시간을 살아온 셈이다. 끈질기고 집요하게 시의 샘을 파고들었던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결국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당선작 ‘발코니의 시간’)와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당선작 ‘인디고’)에 당선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2018년 문화일보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맨 오른쪽) 시인과 함께 한 박은영 시인(가운데)
당선 전 그는 막상 시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시인의 삶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10년 동안 시를 창작했고, 매년 쉬지 않고 신춘문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0년을 넘어서도 당선되지 않자 접을까 하던 때 당선이 됐다는 설명이다. 10년 동안 도전하면서 제주 한라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 단 한 차례 올랐을 뿐이다. 등단 후 2년째 되던 2020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첫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에는 제4·3평화문학상과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이 포함됐지만 대개는 등단 전에 쓰여졌던 미발표시들이 묶였다. 내용적으로 주변인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구사했던 첫 시집에 함께 수록된 신춘문예 당선작인 ‘발코니의 시간’과 ‘인디고’는 짱짱한 시적 결을 이루고 있다.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예비문학지망생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첫 시집은 열정을 다해 승화됐던 시들 중심으로 엮어졌다는 의미다. 두 번째 시집 ‘우리의 피는 얇아서’는 첫 번째 시집에서 보여줬던 틀에서 탈피해 시인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시들이 망라됐다. 여기서 ‘피’는 사람의 피라기보다는 만두 피로, 여러 음식재료들이 들어가 있는 안이 찢어질 듯하면서도 찢어지지 않는 모습에서 가족을 반추한 것이다. 가족이 찢어질 듯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려 한 것으로 읽혔다.

여기다 현시대 청년들이 찢어질 것 같은 삶을 안고 사는 문제 등을 반추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듯 했다. 주변인들보다는 언니나 당신, 우리, 그 모두가 시적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인의 시에는 가족을 위시로 한 삶이 투영돼 있다. 멀리서 시적 소재를 찾기 보다는 자신의 현재적 삶에서 끌어오는 방식을 취한다.

이재연 시인의 사회로 이창수 시인과 함께 한 ‘제10회 사이펀 문학토크’ 모습(왼쪽 세번째가 박은영 시인)
아직 구체적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추후 펴낼 세 번째 시집에서 그는 자신의 입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할 요량이다.

“나로 돌아오는 데 17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글을 쓴 이후 10년째까지는 신춘문예에 매년 도전했는데 계속 낙선을 하다 보니까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했죠.”

그는 시를 쓰면서도 소설 창작에 도전하고 있다. 2016년부터 소설을 창작하고 있지만 원고 하나를 50번 넘게 퇴고하는 과정을 거칠 만큼 집요하고 끈질기게 임한다. 이 끈질김이 박 시인을 추동하는 주요 에너지가 아닌가 싶다. 소설까지 창작하는 데는 시와 소설 두 장르 모두 만해 한용운처럼 경지에 오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만난 소설부문 심사위원이 만해 한용운이 시와 소설 등 두 장르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다고 했는데 그 말에 자극을 받았죠. 그러다보니 더 열심히 써야 했습니다. 단순한 것 보다는 어려운 쪽을 탐색하는 것을 선호해요. 파고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이에요. 겉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을 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시는 은유에 모두 담아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소설은 다 보여줄 수 있다는 시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약자들의 억눌림을 표현하는데 소설이 더 유리한 구석이 있어 병행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들려줬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인의 길에 들어섰고, 삶의 훈장처럼 따라다니는 여러 아픔들과 현재도 싸우고 있는 가운데 ‘어떤 시인으로 평가받고 싶냐’ 묻자 ‘공감하는 시인’이라고 답했다.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족들과 함께 한 박은영 시인
“공감하는 시인으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시를 읽고 독자들이 마음의 치유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저는 문학의 첫 요소가 읽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에서 독자와 작가가 만나 소통할 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보는데 시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해요. ‘시는 마음의 창’이라고 정의하잖아요. 이 정의를 빌려 끝까지 가지고 갈 거예요. 시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느낌과 감정, 정서에 시인의 영혼이 시에 담기는 거 아닐까요.”

이처럼 글자라는 무생물에 시인의 혼을 불어넣는 것이 시작(詩作)이어서 독자들이 단순하게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영혼을 읽는다고 여긴다. 그래야 독자의 허기를 채울 수 있고, 상처같은 것이 치유가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를 물었더니 ‘쉬운 시’라는 답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시가 단지 수식어로 꾸며지고 아름답게만 쓰여지는 것을 원치 않죠. 저는 가장 쉬운 언어로 한 세계를 보여줄까 해요. 현실의 부정이나 그늘 등을 시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싶어요. 가난을 소재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갑보다는 소수자와 약자 등 사회적 을들이 소리치고 싶은 것들을 글의 확장력을 활용, 시로 대신해 세상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응축시키고 싶어요.”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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