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센 연출의 창의성, 코러스의 상상력
[공연리뷰] 극단 파도소리의 ‘1948 여수’ 공연을 보고
김길수 연극평론가·순천대 명예 교수
입력 : 2020. 10. 27(화) 17:22
김길수 순천대 명예 교수
극단 파도소리의 연극 ‘1948 여수’(강기호 작·연출, 10월 24∼25일 여수시민회관)는 창의적 미장센 연출과 효과적인 마임 코러스로 무대 서사의 상상력과 추리의 연극성을 유도한다.

공연은 침묵과 응시, 집단 마임과 코러스 조합으로 시작된다. “저게 무얼까?”, “저 여인과 저 코러스와 집단 마임 언어에 숨겨진 속사연은 무얼까?” 연극은 추리와 상징 코드로 승부를 걸어 관심과 호기심을 유도한다. 일제 치하에서 짓눌리고 핍박당하는 문제 상황이 코러스 기호로 변용되면서 사유와 상상을 자극한다.

“일제 앞잡이들이 또 다시 경찰 노릇을 하다니”, 시민들은 분노하며 저항한다. 신탁, 반탁 이슈를 중심으로 청년들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된다. 이는 벽보 오브제, 집단 육탄전, 친구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전이 확장된다. 청년 성호(김정훈 분)는 단정, 단선 주장 시위에 참여하다 군에 입대한다. 그러나 대다수 청년들, 굶주림을 면할 요량으로 14연대 군인 모병에 참여한다. 모병 심사 과정에서 어이없는 지원 행동이 과장, 희화된다. 어른의 철부지 아이 행동으로 조롱, 조소의 해방 쾌감이 유도된다. 무거움이 순간 밝음으로 전환된다.

여순 참사 예고, 불안 조성을 향한 효과적인 암시와 보고, 속도감 넘치는 건너뛰기 구성은 지루함 희석과 더불어 극적 긴장 및 서스펜스 유도에 기여한다. 좌우익의 극단 대립과 무자비한 학살 상황은 개인에서 이웃으로 더 나아가 특정 그룹에서 또 다른 집단 간의 충돌로 전이 확장된다.

경찰의 횡포와 군인들의 반발이 극에 달할 즈음 제주 4·3항쟁 진압 명령이 떨어진다. 제주 동포 진압 명령, 점차 커져가는 거부의 몸부림, 14연대 봉기와 진압군의 공중 삐라 퍼포먼스는 긴장과 역동의 에너지를 발한다. 막무가내 식의 가담자 색출, 손가락질 방향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어야 하는가. 합리적인 재판 과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된다.

봉기 가담 혐의로 성호는 잔인한 고문과 린치를 당한다. 어이없는 사형 선고, 그의 마지막 발언은 불감증과 선입견에 찌든 이곳 우리를 향한 질타의 메시지로 들린다. 성호를 살리려는 연인 영숙(유아름 분)의 몸부림, 그녀의 애환과 가슴앓이가 현재 할머니(이서영 분) 영숙의 회상과 겹쳐진다.

코러스 선율이 회상의 상상력을 유도한다. 마음 속 과거가 살아나 말을 걸어온다. 기억의 공간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가. 죽은 자 역할의 코러스 배우들을 통해 부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상징 마임이 선율과 조화를 이루면서 기억 연극의 심미성이 우러나온다.

상징과 비움의 무대 장치는 다양한 장면 운용을 가능케 한다. 탄력적인 반응 시선과 서사 게스투스는 청춘들의 싱그러운 바닷가 낭만 풍경을 상상케 한다. 분할과 통합을 향한 좌우 대각선 움직임은 역광 라이트 전략과 더불어 말 걸기, 뒤 흔들기, 깨어나기를 향한 연출의 창의성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여순사건에 대한 편견 깨뜨리기, 이를 향한 짜임새 있는 사유극 구도,특별히 회상의 코러스 전략과 당대 문제 상황의 반복 축적은 발견과 눈뜸의 쾌감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우리네 공연 문화가를 주목케 한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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