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전라도에 길을 묻다]'고흥유자'로 해상제국 건설 기반 토대
<11>장보고 제국의 길-고흥
1386농가 554㏊서 4826t 생산…전국 60% '주산지'
비타민C 풍부 괴혈병 극복에 탁월…항산화 효과도
변함없는 충절·고된 수행 상징…귀한 진상품 헌정
입력 : 2018. 05. 03(목) 18:17
본문 음성 듣기
5월이면 피는 유자꽃- 기쁜소식을 알려주는 나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4년 전라도 고흥에서 ‘제1회 고흥유자축제’가 열렸다. 이제까지 어디에도 없었던 전국에서 처음이자 또한 세계에서 처음인 행사였다.

청해진제국의 원동력이었던 뱃사람들을 생각하는 장보고의 지혜가 고스란히 그 속에 담겨져 있다.

고흥군청 누리집에 따르면 “국내에 처음 유자가 들어온 것은 문성왕 2년(840년) 장보고가 당나라 상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도포자락에 넣어오다 우리나라 남해안에 도착할 무렵 풍랑으로 깨진 유자의 씨앗이 떨어져 번식됐다고 전해진다”고 적혀있다.

고흥에 유자가 어떻게 전파되었는가 하는 구전설화이다.

지리적 표시 제14호에 등록된 고흥유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1386여 농가가 재배면적 554㏊에서 4826t을 생산해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2004년에 산업자원부의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됐고 친환경 재배 인증면적이 늘어나면서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으로 국내 소비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및 유럽, 동남아 등에 수출하여 144억여 원의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840년이면 장보고가 한·중·일은 물론, 동남아까지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무역활동을 했던 때이다.

당시는 동력선이 아니라 바람의 힘과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이던 시대이다. 따라서 선원들의 건강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당시에도 원인을 알 수 없이, 말없이 죽어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뱃사람에게 치명적인 괴혈병 때문이다. 괴혈병을 이겨낼 방법이 없으면 해양제국은 유지될 수 없었다.

가공식품으로 유자의 활용도는 높다
18세기 대영제국은 해질 날이 없었다. 막강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괴혈병을 극복하지 못했다. 1780년대에 1600여 명의 병사가 죽었는데 그 중 60명만이 싸우다가 죽고 나머지는 전부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근대에 들어서야 비타민C가 부족해서 일으키는 병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이에 1795년 영국 해군은 의무적으로 함정에 레몬을 선적하고 식사 때 장병들은 항상 레몬이나 라임을 비롯한 과일을 먹게 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840년대의 장보고는 이를 미리 알고 유자를 항해에 이용했다는 것을 구전설화가 말해주고 있다. 배를 움직이는 뱃사람들이 괴혈병을 이겨내고 청해진제국의 번영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괴혈병은 해상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이었다. 비타민C의 개념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1930년대의 일이며, 비타민D 등 다른 종류의 비타민은 더욱 늦게 발견되었고 또한 지금까지도 논란이 있다.

‘비타민 신화’는 독일과 미국이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 당시 SS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주도 아래 비타민제가 보급됐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노벨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비타민 신화를 퍼트렸다. 그래서 지금은 뱃사람들이 괴혈병으로 죽거나 고생하는 경우는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먼저 장보고는 830년대에 유자를 통해 괴혈병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먼저 대항해에 나섰고, 세계최초의 해양무역제국을 건설했던 사람의 지혜가 그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라도의 힘이다.

강풍에 유자잎은 떨어졌어도 유자 열매는 나무에 매달려 그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
특히 1200년 전부터 재배되어온 고흥유자는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과 최적의 기후, 토양에서 재배되어 맛이 특유하며, 과실의 품질을 나타내는 얽음 정도가 타 지역 산보다 많고 색채와 향기가 뛰어나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성분으로는 사과, 배, 바나나보다 칼슘이 10배, 레몬이나 오렌지보다 비타민이 3배 이상 많이 들어 있으며, 항암성분(플라보노이드계)이 함유돼 있고 노화억제기능 등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항산화 성분이 있음이 밝혀졌다.

또 비타민A와 구연산이 많이 들어 있어 피로 회복과 소화액 분비를 도와줄 뿐 아니라 몸의 여러 기능을 조절하여 생리작용을 부드럽게 해주며, 항알러지, 항염증 및 기타 항균작용을 지니고 있어 체질개선 및 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 특성이 있다.

이에 고흥군은 풍양면에 난지과수시험장을 설치, 유자의 재배기술 및 품종개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9만여㎡ 규모의 ‘유자공원’을 아름답게 조성하고 ‘유자특산품전시판매장’을 개장해 고흥유자의 현장체험과 더불어 홍보 및 소비촉진 등 안정적인 판로기반을 구축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강풍에 유자잎은 떨어졌어도 유자 열매는 나무에 매달려 그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
다만 아쉬운 것은 유자의 전래시기를 840년이라 하면서 신라 문성왕을 문무왕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뢰도의 문제이니만큼 고흥군은 빨리 바로 잡았으면 한다.

장보고가 가져온 유자가 제사에 사용되었다는 역사기록은 여러 곳에 있지만 구체적인 재배기록은 1428년 세종10년에 상림원을 만들어 유자 재배를 명하고 있고 그 뒤에도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지원해주면서 권장했다.

조선시대에는 군역제가 시행되면서 백성들에게 유자나무를 8그루 이상 재배하면 군역(軍役)을 면제해주었는데, 착과가 되자마자 관원들이 나무에 달린 열매 개수를 세어 10월 수확 때 그 수량을 바치지 못하면 백성들이 변상해야 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이에 몰래 그 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초(胡椒)를 집어넣어 나무가 저절로 말라죽으면 대장에서 빠지게 된다. 그루터기에서 움이 돋으면 잘라버리고 씨가 떨어져 싹이 나면 보이는 대로 뽑아버리니, 이것이 귤과 유자가 없어지는 까닭이다…몇 십 년 안 가서 우리나라에 귤과 유자가 없어질 것이다”며 참귤사(斬橘詞)를 지었다고도 한다.

실학의 대가라고 알려진 다산 정약용, 그가 백성을 진심으로 생각했을까?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지만 진정으로 그는 전라도를 생각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현실 개혁적이 아니라 그는 왕권과 기득권층의 강화를 노렸을 뿐이다. 특히 양반과 노비로 구분되는 신분사회에서 그는 일천즉천(一賤卽賤)으로 노비의 양산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고흥군 한 농가에서 갓 수확한 유자를 손질하고 있다.
남구만과 이인로(파한집, 1659), 서거정(동문선, 1478) 등은 유자나무를 천노(千奴), 혹은 목노(木奴)라고 했다. 유자나무는 말없이 노비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건강도 챙겨주고, 체면도 세워주며, 충성을 대변하는 나무라는 것이다.

노비에 비교되었지만 그러나 유자나무는 변함없는 충절과 흔들림없는 수행을 상징하는 과일이다. 온갖 흔들림에도 변함없는 자세를 유지하는 수행자의 고행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 유자였다. 그래서 조공품이었고 진상품이었으며 귀하게 취급됐다.

그래서 백성의 고통과 아픔과는 별도로 유자는 최고의 덕목을 지닌 과일로 양반들의 사랑을 받았다. 고려 팔관회에 유자가 사용되었으며, 고려가 송나라에 조공하거나,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한 물품에도 유자가 있으며, 이순신이 유성룡에게 유자 30개를 보냈다고 한 난중일기 기록이나 효종이 윤선도에게 유자 2개를 하사한 것이나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에게 유자를 보냈다는 실록의 기록 등등을 보면 상당히 유용하게 쓰인 과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유자라는 과실 속에는 천년을 내다보는 장보고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음에는 꿈과 희망이 숨 쉬는 청해진제국을 실현하고자 장보고가 실제로 대규모 기마병을 동원해 ‘신라 경주 해방’에 나섰던 길, 아직은 생소한 전라북도 운봉을 걸어본다



유자의 활동도는 무궁무진하다
광남일보
특집 일반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광남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