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자연인 다예촌 나광호 촌장
입력 : 2016. 09. 04(일) 17:18
“차 마시며 불편 즐길 수 있으면 만사형통 할 수 있어요”



화순 전대병원 뒤 무등산 자락에 몸살림 생태 공간 조성

잠시 세상살이 근심 잊고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실천 주력

중국서도 운영…화순 옹성산·모후산에도 공간 조성 계획



 광주·전남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다. 마치 문명을 비껴간 듯하다. 그리고 웃자란 욕망으로 키재기를 하는 현대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욕망을 자연에 맡긴 채 육신과 정신의 비움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순 전남대병원을 끼고 산 하나를 넘고, 다시 산을 끼고 서성지 옆으로 난 길을 돌아 계속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행자들이라면 보통 정성을 들여도 단박에 찾기 힘들다.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찾기 어렵다. 적어도 그곳을 안내하는 이정표는 부재하다. 길을 잘못 들고 몇번을 왔던 길 다시 가고, 지나치지 말아야 하는데 지나치기 일쑤다. 내비게이션마저 길을 잃고 허우적대기 때문에 더더욱 찾기 어렵다. 강원도의 산악같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고, 오지 중의 오지라는 생각이 든다. 화순 전남대병원 뒤쪽에 이처럼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곳은 오간 사람만 깃들 수 있는 곳 같았다. 비가 후줄근히 내리는 날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고행아닌, 고행을 겪은 뒤에야 출입을 허용했다.

 전남 화순군 동면 서성리 23번지 산 자락에는 나눔과 소통의 쉼터 ‘다예촌’이 자리하고 있다. MBC 미술센터 이벤트 감독을 맡아 일하다가 아름다운 예비 은퇴자나 환자들이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쉼터를 모토로 촌장인 효산 나광호 대표(53)가 1998년 작업을 시작해 2001년부터 매입에 들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북 울진 출신인 나 촌장은 1990년대 중반 우연히 산책을 왔다가 서성리를 발견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

 ‘경상도 울진 사람이 2001년 이곳 무등산 자락 화순 전대병원 뒤 서성지 풍광에 미쳐 큰 병원과 가까운 곳에 가재, 다슬기, 반딧불, 별, 달, 운무, 석양, 다람쥐, 돌, 꽃, 나무…고수차, 물, 새, 솔바람, 소리가 행복한…도시민들의 쉼터 몸살림 생태 문화 공간 ‘휴심원’을 만들고자 터를 정함’(2014년 9월25일 쓴 글귀로 다예촌 안 명선가 벽에 부착된 글)이라는 글에 나촌장의 생각이 모두 들어있다.

 나 촌장은 다예촌을 몸살림 생태문화공간 ‘휴심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업하는 곳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몇명이 방문했는지 통계조차 없다. 다예촌은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지만, 또 누구나 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술담배를 할 수 없는 곳이다. TV와 컴퓨터도 없다.

 그저 꽃과 새, 바람과 달 즉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아름다운 경치를 차(茶)를 마시며 즐기면 되는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사는 삶의 소중함을 설파한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소담스런 움막같은 집들이 펼쳐져 있다. 자연을 담기 위해 창문들이 크게 돼 있다. 사계 중 버릴 풍경은 하나도 없다. 숲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을 뿐 아니라 책들을 비치해 책을 읽고 싶을 땐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은 해가 빨리 지니 현대인들의 늦은 수면이 빨라질 수도 있다.

 혹여 휴양림 정도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숲 속 힐링을 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힐링을 넘어 문명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 속 나를 꿈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예촌은 자연 그 자체를 담아내는 그릇과 같아 보였다. 금싸라기 땅에 움막같은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나 촌장의 남다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1만㎡에 달하는 땅이다 보니 나중에라도 분양이니 하는 따위의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땅의 소유 지분을 나 촌장 앞으로 했다는 설명이다. 땅을 쪼개 사고 팔고 하는 것을 원천봉쇄한 것이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 모두 자기자신의 비상구가 될 수 있다.

 “땅의 일부를 떼서 팔지 못하도록 한데다 차를 마시며 10년을 지내오는 동안 저보고 미쳤다고 했죠. 이익을 취하는 일체의 행동을 못하게 하자 식구들마저 미쳤다고 했고, 저보고 사기꾼이라고 했지요,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살은 지 15년이 됐습니다. 다예촌의 삶은 불편을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그 불편을 즐기게 되면 만사형통할 수 있습니다.”

 다예촌은 나 촌장이 몸이 아프거나 실패해 운영하는 공간이 아니다. 나 촌장은 세속적 규모를 여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이곳의 규모에 대해 마음의 평수가 중요하고, 더욱이 하늘 평수는 계산할 수 없다고 밝힌다.

 “좋은 공간에서 제가 30년 고생해 잘 보호하면 300년 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반딧불이나 자연이 주인이 돼야 하겠죠. 여기에 있는 하나의 돌, 하나의 나무들 건들 수 없어요. 자연에 예를 갖추느라 풀 한포기 함부로 뽑지 않지요. 생명이 가고 또 새로운 생명이 오면 반가울 뿐입니다.”

 이곳에 매료된 건축사가 자기자신의 사무실 이름을 바꿨을 정도로 다예촌은 한번 빠져든 사람들은 잊지 않는다. 너무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도 신경쓰지 않는다고도 했다. 자연의 주인이 되고 느낌대로 머무르다 가면 된다는 것이다.

 다예촌은 자연 안에서 지내면서 불방의 불을 때고 차를 즐긴다. 불방에는 4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 차실에서 달을 보고 포행(布行)하며 세수를 하면 그뿐이다. 아주 까다로운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뭐 하라, 뭐하라 하는 법이 없다. 촌장이 하는 사업도 ‘별바라 달바라’라고 하는 것들이다. 이곳에 순응하며 지낼 뿐이다.

 나 촌장은 전국을 발로 뛰며 군부대나 경찰청 등을 대상으로 1사1차실 갖기 운동과 행복한 차실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행복한 차실은 남편이 아내와 가족을 위해 술 대신 차를 마시자는 것으로, ‘대화 문화’라는 생각이다.

 ‘토굴은 작게 작게/풍광은 넓게 넓게/창문은 많게 많게//귀는 고요하게/눈은 아름답게/코는 향기롭게/입은 부드럽게//얼굴은 환하게/가슴은 부드럽게/호흡은 고르게//그리움은 몸살나게/사랑은 찐하게//사람은 사람답게/짐승은 짐승답게//인생은 자유롭게/죽음은 편안하게//이제는!/그냥/이렇게, 저렇게, 그렇게//단순하게/마음 비우게//사랑하게/우리 함께’(‘이제는’ 전문)

 ‘이제는’은 나눔과 소통의 쉼터인 화순 다예촌 터를 정한 지 10년 생활을 돌아보며 쓴 나 촌장의 시문이다.

 우리 모두는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고, 무한경쟁의 정글 속에서 하루 하루 살아낸다. 더 늦기전에 욕심을 내려놓고 단촐한 삶을 꾸리는 연습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예촌에 가면 자연 속에서의 마음을 비운 단촐한 삶을 만날 수 있으며, 모두 차인(茶人)이 될 수 있다.

 다예촌은 본부격인 화순을 비롯해 서울, 울산, 경주, 죽변에 있고, 중국에도 3곳이 있다. 앞으로 화순 옹성산과 모후산에도 다예촌을 열 계획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 삶을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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