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 사진 예술의 지평…시간의 잔상 탐색
전남대박물관, 리일천 초대전 8월 23일까지 열려
정형화된 해답 읽는 대신, ‘순간·본질’ 탐구 주력
빛이 머물다 사라진 빈 공간에 감각의 잔향 남아
정형화된 해답 읽는 대신, ‘순간·본질’ 탐구 주력
빛이 머물다 사라진 빈 공간에 감각의 잔향 남아
입력 : 2026. 06. 30(화)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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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nomenon Space’

‘Kind of Reflection’
이는 지난해 6월 10일 개막해 9월 9일까지 열린 미술관의 기획초대전 때 관계자가 했던 발언이다. 사진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기록하는 매체로 통하지만, 때로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감각을 호출하는 사유의 도구라는 점을 입증하는 멘트다. 올해 사진이력 45년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존재와 감각, 시간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중견 사진가 리일천씨의 작품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그의 전남대박물관(관장 김철우) 초대전이 열린다. 전시는 ‘빛이 머문 자리’라는 주제로 8월 23일까지 전남대박물관. 출품작은 근작 위주로 32점.
광주시립미술관 초대전에 이어 공공미술기관에서 다시 한번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받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서사를 최소화한 사물과 풍경을 통해 독자적인 사진 예술의 지평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의자와 회랑, 나무와 그림자 등 일상적 대상 속에서 시간과 감각의 상태를 표현한 것들이다.
장노출로 인해 형태가 풀어지고 다리만 흔적으로 남은 의자 사진은 지나간 시간의 잔상을 전하고, 극도로 단순화된 또 다른 의자 작업은 부재를 통한 고요와 침묵을 담아낸다.
특히 전시장 내에 또 하나의 공간 밖에 연출된 회랑의 빛 역시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며 공간을 단순한 통로가 아닌 경험의 장소로 확장시킨다.
이런 사유는 자연 풍경으로 이어진다. 콘크리트 벽면에 투사된 나무의 그림자는 물질적 밀도를 잃어버린 대신 태양의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순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잎과 가지의 미세한 흔들림이 겹겹이 쌓인 화면, 명확한 윤곽은 흐려진다. 거대한 나무의 두터운 질감과 안개처럼 흐릿한 원경의 대비는 시간의 축적과 감각을 동시에 체감하게 만든다. 화면 속 인물들은 서사의 주체가 아닌 하나의 흔적에 그친다.
작가의 작업은 보이는 것을 찍는 사진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로 나아간다. 작가가 선택한 의도적인 ‘흐림’과 실루엣, 넓은 여백은 이미지의 직관적인 설명을 거부하는 대신, 관람자가 스스로 감각의 속도를 늦추고 사색하도록 유도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열리는 곳이 대학 박물관이어서 관람층이 주로 학생이거나 인근 주민으로 한정되다 보니 여기 성격에 맞는 작품들로 엄선해 출품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관람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빛이 머물다 사라진 빈 공간에는 대상의 정보 대신 감각의 잔향이 남는다. 관람객들은 정형화된 해답을 읽는 대신, 이미지 앞에 머무는 순간 속에서 존재와 시간의 흐름을 조용히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 될 전망이다.
리일천 작가는 광주대 대학원 사진학 석사(예술사진 전공) 및 조선대 대학원 시각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미술협회 광주시지회 수석부지회장을 자냈다. 조선대학교·동강대학교 외래교수로 출강했으며,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2006년부터 광주 현장에서 활동하는 지역 미술인들의 삶과 작업 모습을 담백하게 카메라에 담아내는 광주 미술인 사진기록 작업과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과 1948년 제주 4·3 사건의 흔적을 담은 역사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펼친 역사적 기록(백비전) 및 인간의 초상과 시간의 기억을 시각화하는 개인전 및 초대전 시리즈를 꾸준히 발표하는 등 그를 상징하는 작업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광주 서구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민족사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