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정서 마중물 삼은 농부시인의 서정시편
해남서 창작활동 오형록 시집 ‘마중돌’ 출간
"대자연 속 농촌 무대 삼아 농사 시로 형상화"
"대자연 속 농촌 무대 삼아 농사 시로 형상화"
입력 : 2025. 12. 16(화)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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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지

오형록 시인
전남 해남에 머물며 꾸준하게 창작 활동을 펼쳐온 농부시인 오형록씨가 농촌 정서를 바탕으로 해 펴낸 시집 ‘마중돌’(문학들 刊)이 그것으로 문학들 시인선 40번째 권으로 나왔다. 이번 시집은 깊은 샘물을 마중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물인 마중물의 의미를 상기했듯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이 자신의 문학 인생에서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냈다.
시인은 그 마중물에 빗대어 ‘마중돌’을 권두시로 썼다. 눈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화물차에 돌을 실은 체험을 시로 쓴 것이다.
시인은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은/큼지막한 돌 몇 개 트럭 짐칸에 싣는다//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오이 접목을 해야 한다//지긋이 가속을 붙여 빙판길을 지날 때/위험을 마중하며 또 하루를 열어가는/바윗돌//아직 아무도 지나지 않은 신비로운 하얀 길에/선명한 바퀴 자국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가는//마중돌’(‘마중돌’ 전문)이라고 노래한다.
살다 보면 때로 일련의 고통이나 과제가 삶의 의지와 묘미를 북돋아 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듯, 시인 역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집에 내려와 흙과 땀으로 점철된 농부가 돼 농사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시집은 스스로에게 바치는 권농가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요소요소에서 실천궁행하는 마중돌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그는 서울에서 표구 기술자로 일하다가 결혼한 뒤 얼마 안 돼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귀농했다. 1990년 2월이었다. 당시 시골로 돌아온 시인은 ‘비지땀을 쏟으며 부농의 꿈에 젖어/함빡 웃어도 보며’(‘고향으로 돌아오다’)라고 노래한데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숱한 시행착오와 난관이 예견된 수순이었기에 실망보다는 웃으면서 일상을 살아냈다. 또 시인은 ‘7만 원 하던 토끼털 값이/폭락하더니/사료 값 이하로 내려가버린 날/하늘이 무너져도/그보다 아프지는 않았으리’(‘앙고라토끼’)라거니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지만/입술을 깨물며/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존재에 대하여’)고 읊는다.
이번 시집은 제4부로 구성, 분주한 일상 속 틈틈이 창작한 시편 50여편이 수록됐다.
김규성 시인(전남 담양 ‘글을 낳는 집’ 대표)은 이번 시집을 해설에서 오형록의 시를 “농사를 천직으로 생활화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진수”라고 평했다.
김 시인은 “일상과 초현실세계는 시적 배경과 주제의 두 축이다. 다양한 인간이 다양한 언어를 매개로 다채로운 삶을 영위하는 인간사회에서, 일상은 인간을 비롯한 주변 사물과의 관계에 따라 수시로 발생하는 무수의 문제점과 과제를 안겨준다. 이는 시인에게도 불가피한 시적 과제로 주어진다. 대자연 속 농촌을 무대 삼아 농사를 천직으로 생활화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진수”라면서 “도시 중심의 언어와 감각이 지배하는 시류 속에서도 지구의 허파 노릇을 하는 아마존 숲처럼 이런 시인이 버티고 있기에 서정시의 물길은 도도히 흘러 바다가 썩지 않게 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형록 시인은 1962년 해남 출생으로 2014년 계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붉은 심장의 옹아리’, ‘오늘밤엔 달도 없습니다’, ‘꼭지 따던 날’, ‘희아리를 도려내듯이’, ‘빛 하나가 내게로 왔다’ 등을 펴냈다. 2013년 ‘시아문학’을 발간하며 비영리법인 ‘시아문학’ 회장을 역임했다. 평화주제문학작품상과 시사문단문학상(본상) 등 다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창작지원금 수혜 대상자로 선정됐다. 한국문인협회와 전남문학회, 해남문학회, 목포문인협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을 펼쳤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