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의 시대 정신서 현시대 본질을 읽다
‘2024 오지호미술상’ 수상작가 방정아전
1월 18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5·6전시실
‘사회’·‘여성’·‘생태’ 등 섹션…43점 선봬
입력 : 2025. 12. 10(수)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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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버스를 기다리는 구로공단의 여성들’(1991)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오지호 선생님이 좀 굴곡진 큰 현대사를 살아가던 예술가로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사회의 접점에 대해 예술가로서 어떤 고민을 했는가라고 하는 이 질문을 가지고 살았던 그의 행적에 대해 주목했죠. 선생님이 1950년대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던 시절에 광양 백운산에 입산하셔서 활동을 했기에 방 작가 역시 그곳을 여러 차례 방문해 작업을 구상하고 진행했어요. 작가가 오지호 선생의 행적에 대해 집중했던 이면에는 편가르기보다는 마주했던 민족의 실상, 그리고 걱정했던 것이 아닌가에 착안해 방 작가가 자신만의 화법으로 풀어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작품이 신작 ‘붓다 붙다’로 보면 됩니다.”

이는 주로 서울과 부산권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2024년 오지호미술상을 수상한 방정아 작가(57·부산)의 작품 활동 이면에 대해 전시 오픈 전 광주시립미술관 한 학예사의 설명이다. 특히 방정아 작가의 예술과 오지호미술상이 지향하는 가치가 만나는 지점을 조망해보면 전시를 더욱 깊이있게 감상할 수 있다. 또 실제 작가가 예술과 공동체 실천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점에서 오지호 선생의 시대를 읽는 회화정신의 일면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방 작가는 영남권에서 꾸준하게 진보미술운동과 함께 사회변혁을 위한 행보를 예술로서 보여온 행적과 궤를 함께 한다. 이런 방 작가의 전시가 지난 11월 21일 개막, 오는 2026년 1월 18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5, 6전시실에서 작가의 리얼리즘이 집약된 ‘묻다, 묻다’라는 타이틀로 열리고 있다. 출품작은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43점.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과 실존에 주목한 ‘방정아 리얼리즘’을 살펴본다. 전시는 ‘사회’, ‘여성’, ‘생태’, ‘일상’ 등 작가 작업의 네 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먼저 ‘사회’ 섹션은 신작 ‘묻다, 묻다’(2025)를 중심으로 초기작부터 ‘아침 버스를 기다리는 구로공단의 여성들’(1991)과 ‘얼룩진 손’(2015), ‘팠어, 나왔어’(2021) 등 현재까지 이어진 작가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읽힌다. 작가는 정치 구호 대신 위트와 솔직한 시선으로 현대 사회상을 해석하며, 민중미술의 거대 담론을 넘어 일상의 언어로 사회 모순을 드러내는 리얼리즘을 구축해왔다. ‘아침 버스를 기다리는 구로공단의 여성들’(1991)과 ‘얼룩진 손’(2015)은 노동자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를, ‘팠어, 나왔어’(2021)는 주한미군 기지로 인한 환경 오염과 그것이 야기한 국제정치적 갈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출품작 중 그의 시대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원전에 파묻혀 살고 있군요’
‘잠시 디오니소스’(2023)
이어 가부장 질서에 맞서는 추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숨쉬는 구체적 주체로 인식하는 작가의 ‘여성’ 섹션은 ‘튼 살’(2010)과 ‘급한 목욕’(1994), ‘종부’(2001), ‘수월관음도’(2010) 등이 출품된 가운데 예술가이자 보통의 여성으로 살아온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동시대 여성들의 보편적 서사로 확장되는 양상을 살펴볼 수 있으며, ‘생태’ 섹션은 ‘재개발구역의 오동춘’(2008),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2021), ‘핵헥 Nuclear Nuclear’(2016) 등 급속한 도시화와 무분별한 개발, 기후 위기로 파괴되는 자연 환경과 생명을 다루고 있다.

룬 작품을 살펴본다. 재개발 속 지워지는 개인의 흔적을 다룬 ‘재개발구역의 오동춘’(2008), 주한미군의 생화학 실험을 직시한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2021), 핵발전의 위험을 경고하는 ‘핵헥 Nuclear Nuclear’(2016), 소, 닭, 돼지를 보살로 호명하는 ‘삼보살’(2012), 인간의 어두움을 검은 개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검은 개-어둠 속에서 보기’(2024), 로드킬로 죽은 생명을 추모하는 ‘흩어지고 있었어’(2025) 등이 생태 위기의 양상을 드러낸다. 소, 닭, 돼지를 보살로 호명하는 ‘삼보살’(2012), 인간의 어두움을 검은 개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검은 개-어둠 속에서 보기’(2024), 로드킬로 죽은 생명을 추모하는 ‘흩어지고 있었어’(2025)는 인간 중심 세계관의 폐해를 드러낸다. 최근의 폐현수막과 버려진 천을 재활용한 대형 걸개 작업은 재사용 자체로 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을 보여주며, 형광빛 녹색 선의 드로잉은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해체하며 연결된 생태계의 본질을 시각화한다.

이외에 ‘일상’ 섹션은 ‘좀 흔들리면 어때’(2023), ‘열정을 대하는 태도’(2022), ‘잠시 디오니소스’(2023), ‘새로운 시선’(2001) 등이 출품된 가운데 위트와 냉소, 위로가 어우러진 일상의 단편에서 방정아 서사 회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뉴스와 관찰, 자신의 경험에서 발견한 시대의 풍경을 ‘일상 읽기’라는 방식으로 화면에 옮긴다.

전시 전경
전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방정아 작가
해방기 이념 대립 속에서 광양 백운산에 머물며 시대 현실을 마주한 오지호 선생이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미술도구와 그 시절의 기억을 땅에 묻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예술가는 어떻게 시대와 마주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2025년 7월 답사와 백운산 한재 퍼포먼스를 거쳐 회화 2점과 영상 1점으로 완성된 이 리서치 기반 프로젝트는 오지호 선생의 경험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보며, 작가가 천착해온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과 실존이라는 주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주요 작품과 함께 작가&비평가 대담 인터뷰 영상도 상영된다. 이 영상은 전시 도록에 기고한 비평가 조은정(미술사가)과 양진호(철학자, 조선대학교 외래교수)의 질문을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작가의 작업 세계와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자료로 제공된다.

방정아 작가는 홍익대와 동서대 IT & 영상전문대학원 영상디자인과를 졸업,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해왔다. 작가는 위트와 솔직함을 겸비한 시각 언어로 자신만의 리얼리즘을 구축하며 미술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24 오지호미술상 심사위원회는 작가가 형상미술의 문맥을 지키면서도 기후변화, 젠더 문제 등 동시대 핵심 이슈를 다루며 회화의 독자성을 제시해온 점을 높이 평가해 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앞서 작가는 2002년 하정웅청년작가전 ‘2002 빛’전, 2021년 올해의 작가상 후보(국립현대미술관)에 선정된 바 있으며, 2023년 구본주예술상(구본주기념사업회)을 수상했다.

한편 올해 오지호미술상 본상 수상자로는 한희원 작가(70·광주), 특별상 수상자로는 박성완 작가(39·광주)가 각각 선정된 바 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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