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기획특집-도심을 깨우자] <4>광주 동구 충장로·금남로
‘호남 최대 상권 1번지’ 옛 명성·영광 되찾는다
부·문화 상징의 거리…2000년대 시·도청 이전으로 쇠락
충장축제·르네상스사업 등 부활 원동력…상가 공실 감소도
핵점포 육성·마을백화점 조성…리모델링·상권 활성화 총력
부·문화 상징의 거리…2000년대 시·도청 이전으로 쇠락
충장축제·르네상스사업 등 부활 원동력…상가 공실 감소도
핵점포 육성·마을백화점 조성…리모델링·상권 활성화 총력
입력 : 2024. 11. 13(수)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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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는 충장로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골목여행 타임슬립투어를 진행했다.
서울에 명동이 있다면 광주에는 충장로가 있다. 도심 곳곳에 새로운 거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광주의 중심이 충장로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충장로는 광주읍성 시대에 남문과 북문을 잇는 광주의 대표적인 남북대로였고 성 안에 있어서 시내라고 불렀다. 광주읍성의 문은 총 4개로 서원문(동문), 광리문(서문), 진남문(남문), 공북문(북문)이 있었으며, ‘충장로’라는 이름은 없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시가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오늘날의 충장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일본인이 본격적으로 광주에 들어온 것은 러일전쟁 이후부터였다. 당시 급등한 잡화류의 수요로 일본인 상인들은 돈을 모았고, 광주우체국을 중심으로 광주읍성 안 북문으로 통하는 거리(현재 충장로)에 상가를 형성해 나갔다.
1908년 충장로 3가에는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노노매 여관이 등장했고, 이후 1930년대에는 부와 문화를 상징하는 거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인도 충장로 변두리인 4·5가에 주단, 포목 등 옷감과 고무신, 쌀, 가구 등을 취급하는 점포를 만들었다.
1945년 해방 이후 1950년대 충장로에는 ‘다방’이라는 새로운 문화공간이 등장, 1980년대까지 광주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로 이름을 날렸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누군가를 만나려면 사전에 약속 장소를 정해야만 했다. 바로 만남의 1번지 ‘광주우체국(우다방)’이었다.
충장로 상권은 패션의 거리(충장로 1~3가), 혼수의 거리(충장로 4~5가), 지하도상가(금남지하도상가 1·2공구, 충금지하도상가)로 나뉜다.
충장로 1~3가는 1가 입구에서 충장파출소까지 이면도로에 해당하며, 광주 우체국이 핵심공간이었다. 충장로 4~5가는 한복·양복집과 액세서리 도매점이 즐비했다. 지하도상가는 프랜차이즈·브랜드 매장이 없는 점이 특징이다.

금남로는 금융 1번가였다. 금남로 1~5가는 왕복 6차선의 교통요지로 옛 전남도청을 기점으로 광주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며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자리했다. 이밖에도 예술의 거리, 사직공원에 형성된 광주포차거리 등 금남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도 있다.
아울러 금남로는 일제강점기 광주제일고 학생이 주축이 돼 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11·3학생의거부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등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충장로와 금남로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상무·첨단·금호·풍암지구 등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상권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광주시청은 서구 상무지구(치평동)으로, 전남도청은 무안군으로 이전됨에 따라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도심상권의 정체성이 상실했다.
여기에 2000년대부터는 도시 외곽의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에 따라 상무·수완지구 등으로 상권이 분산됐고, 건물 노후화 등 주거환경까지 악화됐다. 대형 종합유통업체 입점, 소비트렌드 변화 등으로 상권은 급격히 쇠락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동구는 침체된 충장로·금남로 상권을 되살리고자 구도심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7080추억’을 테마로 한 충장축제를 기획해 2004년부터 매년 10월 대한민국 최고 놀자판인 ‘충장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충장축제로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되새기고, MZ세대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수십만명이 충장로, 금남로를 찾아 상권 활성화는 물론 전 연령대가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호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광주지역 주요상권 동향(2015~2022년)’ 자료를 보면 지난 2022년 기준 지역 주요상권 사업체 수는 모두 2만2658개로, 8년 전(2015년·1만8371개)과 비교해 23.3% 증가했다.
이 가운데 사업체가 가장 많은 곳은 3335개가 위치한 ‘충장로상점가’ 였다. 충장로상점가는 지난 8년 동안 사업체 수가 3200~3300개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며 지역 최대 상권으로 군림하고 있다. 주요상권 종사자 수 역시 충장로상점가가 4469명으로 최다였다.
2026년까지 5년간 100억원 규모의 ‘상권르네상스사업’도 충장로·금남로 상권 부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22년 동구는 상권르네상스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광주충장상권 상권활성화협의회를 발족했다. 이를 통해 상권 특화거리 조성, 라온페스타 개최, 상권브랜딩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침체된 지역 상권 회복을 위해 추진 중인 ‘상권르네상스’ 사업과 함께 임대료 인하에 동참해 준 상인 덕분에 올해 2분기 충장로 일원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결과 충장·금남로 일원 3층 이상이거나 연 면적이 330㎡(100평)를 초과하는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올해 1분기 31.02%에서 3분기 24.97%로 6.05%p 감소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분기 24.03% 이후 가장 낮은 공실률이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로, 2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것은 빠른 속도로 상권이 회복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2층 이하 연면적 330㎡(100평) 미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 역시 15.26%로 직전 분기(16.09%) 대비 소폭 감소했다.
동구는 최근 충장로 일원 빈 점포에 음식업, 뷰티 관련업, 나이트클럽까지 각종 업소가 입점 공사를 진행하며 충장로 상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를 통해 충장로 상권의 긴 침체기를 뒤로하고 긴밀한 민관협력 속에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다시 살아날 것으로 전망된다.
동구는 현재 국내 최대의 문화복합시설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예술의거리, 충장축제가 매년 개최되는 충장로가 위치해 수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는 ‘문화예술의 명소’로 재도약을 위한 담금질을 하고 있다.
임택 동구청장은 “충장상권르네상스 사업의 마중물 효과가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다”며 “현재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적극 활용해 남은 3년간 핵점포 유치, 마을백화점 조성, 골목여행, 다 같이 공유공간 사업 등 참신한 시도와 전략적인 실행으로 충장로의 옛 명성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충장로는 광주읍성 시대에 남문과 북문을 잇는 광주의 대표적인 남북대로였고 성 안에 있어서 시내라고 불렀다. 광주읍성의 문은 총 4개로 서원문(동문), 광리문(서문), 진남문(남문), 공북문(북문)이 있었으며, ‘충장로’라는 이름은 없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시가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오늘날의 충장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일본인이 본격적으로 광주에 들어온 것은 러일전쟁 이후부터였다. 당시 급등한 잡화류의 수요로 일본인 상인들은 돈을 모았고, 광주우체국을 중심으로 광주읍성 안 북문으로 통하는 거리(현재 충장로)에 상가를 형성해 나갔다.
1908년 충장로 3가에는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노노매 여관이 등장했고, 이후 1930년대에는 부와 문화를 상징하는 거리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인도 충장로 변두리인 4·5가에 주단, 포목 등 옷감과 고무신, 쌀, 가구 등을 취급하는 점포를 만들었다.
1945년 해방 이후 1950년대 충장로에는 ‘다방’이라는 새로운 문화공간이 등장, 1980년대까지 광주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로 이름을 날렸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누군가를 만나려면 사전에 약속 장소를 정해야만 했다. 바로 만남의 1번지 ‘광주우체국(우다방)’이었다.
충장로 상권은 패션의 거리(충장로 1~3가), 혼수의 거리(충장로 4~5가), 지하도상가(금남지하도상가 1·2공구, 충금지하도상가)로 나뉜다.
충장로 1~3가는 1가 입구에서 충장파출소까지 이면도로에 해당하며, 광주 우체국이 핵심공간이었다. 충장로 4~5가는 한복·양복집과 액세서리 도매점이 즐비했다. 지하도상가는 프랜차이즈·브랜드 매장이 없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 6월 라온페스타 개막식 모습.
금남로는 금융 1번가였다. 금남로 1~5가는 왕복 6차선의 교통요지로 옛 전남도청을 기점으로 광주 시가지를 동서로 가르며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이 자리했다. 이밖에도 예술의 거리, 사직공원에 형성된 광주포차거리 등 금남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권도 있다.
아울러 금남로는 일제강점기 광주제일고 학생이 주축이 돼 항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11·3학생의거부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등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충장로와 금남로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상무·첨단·금호·풍암지구 등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상권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광주시청은 서구 상무지구(치평동)으로, 전남도청은 무안군으로 이전됨에 따라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도심상권의 정체성이 상실했다.
여기에 2000년대부터는 도시 외곽의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에 따라 상무·수완지구 등으로 상권이 분산됐고, 건물 노후화 등 주거환경까지 악화됐다. 대형 종합유통업체 입점, 소비트렌드 변화 등으로 상권은 급격히 쇠락하기에 이르렀다.

광주 동구는 지난 10월 제21회 추억의 충장축제에서 충장 파이어아트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동구는 침체된 충장로·금남로 상권을 되살리고자 구도심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7080추억’을 테마로 한 충장축제를 기획해 2004년부터 매년 10월 대한민국 최고 놀자판인 ‘충장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충장축제로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되새기고, MZ세대는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수십만명이 충장로, 금남로를 찾아 상권 활성화는 물론 전 연령대가 광주의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호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광주지역 주요상권 동향(2015~2022년)’ 자료를 보면 지난 2022년 기준 지역 주요상권 사업체 수는 모두 2만2658개로, 8년 전(2015년·1만8371개)과 비교해 23.3% 증가했다.
이 가운데 사업체가 가장 많은 곳은 3335개가 위치한 ‘충장로상점가’ 였다. 충장로상점가는 지난 8년 동안 사업체 수가 3200~3300개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며 지역 최대 상권으로 군림하고 있다. 주요상권 종사자 수 역시 충장로상점가가 4469명으로 최다였다.
2026년까지 5년간 100억원 규모의 ‘상권르네상스사업’도 충장로·금남로 상권 부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22년 동구는 상권르네상스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광주충장상권 상권활성화협의회를 발족했다. 이를 통해 상권 특화거리 조성, 라온페스타 개최, 상권브랜딩 등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침체된 지역 상권 회복을 위해 추진 중인 ‘상권르네상스’ 사업과 함께 임대료 인하에 동참해 준 상인 덕분에 올해 2분기 충장로 일원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광주 동구는 지난 10월 제21회 추억의 충장축제에서 아랑고고장구 플래시몹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결과 충장·금남로 일원 3층 이상이거나 연 면적이 330㎡(100평)를 초과하는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올해 1분기 31.02%에서 3분기 24.97%로 6.05%p 감소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분기 24.03% 이후 가장 낮은 공실률이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로, 2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것은 빠른 속도로 상권이 회복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2층 이하 연면적 330㎡(100평) 미만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 역시 15.26%로 직전 분기(16.09%) 대비 소폭 감소했다.
동구는 최근 충장로 일원 빈 점포에 음식업, 뷰티 관련업, 나이트클럽까지 각종 업소가 입점 공사를 진행하며 충장로 상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를 통해 충장로 상권의 긴 침체기를 뒤로하고 긴밀한 민관협력 속에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다시 살아날 것으로 전망된다.
동구는 현재 국내 최대의 문화복합시설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예술의거리, 충장축제가 매년 개최되는 충장로가 위치해 수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는 ‘문화예술의 명소’로 재도약을 위한 담금질을 하고 있다.
임택 동구청장은 “충장상권르네상스 사업의 마중물 효과가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다”며 “현재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적극 활용해 남은 3년간 핵점포 유치, 마을백화점 조성, 골목여행, 다 같이 공유공간 사업 등 참신한 시도와 전략적인 실행으로 충장로의 옛 명성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송태영 기자 sty1235@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