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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各自圖生)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2024. 02.22. 18:10:59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문화산책]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수시로 울리는 핸드폰 문자 알림은 국회의원 선거 예비 후보자들에 대한 홍보가 8할이다. 갈등을 타협으로 귀결시키지 못하고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 정치인들에 대한 기사에 시선이 머문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스친다.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 자신의 길을 스스로 그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한자어이다. 역학관계에 대한 고민을 덜어낸다면 꽤 근사한 말이다. 개인의 자립성, 자기 결정권, 독립적인 생존 능력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의 목표를 상실하거나 공감대가 무너졌을 때, 갈등과 대립이라는 관계의 끝맺음으로도 각자도생이 종종 선택된다. 끝없는 경쟁의 울타리에 갇힌 현대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도 각자도생이다. 각자 선택한 만큼만 살아가는 인생 방정식이 왠지 측은하고 안쓰럽다.

얼마 전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거부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회적 어려움 모두를 각자도생에 맡기는 정부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국가 권력의 무관심과 무능함을 꼬집는 비판일 것이다.

대중문화에서도 각자도생에 대한 은유는 사회 비판적 주제를 담아 자주 활용되는데 현대 사회의 모순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담아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달에 개봉한 영화 ‘시민덕희’ 역시 각자도생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서사를 덕희라는 인물에 투영해 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보이스피싱을 당해 3200만원을 잃은 소시민 덕희이다. 보이스피싱에 속아 큰 금액을 잃은 주인공 덕희와 그녀의 친구들이 범죄 조직을 추적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전형적인 언더독 스토리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2016년 경기도 화성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중년 여성이 보이스피싱 조직을 붙잡았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국제 범죄 조직에 의해 돈을 잃은 덕희는 뜻하지 않은 보이스피싱범의 조력으로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권력은 주소를 알지 못해 더 이상의 수사는 불가능하다며 사건을 종결시킬 뿐이다. “이참에 좋은 인생 경험했다 생각”하라는 극중 형사의 대사는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어쩌면 우리가 한두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충고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시민의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한 무능함의 이면적 속성, 각자도생하라는 무책임의 표상이지 않겠는가?

결국 덕희는 직접 칭다오로 날아가 친구들과 함께 보이스피싱 조직을 뒤쫓고, 결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예상 가능한 스토리 라인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통쾌한 결말을 기대하는 관객의 요구에 따라 충실하게 진행된다. 영화 후반에 전개되는 속 시원함은 답답한 명치가 뻥 뚫리는 듯 통쾌하다. 더불어 보이스피싱에 의해 일상이 무너진 소시민들의 서사는 단순히 범죄 집단을 응징하는 영웅담이 아닌 연대와 공생의 관계로 해결되는 결말을 통해 위로받는다.

‘시민덕희’는 개인의 용기와 결단력이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역시 존재함을 반증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각박하고 매몰찬 각자도생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연대와 회복력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바야흐로 선거철이 도래하며,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각자도생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이 현상은 개인의 생존과 성공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치열한 생존게임인 ‘선거’라는 제도는 한 명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이분되며 권력의 헤게모니를 관철시킨다.

각자도생의 시대라 할지라도, 비록 치킨게임과 같은 선거 제도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할 사회적 합의들이 있다. 영화에서 덕희와 그녀의 친구들이 보여준 것처럼, 서로를 돕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발전과 행복을 위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기계보다 인류애가 더욱 필요하고, 지식보다는 친절과 관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비참해지고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인 찰리 채플린이 최초로 제작한 유성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을 장식한 명연설이 새벽을 깨운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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