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와 함께하는 삶 행복…가족 동료들 큰 힘"
[남도예술인]바이올리니스트 김도연
피아니스트 모친 영향…고1 남도예술회관 첫 독주회
나주예총 ‘예술문화상’ 수상…작곡가 ‘전곡 연주회’
가장 애정하는 ‘앙상블 마주얼’ 창단 10년 무대 계획
피아니스트 모친 영향…고1 남도예술회관 첫 독주회
나주예총 ‘예술문화상’ 수상…작곡가 ‘전곡 연주회’
가장 애정하는 ‘앙상블 마주얼’ 창단 10년 무대 계획
입력 : 2024. 02. 01(목) 18:45

김도연 바이올리니스트는 “음악을 연주하며 행복을 느끼고, 나아가 관중과 호흡하고 함께 공감할 때 그 행복이 배가 된다”면서 “앞으로도 음악과 연주가 가까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년시절, 그의 집에서는 늘 피아노 소리가 들리곤 했다. 피아니스트인 모친의 영향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어머니께 레슨을 받기 위해 집을 오갔고 그러한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음악과 가까워졌다.
삼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언니 오빠와 함께 피아노를 배웠다. 노래를 좋아해 언니, 오빠의 음악 교과서를 가져다 훑어보며 수록된 곡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불러보곤 했다. 피아노나 노래 대회에 자주 나갔고, 가창으로 호남예술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음악과의 동행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광주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도연씨의 이야기다.
김 연주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바이올린 전공으로 미국 피바디 음대를 졸업한 사촌언니가 귀국하면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정은순 전 전남대 교수의 권유로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좀처럼 마음을 잡고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지 않던 그에게 어머니는 피아노를 배울 때 힘들었던 경험을 들려주며 ‘너는 체격이 작으니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을 해보면 좋겠다’고 일러주셨다.
그의 첫 독주회는 남들에 비해 좀 빨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금은 없어진 남도예술회관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어린 나이에 독주회를 갖는 것이 흔한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어머니 생각에 제가 필요한 경험을 갖게 도와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독주회 후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죠. 돌아보면 재능이나 전공이나 다 어머니께서 물려주시고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학시절을 돌아보면 아쉬움도 있지만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그는 고지 토요다 베를린 국립 예술대 교수와 만프레드 쉐르처 드레스덴 음대 교수를 사사했다.
투명하고 섬세한 바이올린 톤을 가진 토요타 교수와 완벽한 음정을 강조하며 테크닉 개선을 요구한 쉐르처 교수에게 받은 가르침이 지금까지 연주 활동에 좋은 밑거름이 됐다.
귀국 후 여러 무대에 서왔는데 특히 실내악 연주자로서 동료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귀국한 첫 해 이형석 전남대 교수가 모나무르 실내악단을 창단하면서 함께 무대에 자주 섰고, 광주시립교향악단에 몸담고 있는 동료들과 클랑 현악 사중주단을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나주 이화챔버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악장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나주예총으로부터 ‘2012 예술문화상’ 음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듬해인 2013년 광주 정율성페스티벌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 한동일 선생과 무대를 꾸며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 복귀해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어머니와 함께 목포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협연자로 멘델스존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했을 때다. 당시만 해도 아직 교수로 재직 중이시던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렇게 한 번이라도 무대에 함께 섰던 것이 큰 행운이고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깨달았어요. 저는 그 무렵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약 4년 동안은 주어진 무대에 서긴 했지만 제가 앞장서 어머니와 함께 연주할 무대를 마련하지는 못했죠.”
그는 첫째 딸과 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삼남매의 어머니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왔다. 음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는 가족과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지금 사용하는 1720년산 알렉산드로 갈리아노는 결혼 10주년이 되던 해 남편이 선물해줬다. 덕분에 연주 기량이 한층 좋아지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인 일본 피아니스트 마미 미야케씨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몇 해 전 남편의 권유로 독주회를 준비하던 중 독일 유학 시절 졸업 연주 때 반주를 맡아준 그와 연락이 닿아 9년 만에 재회하게 됐다. 이때 독주회를 연 것을 계기로 이후 모든 독주회에 함께 서게 됐다.
“마미는 무대에 함께 서면 100퍼센트 신뢰하게 되는 믿음직스럽고 듬직한 피아니스트예요. 저보다 훨씬 학구적인 성향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연주자죠. 피아노 파트뿐 아니라 바이올린 파트까지 잘 이해하고 있어 제게 늘 숙제를 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김 연주자가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전곡 연주회는 그보다 앞서 전곡 연주를 이어온 마미 미야케씨가 쇼스타코비치에 이어 베토벤 전곡을 하던 중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권하면서 도전하게 됐다.
이후 바흐가 1720년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같은 해에 제작된 자신의 악기로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20년에 연주를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미뤄져 2021년 초에 열 수 있었다. 이듬해인 2022년에는 피아니스트 동수정, 첼리스트 윤소희씨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광주문화재단의 후원으로 4회에 걸쳐 연주했다.
“한 음악가가 작곡한 여러 곡들을 시리즈로 연주하는 일은 큰 도전이고 부담이기도 하지만, 작곡가의 삶을 느끼고 이해함으로써 작품을 더 깊이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작곡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작업은 연주자로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은 앙상블 마주얼은 그가 가장 애정하는 단체다. 다락 대표 김명선 선생의 부탁으로 소규모 오케스트라와 함께 비발디의 ‘사계’를 후배들과 연주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이대로 흩어지기 아쉽다는 마음이 모여 지금의 단체를 창단하게 됐다.
창단 연주회 후 ‘광주음악제’, ‘목요상설무대’, ‘앙상블 마주얼의 클래식은 탱고를 싣고’, 오페라 ‘무등둥둥’ 등 여러 무대를 꾸며왔다. 지난 4년간 코로나19 등 여러 상황으로 인해 다함께 모이지 못하고 4중주, 5중주 등 작은 규모의 구성으로 연주를 이어왔는데, 올해는 전 단원이 참여할 수 있는 연주회를 두 가지 기획해 선보일 계획이다.
김 연주자는 학창시절 첫 독주회를 시작으로 유학 생활과 전곡 시리즈 연주회 등을 거치며 한층 성장해왔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보다 곁에서 늘 함께해주고 응원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연주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오랜 연주 경력에 따른 만성적인 어깨통증으로 매일 스트레칭과 치료를 받고 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지금처럼 즐겁게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또 첼로를 전공하는 첫째 아들과 언젠가 한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모습도 그려본다.
“제게 음악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며 위로입니다. 음악을 연주하며 행복을 느끼고, 나아가 관중과 호흡하고 함께 공감할 때 그 행복이 배가 되죠. 앞으로도 늘 그랬듯이 음악과 연주가 가까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삼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언니 오빠와 함께 피아노를 배웠다. 노래를 좋아해 언니, 오빠의 음악 교과서를 가져다 훑어보며 수록된 곡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불러보곤 했다. 피아노나 노래 대회에 자주 나갔고, 가창으로 호남예술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음악과의 동행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광주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도연씨의 이야기다.
김 연주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바이올린 전공으로 미국 피바디 음대를 졸업한 사촌언니가 귀국하면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정은순 전 전남대 교수의 권유로 처음 바이올린을 잡았다. 좀처럼 마음을 잡고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지 않던 그에게 어머니는 피아노를 배울 때 힘들었던 경험을 들려주며 ‘너는 체격이 작으니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을 해보면 좋겠다’고 일러주셨다.
그의 첫 독주회는 남들에 비해 좀 빨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지금은 없어진 남도예술회관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다. 어린 나이에 독주회를 갖는 것이 흔한 요즘과 달리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어머니 생각에 제가 필요한 경험을 갖게 도와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독주회 후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죠. 돌아보면 재능이나 전공이나 다 어머니께서 물려주시고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학시절을 돌아보면 아쉬움도 있지만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그는 고지 토요다 베를린 국립 예술대 교수와 만프레드 쉐르처 드레스덴 음대 교수를 사사했다.
투명하고 섬세한 바이올린 톤을 가진 토요타 교수와 완벽한 음정을 강조하며 테크닉 개선을 요구한 쉐르처 교수에게 받은 가르침이 지금까지 연주 활동에 좋은 밑거름이 됐다.

어머니인 정은순 전 전남대 교수와 목포시향 협연 무대에 선 김 연주자.
나주 이화챔버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악장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나주예총으로부터 ‘2012 예술문화상’ 음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은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듬해인 2013년 광주 정율성페스티벌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 한동일 선생과 무대를 꾸며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 복귀해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어머니와 함께 목포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협연자로 멘델스존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했을 때다. 당시만 해도 아직 교수로 재직 중이시던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렇게 한 번이라도 무대에 함께 섰던 것이 큰 행운이고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깨달았어요. 저는 그 무렵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약 4년 동안은 주어진 무대에 서긴 했지만 제가 앞장서 어머니와 함께 연주할 무대를 마련하지는 못했죠.”
그는 첫째 딸과 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삼남매의 어머니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왔다. 음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는 가족과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지금 사용하는 1720년산 알렉산드로 갈리아노는 결혼 10주년이 되던 해 남편이 선물해줬다. 덕분에 연주 기량이 한층 좋아지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인 일본 피아니스트 마미 미야케씨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몇 해 전 남편의 권유로 독주회를 준비하던 중 독일 유학 시절 졸업 연주 때 반주를 맡아준 그와 연락이 닿아 9년 만에 재회하게 됐다. 이때 독주회를 연 것을 계기로 이후 모든 독주회에 함께 서게 됐다.

마미 미야케씨와 김 연주자
김 연주자가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전곡 연주회는 그보다 앞서 전곡 연주를 이어온 마미 미야케씨가 쇼스타코비치에 이어 베토벤 전곡을 하던 중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권하면서 도전하게 됐다.
이후 바흐가 1720년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같은 해에 제작된 자신의 악기로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20년에 연주를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미뤄져 2021년 초에 열 수 있었다. 이듬해인 2022년에는 피아니스트 동수정, 첼리스트 윤소희씨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광주문화재단의 후원으로 4회에 걸쳐 연주했다.
“한 음악가가 작곡한 여러 곡들을 시리즈로 연주하는 일은 큰 도전이고 부담이기도 하지만, 작곡가의 삶을 느끼고 이해함으로써 작품을 더 깊이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작곡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작업은 연주자로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은 앙상블 마주얼은 그가 가장 애정하는 단체다. 다락 대표 김명선 선생의 부탁으로 소규모 오케스트라와 함께 비발디의 ‘사계’를 후배들과 연주하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이대로 흩어지기 아쉽다는 마음이 모여 지금의 단체를 창단하게 됐다.

김 연주자가 리더를 맡고 있는 연주단체 앙상블 마주얼의 공연
김 연주자는 학창시절 첫 독주회를 시작으로 유학 생활과 전곡 시리즈 연주회 등을 거치며 한층 성장해왔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보다 곁에서 늘 함께해주고 응원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연주를 하며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오랜 연주 경력에 따른 만성적인 어깨통증으로 매일 스트레칭과 치료를 받고 있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지금처럼 즐겁게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또 첼로를 전공하는 첫째 아들과 언젠가 한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모습도 그려본다.
“제게 음악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며 위로입니다. 음악을 연주하며 행복을 느끼고, 나아가 관중과 호흡하고 함께 공감할 때 그 행복이 배가 되죠. 앞으로도 늘 그랬듯이 음악과 연주가 가까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김다경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