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준비하는 박물관
최경화 광주역사민속박물관장
입력 : 2023. 09. 25(월) 20:18
최경화 광주역사민속박물관장
[기고]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에는 마한의 풍습이 “해마다 5월 씨앗을 뿌리고 나면 귀신에 제사를 지내고, 떼를 지어 모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으로 즐겼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 또 다시 이렇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전, 광주에 살았던 사람들은 농사의 수고로움을 함께 격려했고 첫 결실을 얻을 때면 거대한 자연 앞에 묵묵히 고개 숙여 감사했다. 문헌 자료 속 고대인의 신명은 어쩌면 전쟁 같은 나날을 감내한 결과물일지 모른다. 나아가 이는 지역 공동체가 같이 이룩한 시간들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숭고하다.

고대 광주사람들의 자취를 좇다 보면 대개 광주 신창동에 발길이 멈춘다. 이곳이 국내 최대 복합농경유적으로 이름할 수 있었던 것은 퇴적층 평면적 200㎡에 최대 155㎝ 두께로 쌓여 있었던 벼껍질층이 발견된 덕분이었다. 도정하기 전 벼 무게만 하더라도 수 백 여 톤에 이른다고 하니, 당시 지역의 농업생산력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와 있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 지역민들이 남긴 것은 비단 이뿐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목제 현악기와 북은 엄청난 벼껍질층이 보여주는 양적인 수치를 넘어 그들의 정서적 풍요로움을 상상하게끔 한다. 그 넉넉함으로 지내는 감사 의례는 공동체의 결속을 해마다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광주 신창동 유적은 지역사를 넘어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영역이다. 이러한 공감대를 토대로 우리 박물관에서는 지난해 12월 신창동 마한유적체험관을 개관하여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상설전시를 비롯하여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마한의 얼굴을 조금씩 더듬어 갈 수 있도록 하였다. 광주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고대 광주와의 해후는 광주의 근원에 다가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마한에서 치러졌던 의례는 앞선 기록의 역사에 멈춰졌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지금까지 이어져 왔을 것 같다. 아주 먼 시간 속의 그들이 치렀던 10월의 의례는 현재의 시간 개념 안에서 얼마 남지 않은 명절 추석과 적잖이 닮아 있다. 한가위의 유래를 신라 때의 ‘가배’로 이해하는 편이 다수이지만, 의례를 행하던 사람들의 정성만큼은 그보다 오랜 연원을 지니는 것이 아닐까? 어려움을 더불어 극복한 보람, 공동의 노력과 결과물에 힘껏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기록으로 전해지지 않더라도 충분히 공명할 수 있는 지점들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가위의 오랜 풍습인 달맞이는 더할 수 없는 하늘의 선물로 여겨졌을 것이다.

세시풍속과 종종 곁을 같이 하는 수식어가 ‘잊혀져 가는’이다.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에도 세시풍속은 낡은 것이라는 낙인이 따라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시풍속은 역사상 가장 오래 이어져 내려온 정신적 유산이다.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이러한 유산의 힘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이웃과 손을 잡고 연대하며 작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한가위 행사는 참으로 뜻깊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은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한가위 한마당을 열어 시민들과 너나들이 어울리고자 한다. 한복을 착용한 방문객에게 한가위 올벼쌀을 나누는 행사를 시작으로 풍요로운 한가위 달의 의미를 살펴보는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한가위 음악회 무대에 이어 강강술래로 하나 되는 시간도 편성하였다. 단순히 추석이 다가오기 때문에 으레 치러야만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2000년의 시간 동안 한 땀 한 땀 곱게 엮은 매듭을 이제는 우리가 이어나갈 차례인 셈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엮는 매듭이 어떠한 형태로 남을지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영속적인 문화를 잇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세시풍속은 사회의 전통문화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문화복합체나 다름 아니다. 그리고 박물관은 이러한 가치를 시민들께 적극적으로 환원하고자 경주하고 있다. 추석 연휴에 박물관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다시 2000년 이후, 광주 땅에 사는 누구나가 광주를 사랑하는 절대적인 비결이 될지 모른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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