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속 살아온 오월어머니들 화가 데뷔했다
5·18 특별전 ‘오월 어머니들의 그림농사’ 주목
주홍 화가 지도로 1년 동안 그림 공부 솜씨 뽐내
31일까지 메이홀 전시실서 21명 189점 선보여
입력 : 2023. 05. 14(일) 18:07
전시 전경
전시 전경
5·18민중항쟁 43주년을 앞둔 가운데 오월 어머니들의 삶은 그동안 진상규명에 대한 지속적 투쟁과 관련자 처벌, 그리고 오월영령들의 명예회복 등 해온 일이 한둘이 아니다. 줄곧 오월광주의 상처와 함께 해왔다. 이런 어머니들이 붓을 잡았다. 화가로 변신해본 것이다.

오월 어머니집(관장 김형미)과 메이홀(관장 임의진)은 ‘오월 어머니들의 그림농사’라는 타이틀로 5·18 특별전을 지난 10일 개막, 오는 31일까지 메이홀 2∼4층 전시실에서 갖는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오월 어머니들의 대대적 그림 전시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록된다. 어머니들은 붓을 쥐는 법이나 물감 짜는 법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해 작품전이라는 성과를 낸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 한 해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양림동 골목에 소재한 ‘오월 어머니집’에 모여 그림을 악혀나가기 시작했다.

전시 큐레이터와 지도를 맡은 주홍 화가는 지도하는 내내 친정 어머니가 여럿 생겼다는 전언이다. 처음 지도할 때는 어머니들의 표정이 대개 어두웠는데 점점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수업은 ‘상처에서 핀 꽃’이라는 제목으로 이뤄졌다. 수업하는 동안 오월 어머니들이 순박한 우리들의 어머니라는 것도 느꼈다고 한다. 옥상에 업소용 박스를 이용해 상추며 푸성귀를 잔뜩 농작해뒀는데 서슴없이 “뜯어다가 잡술라요?”라고 슬쩍 권하시는 모습에서 그렇다. 주 화가는 양림동 햇살을 받아 무장무장 푸른 상추 잎싹들이 마치 풀어 놓은 물감 같았다고 술회한다.

그만큼 어머니들은 그림에 진심이었다. 평생 처음 물감을 만져본 분도 계셨을 정도였다고 한다. 재미를 붙인 어머니들은 집에서 예습 복습을 하는가 하면, 연습장마다 그린 스케치가 ‘이상 재미나다’는 반응 역시 숨기지 않았다.

주 화가는 한참 동안 쪼그려 앉아 그간의 작품들을 바닥에 펼쳐두고 모두 구경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진도가 고향인 아흔의 어머니가 ‘진도 아리랑’을 구성지게 한 토막 뽑으셨다. 김형미 관장이 한 곡 더 주문하자 앵콜 안 했으면 서운했을 뻔한 노래가 담을 넘고, 한쪽에선 그림 속 재미난 꿈의 타래들이 담을 넘는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오월어머니들은 자식과 남편을 잃은데다 세월과 꿈마저 모두 잃었지만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를 불러오는데 일조했다. 이런 어머니들의 손길이 이번 전시에는 모처럼 밖으로 향해있던 어떤 외침, 어떤 항의, 어떤 분노가 부드러운 직선과 곡선, 다채로운 색감으로 녹아 투영돼 있다.

메이홀은 지난 10년 동안 5월 특별전을 진행해온 전시 공간으로, 홍성담 임옥상 박불똥 박재동 정영창 김봉준 이상호 작가 등을 초청해 전시를 열어왔으며 이번에는 오월 어머니들을 모시게 됐다.

전시 전경
오월 어머니집과 메이홀은 ‘오월 어머니들의 그림농사’라는 타이틀로 5·18 특별전을 오는 31일까지 메이홀 2∼4층 전시실에서 갖는다. 사진은 오픈식 뒤 기념촬영에 나선 오월어머니들과 내빈 및 관계자들.
오픈식에서 소감을 밝히는 오월어머니들
어머니들의 작품에는 천진난만한 동심에서부터 추억, 아픔, 그리움, 사랑. 가족, 평화 등이 다채롭게 반영돼 있다. 하지만 그림 톤은 밝고 화사하다. 그런데 뭔가 아픔이 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작품들이다. 전시장에 가면 어머니들 스물한명이 그린 189점을 만날 수 있다.

주홍 화가는 “어머니들과 함께 보냈는데 제가 힐링됐다. 친정엄마가 많아진데다 친정이 생긴 기분으로 어머니들이 마음을 열어줬다. 자신들의 아팠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본인들도 조금 힐링을 얻은 것 같고, 이제 오월에는 꽃도 볼 수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면서 “죄책감이 있어 오월이 안왔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제 꽃무늬 옷을 입어도 될 것 같다는 말 등을 해줘서 감사하다. 차리지 못한 밥상을 차린 격”이라고 언급했다.

임의진 관장은 전시가 늦어 많이 죄송하고, 생각이 부족했다고 전제한 뒤 어머니들과 그림 농사를 1년 동안 착실히 지어왔다는 점을 들려줬다.

임 관장은 “순수하고 감동적인 그림들은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다. 숨김이나 꾸밈없는 그 진솔함과 단순함, 화사한 치마폭의 온기까지 담겨 있다”면서 “‘어머니’를 가진 우리 광주 사람들만이 속으로 알고, 또 울고 웃고 하는 한편의 꿈같은 기억이자 근사한 농경의 열매 소쿠리다. 민주주의라는 이 농사에서 누군가 씨앗이 돼 땅에 묻혔고, 아니 땅에 ‘님들’을 심었고, 이 씨앗들이 푸르게 올라올 날이 이제 머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막식은 지난 10일 오후 출품작가들인 오월어머니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오픈식에서는 들불야학 강학 김영철 열사의 딸로 춤을 전공한 김연우(오월 어머니 김순자씨 딸)씨가 ‘오월엄마’라는 주제로 춤판을 벌여 숙연해진 어머니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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