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길이 있고, 힘이 있다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입력 : 2023. 02. 09(목) 18:14
강경호 시인·계간 시와사람 발행인
[문화산책] 책은 누군가가 심혈을 기울여 오랜 시간과 신산한 삶을 견디며 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책을 단 며칠 동안의 독서를 통해 저자의 삶과 세계관, 또는 그가 체득하거나 연구한 결과물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백일장 심사를 하다 보면 참으로 놀랍다. 논리적으로 깊은 사유를 담아낸 글에 놀라고, 책을 읽지 않아 형편없는 것에서 다시 놀란다.

글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고, 글솜씨가 미흡한 것은 책을 안 읽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길잡이가 ‘책’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식견이 넓어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더불어 인간이 지녀야 할 품성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인문학이 아닌 자연과학 서적을 통해 연구자들이 공들여 연구한 내용을 익힐 수 있어 훌륭한 공부가 된다. 이처럼 누군가의 말처럼 “책 속에 길이 있다.” 책 속의 길은 심오한 학문의 길도 있으며, 지혜로운 삶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길도 있다. 그리고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길도 있다. 그러므로 책 속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참 듣기 좋은 소리 중의 하나가 ‘자식이 서재에서 낭랑하게 책 읽는 소리’라는 옛말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오죽하면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던 우리나라의 이름있는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못 받는 것에 대해 한림원에서 “자기 나라(한국) 사람들도 자기 나라 시인의 시를 읽지 않는데…….”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 독서 상황을 말해주며, 역설적으로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의 독서력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 속에서 대중매체의 발달과 함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을 읽는 일은 어쩌면 젊은 세대들에게는 재미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각 단체나 지역에서 실시하는 독서공모 참여율이 갈수록 저조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상상력의 빈곤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독서빈곤현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미래세대들에 대한 책임감과 믿음이 걱정된다. 주지하다시피 국제사회의 질서는 힘으로 작동한다. 정의로움이라거나 인간애는 겉으로 드러내는 수사일 뿐,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철저히 약육강식의 논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생태계는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이 걱정된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냉엄한 자본주의 원리라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이다. 한순간의 잘못된 결정으로 나락에 떨어질 수 있고, 미래의 전망에 먹구름이 낄 수 있다. 그러나 독서를 많이 하는 나라는 지혜롭고 현명해서, 장래가 더없이 밝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사용한다.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의 커다란 자랑이다. 중국의 어려운 한자 때문에 문맹이 많은 것을 애석하게 여긴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의 노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문맹이 적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처럼 훌륭한 문자로 쓰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오늘날 한글의 쉬운 접근성 덕에 우리 작가들이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 영화, 드라마, 연극, 가요 등 이른바 K-컬쳐는 문학(문자)이 없다면 있을 수 없다. 해마다 한글날이 와도, 아무도 우리 문학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척 아쉬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갈수록 책과 멀어지는 삶을 산다. ‘현대’라는 시스템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각종 미디어들은 쉽게 재미에 빠질 수 있는 기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들을 선호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한다. 문학이 그 바탕이 되고 있지만, 영화와 TV는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이야기가 펼쳐진다. 같은 문학이 바탕이 되어도 책은 스스로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불편함과 수고가 우리에게 더욱 매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 밑줄을 그으며 공부했던 것들이 우리의 생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생의 길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보다 나은 인간다움의 길로 안내하였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는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잘 지워져 증발해버린다. 그렇다고 영화나 드라마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책을 읽는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보다 효과적으로 ‘마음의 양식’이 되게 한다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할 뿐이다.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 멀지 않다. 만물이 깨어나듯 사람도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계절이다. 독서를 통해 더욱 삶에 진중함과 깊이를 지니는 일이야말로 가치있는 일로, 동물과 인간을 변별하는 척도이다. 언젠가 사두었다가 읽지 못한 책부터 일어보자. 그만큼 삶이 풍요로워지고 깊어지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책 속에 길이 있고, 힘이 있다”는 식상한 말을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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