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노래하며 음악 안에서 살면 좋겠네요"
[남도예술인] 이형주 ‘제33회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수상 싱어송라이터
자작곡 ‘이름 없는 내일’ 동상·동문회상 동시 영예
전대서 철학 전공…‘젠트리피케이션’ 투쟁 연대
2019 EP ‘아토피’ 발매…'오월창작가요제' 수상도
자작곡 ‘이름 없는 내일’ 동상·동문회상 동시 영예
전대서 철학 전공…‘젠트리피케이션’ 투쟁 연대
2019 EP ‘아토피’ 발매…'오월창작가요제' 수상도
입력 : 2023. 01. 26(목) 19:01

싱어송라이터 이형주씨는 “누군가에게 제가 만든 노래를 들려줄 때면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이제는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음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소리를 잃고 음을 뺏긴 난
주먹을 구겨 넣고 골목을 걸었죠.
오늘에 나는 걸음에 맞춰 길을 잃었죠.
곱게 취한 눈으로 날 보는 입술이 부르튼
아저씨에게 여기가 어디냐
엉엉 울며 물어보았죠
(중략)
이곳은 추해 저버린 이름 없는
내일이란다.
- 이형주 ‘이름 없는 내일’ 중
그의 음악 속 화자는 도시에 산다. 차가운 밤거리를 걸으며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소외되고 쫓겨나 방 한 구석에서 외로움을 노래한다. ‘작은 감옥에 들어가 스스로 문을 잠’그고(‘장위동 블루스’ 중), ‘무리지은 경찰은 무엇을 더 빼앗아 갔더냐’(‘응어리’ 중) 울부짖기도 한다.
20대 절반을 겨우 넘긴 나이지만 그의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광주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이형주씨의 이야기다.
이형주씨는 지난해 11월12일 열린 ‘제33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자작곡 ‘이름 없는 내일’로 동상과 동문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쟁쟁한 경연자들이 참가해 수상을 생각지도 못했다는 그는 벅찬 소회를 밝혔다. 두개의 상 중 동문회상은 더욱 특별했다고 한다. 역대 수상자들이 현장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상이어서다.
“경연에서 살짝 가사 실수를 했거든요. 기대를 안하고 있다가 이름이 불리니 정말 기뻤죠. 제가 만든 곡이라 자신감을 갖고 부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형주씨에게 본래 광주는 연고가 전혀 없는 멀고 먼 지방의 한 도시였으나 전남대 철학과에 입학하면서 연을 맺게 됐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고등학교를 타지에 있는 기숙학교로 다녔다. 학교에서 우연히 우쿨렐레를 배우게 된 그는 재미삼아 곡을 만들어봤고, 창작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을 크게 느꼈다. 기숙학교에서 함께 지내던 선배나 친구 또는 유튜브 속 선생님을 통해 어깨너머로 기타를 익히고 노래를 부르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가수가 하고 싶었는지 어머니 앞에서 자주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나요. 혼자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만들어보면서 그렇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몇 가지 공통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소외된 사람들, 춥고 처량한 밤거리, 주로 도시의 뒷 편에 관련된 것들이다.
그는 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201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기다리던 스무살의 겨울, 그는 홍대의 ‘오픈 마이크’ 공연에 참가 신청을 하고 무대에 섰다. ‘나도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구나’를 처음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노래할 장소를 찾던 그즈음, 그는 온라인에 올라온 한 공고를 보게 됐고 어떤 용기에서였는지 주저 없이 작성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임대차 문제로 강제철거 위기에 놓인 서울 신사동 곱창집 우장창창에서 공연할 이들을 찾는 글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다양한 투쟁 현장에서 노래했다.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장에서 폭력에 맞서 사람들과 함께 연대의 음악을 불렀다.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집에서는 용역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6개월 동안 거주하며 작업을 지속하기도 했다.
국가 폭력에 대한 투쟁의 현장으로 발을 넓힌 그는 권력 횡포에 맞서 사태를 알리고 약자의 편에 공감하는 노래를 만들었다. 영상이나 음악 등 미디어로 연대하는 프로젝트팀 ‘미디어로 행동하라’의 일원으로 경북 성주 소성리에서 사드배치 반대 투쟁을 위해 노래했으며, 제주 제2공항 예정 부지와 비자림로, 강정마을에서 신음하는 제주의 고통을 보고 들으며 노래로 만들었다. 그 치열한 현장의 기록들이 옴니버스 앨범 ‘새 민중음악 선곡집’과 ‘섬의 노래’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는 이러한 활동 속에서 ‘도시의 잔인함’을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언급했다. 예쁜 거리와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에 가려진 도시 뒷편 빈민들의 모습, 소거된 목소리들을 발견한 것이다.
어떤 용기와 의지가 갓 스무살에 불과했던 어린 나이의 청년을 움직이게 했을까. 그는 당시 현장에서의 활동이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어요. 희생자들의 또래였던 저는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요. 이후 진상규명운동 등 시민 활동에 적극 동참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제압하고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지 알게 된 거죠.”
그는 2019년 첫 작업물인 EP 앨범 ‘아토피’를 발매했다.
위태로운 도시에서 살아가는 마음을 표현한 타이틀곡 ‘외출’ 등 6곡이 담긴 앨범이다. 그중에서도 ‘장위동 블루스’는 장위동재개발지역의 한 집에서 머물며 만든 곡으로 ‘제8회 오월창작가요제’에서 ‘작은 감옥’이라는 제목으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학에 복학한 2020년에는 ‘제10회 오월창작가요제’에 또 한 번 나가 ‘무궁화기차’라는 곡으로 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학교 공부와 음악활동을 병행하다 지난해 9월 비거니즘(Veganism)을 주제로 한 옴니버스 앨범 ‘공명’에 참여했다.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라 참여를 망설였지만, 동물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더 강하고 큰 것이 약하고 작은 것에 가하는 폭력’이라는 지점에서다.
그는 늘 자신을 ‘음악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음악이 별로라는 생각에 자신을 깎아내리며 고통 받았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런 그에게 힘을 준 건 음악을 잘 듣고 있다며 응원의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마라톤처럼 했으면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거 같은데, 저는 산책처럼 해왔거든요. 쭉 오래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요즘에는 ‘좀 더 치열하게 음악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곧 군 입대를 해야 해서 첫 앨범을 내고 떠나고 싶다는 압박감도 들고요.”
곡을 많이 발표하고,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작업량이 많다보니 이미 만들어 놓은 노래는 수십 곡이지만 좀 더 잘 다듬어 공개하고 싶은 마음에 미뤄왔다.
성격이 느긋하고 차분한 편이라는 그는 음악을 제외하면 평범한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집에서 쉴 때는 유튜브를 보고, 또래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웃기도 한다. 그 나이대 친구들이 그렇듯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머릿속 고민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든 자랑스럽고 당당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누군가에게 제가 만든 노래를 들려줄 때면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했죠. 이제는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음악을 하려고 해요. 또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음악이 제 생업이 될지, 취미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오래하고 싶다는 바람이죠. 나이 들어서도 노래 만들고 공연하는 분들이 참 멋있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음악 안에서 살면 좋겠습니다.”
주먹을 구겨 넣고 골목을 걸었죠.
오늘에 나는 걸음에 맞춰 길을 잃었죠.
곱게 취한 눈으로 날 보는 입술이 부르튼
아저씨에게 여기가 어디냐
엉엉 울며 물어보았죠
(중략)
이곳은 추해 저버린 이름 없는
내일이란다.
- 이형주 ‘이름 없는 내일’ 중
그의 음악 속 화자는 도시에 산다. 차가운 밤거리를 걸으며 내일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소외되고 쫓겨나 방 한 구석에서 외로움을 노래한다. ‘작은 감옥에 들어가 스스로 문을 잠’그고(‘장위동 블루스’ 중), ‘무리지은 경찰은 무엇을 더 빼앗아 갔더냐’(‘응어리’ 중) 울부짖기도 한다.
20대 절반을 겨우 넘긴 나이지만 그의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광주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이형주씨의 이야기다.
이형주씨는 지난해 11월12일 열린 ‘제33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자작곡 ‘이름 없는 내일’로 동상과 동문회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쟁쟁한 경연자들이 참가해 수상을 생각지도 못했다는 그는 벅찬 소회를 밝혔다. 두개의 상 중 동문회상은 더욱 특별했다고 한다. 역대 수상자들이 현장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상이어서다.
“경연에서 살짝 가사 실수를 했거든요. 기대를 안하고 있다가 이름이 불리니 정말 기뻤죠. 제가 만든 곡이라 자신감을 갖고 부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형주씨에게 본래 광주는 연고가 전혀 없는 멀고 먼 지방의 한 도시였으나 전남대 철학과에 입학하면서 연을 맺게 됐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고등학교를 타지에 있는 기숙학교로 다녔다. 학교에서 우연히 우쿨렐레를 배우게 된 그는 재미삼아 곡을 만들어봤고, 창작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을 크게 느꼈다. 기숙학교에서 함께 지내던 선배나 친구 또는 유튜브 속 선생님을 통해 어깨너머로 기타를 익히고 노래를 부르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가수가 하고 싶었는지 어머니 앞에서 자주 부르곤 했던 기억이 나요. 혼자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만들어보면서 그렇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몇 가지 공통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소외된 사람들, 춥고 처량한 밤거리, 주로 도시의 뒷 편에 관련된 것들이다.
그는 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2017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기다리던 스무살의 겨울, 그는 홍대의 ‘오픈 마이크’ 공연에 참가 신청을 하고 무대에 섰다. ‘나도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구나’를 처음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노래할 장소를 찾던 그즈음, 그는 온라인에 올라온 한 공고를 보게 됐고 어떤 용기에서였는지 주저 없이 작성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임대차 문제로 강제철거 위기에 놓인 서울 신사동 곱창집 우장창창에서 공연할 이들을 찾는 글이었다.

‘제주 제2공항 반대 문화제’에 참여해 노래하는 이형주씨

군산 하제마을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해 목소리를 내는 모습
국가 폭력에 대한 투쟁의 현장으로 발을 넓힌 그는 권력 횡포에 맞서 사태를 알리고 약자의 편에 공감하는 노래를 만들었다. 영상이나 음악 등 미디어로 연대하는 프로젝트팀 ‘미디어로 행동하라’의 일원으로 경북 성주 소성리에서 사드배치 반대 투쟁을 위해 노래했으며, 제주 제2공항 예정 부지와 비자림로, 강정마을에서 신음하는 제주의 고통을 보고 들으며 노래로 만들었다. 그 치열한 현장의 기록들이 옴니버스 앨범 ‘새 민중음악 선곡집’과 ‘섬의 노래’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는 이러한 활동 속에서 ‘도시의 잔인함’을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언급했다. 예쁜 거리와 근사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에 가려진 도시 뒷편 빈민들의 모습, 소거된 목소리들을 발견한 것이다.
어떤 용기와 의지가 갓 스무살에 불과했던 어린 나이의 청년을 움직이게 했을까. 그는 당시 현장에서의 활동이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어요. 희생자들의 또래였던 저는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요. 이후 진상규명운동 등 시민 활동에 적극 동참했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제압하고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지 알게 된 거죠.”
그는 2019년 첫 작업물인 EP 앨범 ‘아토피’를 발매했다.
위태로운 도시에서 살아가는 마음을 표현한 타이틀곡 ‘외출’ 등 6곡이 담긴 앨범이다. 그중에서도 ‘장위동 블루스’는 장위동재개발지역의 한 집에서 머물며 만든 곡으로 ‘제8회 오월창작가요제’에서 ‘작은 감옥’이라는 제목으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학에 복학한 2020년에는 ‘제10회 오월창작가요제’에 또 한 번 나가 ‘무궁화기차’라는 곡으로 동상을 수상했다.

이형주씨가 서촌 궁중족발 연대 공연을 펼치고 있는 모습.

을지 오비베어 연대 공연 모습
그는 늘 자신을 ‘음악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음악이 별로라는 생각에 자신을 깎아내리며 고통 받았던 시간들이 많았다. 그런 그에게 힘을 준 건 음악을 잘 듣고 있다며 응원의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마라톤처럼 했으면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거 같은데, 저는 산책처럼 해왔거든요. 쭉 오래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요즘에는 ‘좀 더 치열하게 음악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곧 군 입대를 해야 해서 첫 앨범을 내고 떠나고 싶다는 압박감도 들고요.”
곡을 많이 발표하고,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작업량이 많다보니 이미 만들어 놓은 노래는 수십 곡이지만 좀 더 잘 다듬어 공개하고 싶은 마음에 미뤄왔다.
성격이 느긋하고 차분한 편이라는 그는 음악을 제외하면 평범한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집에서 쉴 때는 유튜브를 보고, 또래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웃기도 한다. 그 나이대 친구들이 그렇듯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머릿속 고민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든 자랑스럽고 당당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누군가에게 제가 만든 노래를 들려줄 때면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했죠. 이제는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은 그런 음악을 하려고 해요. 또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음악이 제 생업이 될지, 취미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냥 오래하고 싶다는 바람이죠. 나이 들어서도 노래 만들고 공연하는 분들이 참 멋있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음악 안에서 살면 좋겠습니다.”
김민빈 기자 alsqlsdl94@gwangn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