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엄청 했지만 경험 많은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
[남도예술인] ‘몽상’ 시리즈 천착 조각가 위재환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만족감 제일 높아 조소에 몰입
"동물과 공존·공생하는 메시지 내포하고 있어" 밝혀
‘몽상가’ 시리즈 신념 바탕으로 작업 끊임없이 견인도
입력 : 2022. 11. 24(목) 18:17
위재환 작가는 “일도 많이 했지만 경험이 많은 작가가 되고 싶다. 미래에는 기쁨을 주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열심히 작업을 펼쳐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 보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이 세상에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 허구와 허망 속에서 대중의 질타를 받더라도 움직이는 마음 속 나의 몽상가를 꺼내어 서투른 여행을 떠나고 싶다. 지나온 기억 속에 힘들었던 고통보다 아름다웠던 추억을 먹이삼아 상상 속의 행복을 불러보며,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날의 바람에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이는 광주문화재단 문화동행 사업으로 마련돼 ‘몽상가-서투른 여행자’라는 타이틀로 지난 10월 한달간 진행된 제25회 개인전의 도록 서문을 통해 밝힌 위재환 작가(조소)의 소감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으로 ‘몽상’(夢想)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을 한다는 우리말 의미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 헛된 생각은 그야말로 헛된 생각이 아닌 듯 싶다. 영어로는 fancy(환상)라는 의미가 있지만 dream이나 vision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헛된 생각만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처럼 몽상가 하면 위 작가가 떠오르는데는 10년 넘게 이 작업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처음으로 몽상가에 주목한데는 일본 애니메이션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1986년 작품 ‘천공의 섬 라퓨타’를 접하고는 큰 충격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여기에 몽상의 개념이 담겨져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도 영향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 소개했다. 물론 그는 류인 조각가(1956~1999)로부터 큰 감화를 받는다. 류인은 천재 요절 조각가이자 국내 20세기 구상조각 3대 거장 중의 한명이자 한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하고, 제1회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한 여수 돌산 출신 서양화가 류경채씨의 막내 아들로 알려져 있다. 류인 외에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1898∼1967)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다는 점 또한 잊지 않았다.

이들 모두 자기 세계가 확실했다. 작가 역시 자기 세계가 확실한 작가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서투른 여행자’
‘몽상가-서투른 여행자’
그는 그림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듯 보인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오로지 그림만 바라봤다고 한다.

오로지 화가를 꿈꾼 셈이다. 그가 처음부터 조각을 손댄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수채화에 집중했고,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조소를 해보자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어렵다는 조소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조소를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은 듯한 눈치다. 손에 흙이 쥐어지면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만족감이 제일 높아 더더욱 조소에 몰입했던 듯하다. 물론 그 역시 힘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우선 육체적 고통보다는 생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고 술회한다. 물론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면 그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풍요로운 시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어려움들이 오늘날 그에 대한 자양분이 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다소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은 지속되고 있는 모양새다. ‘몸상태는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가 조소를 하기 때문에 드로잉을 건너뛴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는 여전히 드로잉 작업을 지속한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설치조각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드로잉을 하면 공간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죠. 거기다 어른의 얼굴과 어린이의 몸을 가지고 순수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조소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그가 조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접지 않는 까닭으로 해석됐다. 사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1년을 프로작가로 데뷔한 시기로 규정한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가 그의 작업 1기로, 남도조각회 정기전에 출품한 소품이 현재의 작업 출발점이 된 셈이다. 초현실주의적 구상에 기댄 작품으로 그는 여전히 이런 기조를 일부 고수하고 있다. 작금의 작업들에서 보면 추상성보다는 구상적 조형미가 도드라져 보여 그 변화를 실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추상을 마스터한 후 현재의 작업에 당도한 것이다. 단절된 전개가 아니라 계속 이어져왔다고 보면 된다.

김냇과 전시 모습
20년이 넘는 작가 생활 중 ‘몽상가’ 시리즈가 등장한 2008년부터 2011년까지가 제2기로 꼽힌다. 제2기는 앞서 언급했듯 미야자키 하야오나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어진 몽상가 작업이 촉발됐다.

그의 작업 제3기는 2012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로 구분할 수 있다. 몽상가는 힘든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탐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기존 몽상가는 어둡고 거칠었다. 그러다 귀여운 몽상을 생각해냈고, 여행의 모든 스토리를 투영하면서 변화를 일궈낸 것이다. 그는 이를 새로운 옷을 입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여행의 패턴이 바뀌다보니 몽상가에 변화가 일 수밖에 없다는 것과 궤를 함께 한다.

“은폐 유형의 몽상가였고,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두려워하며 여행을 추구하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작품에 스릴있는 여행을 투영하고 있어요. 내용적으로 보면 오염을 모두 씻어낸 몽상가이고, 행복한 여행을 추구하죠. 몽상가의 최종 지점은 제가 (작업을 못하는 순간인) 생을 마감하는 날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평생 작업을 해나가야 하니까 작업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겁니다.”

그는 ‘몽상가’ 시리즈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작업을 끊임없이 견인해가고 있다. 몽상가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됐지만 반대로 몽상가 때문에 해보고 싶은 소재나 주제에 대한 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는 이에 대해 몽상가에 동물을 함께 등장시켜 다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6m 규모의 기린을 제작해 선을 보였지만 기린을 망라해 코뿔소와 고래 등을 소품으로 제작, 파급효과를 꾀하면서 몽상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의 진폭은 커졌다. 이를테면 미세 플라스틱 등 바다 환경 오염으로 인해 고래가 바다를 더이상 유영하지 못한다는 설정 아래 하늘로 가 버린다는, 다소 서투른 여행까지를 내용적으로 다뤘다.

“몽상가가 다 서 있고, 달려가기만 하는데 언젠가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몽상가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저의 작품 속 여행은 동물과 공존하고 공생하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어요.”

‘바람맞은 날’


‘하늘과 땅의 중심에서다’
이런 작업 담론을 바탕으로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전시와 관련,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 해외 전시를 더 늘려볼 심산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일도 많이 했지만 경험이 많은 작가가 되고 싶네요. 사는 동안 작가 안팎에서 상처를 주고 받았지만 미래에는 기쁨을 주는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해나갈 겁니다. 열심히 작업을 펼쳐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 보답을 해야겠죠.”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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