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연구하고 계속 변화 추구해 나갈 거예요"
[남도예술인] 독창적 추상회화 일군 화가 송유미
대학 4학년 때에 추상 입문 교사와 작가 오가며 활동
철학 탐닉·무예 연마·서예 습득…수행처럼 작업 펼쳐
주로 곡선 구사 "탄탄한 정신 위해 모든 것들에 집중"
입력 : 2022. 09. 21(수) 18:14
송유미 작가의 서울 인사동 소재 G&J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전경.
송유미 작가 서울 인사동 소재 G&J 갤러리 개인전 전경

자기 자신을 연마하면서 꾸준하게 미술 밖의 공부를 통해 회화의 깊이를 더해가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는 화가이면서 문학 서적이나 철학 서적 등을 쉼없이 탐독,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예술철학을 정립하는 화가들이 유독 눈에 띈다. 그림만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빈곤한 자기세계를 채워넣는 작업을 그림 그리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끊임없이 자기 탐구를 하며 작품의 이론적 근거를 세워가는 화가들 작품은 유독 깊이가 더해 보이고 한번 더 쳐다봐 진다. 자신만의 추상회화를 일구고 있는 송유미 화가가 그런 작가다. 송 작가는 그림을 위해 철학서들을 섭렵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예를 익혔으며, 서예까지 공부했다. 무예는 7년 동안 집중해 연마했고, 서예는 전시를 열었을 정도이니 허투루 보아 넘기는 것은 없는 듯하다. 이런 그를 최근 운암동 소재 한 아파트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만나 그동안 일궈온 회화에 대해 들어봤다.

작가는 현직 교사로 재직하며 작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교사직을 사직하지 않았던데는 경제적 기반이 세워지면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1999년 광산중학교 교사로 첫 부임 후 광주예고 등을 거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작업을 벌여왔던 것이다. 작업을 하기 위해 여러 차례 휴직을 했고, 현재도 휴직 중이라고 전했다. 교사를 하면서 작업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들려줬다. 교직을 그만 둘까 깊은 고민에도 빠졌다고 했다.

작가는 추상회화를 세우기 위해 벤자민이나 아도르노, 마르쿠제, 그리고 프루스트 등의 철학이나 사상들을 탐닉했다. 이중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그에게 현재까지 각인됐을 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전언이다. 이처럼 작가는 자기세계를 위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품의 소유자로 읽혔다. 이런 철학적 기반이 그의 추상회화를 더욱 깊이있고 풍성하게 이끄는 요인으로 파악됐다.

사실 그의 미술입문은 처음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3 때 그림이 너무 좋아 미술을 하겠다고 했는데 미술교사인 부친의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부친은 미술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미술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 전남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였다. 미술교육과에 진학하면서 그의 미술 인생은 시작됐다. 운이 좋게 그는 임용고사를 통과해 1999년 미술교사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화가로서의 꿈을 꿈으로만 접어놓을 수 없었다.

그는 화가를 하기 위해 학업에 충실했다. 그것이 화가의 길로 빨리 접어들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듯하다. 그에게 추상이 찾아온 것은 대학 졸업 무렵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의 동경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주목했다. 추상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조선대 김유섭 교수를 찾아갔다. 이후 조선대 대학원에 진학해 김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실력을 쌓아갔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고 했더니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드로잉을 하라고 이야기해 주시더군요. A4 크기만 한 데다 그리지 말고 구할 수 있는 제일 큰 종이에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백일 동안 드로잉 작업을 수행했죠. 제 생각은 백‘일기도처럼 하면 무언가 이뤄지지 않을까’해서 백일 드로잉을 실행했어요. 대학원 재학시에 학교를 휴직해 이처럼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무한에 대한 상상 21-16’
‘drawing20-55’
백일드로잉은 2020년에 했는데 그때 했던 작품들을 페이스북 등 SNS에 소개해 나름 반응을 얻었다. 백일드로잉을 하고 나니 기법 등이 스스로 체득됐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SNS를 잠시 쉬고 있지만 백일드로잉 당시 작품들은 페이스북 등에 올려져 많은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었다.

SNS활동에 힘입어 미국 뉴욕 첼시 아쿠아갤러리 소속작가로 연결됐다. 그는 SNS 상 활동이 장단점이 병존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자신의 작품이 어느 위치에 있을까’를 알고 싶었기 때문에 한때 SNS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올 3월 뉴욕 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해외 전시에 관심을 두는데는 광주에서 제대로 평가를 못받고 있다는 생각이 작용한 때문으로 이해됐다.

앞서 언급한 무예 수련은 ‘기천’이라는 것으로, 고조선에서부터 내려온 무술이라는 설명이다. 사범 자격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는 무예의 움직임이 태극이나 오행의 흐름에서 왔다고 봤는데 에너지의 흐름이 빨라지면, 공격하고 수비하는 틈이 없어지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한 흐름들이 선의 흐름들에서도 발현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가 이처럼 추상을 위해 많은 경험과 공부를 병행한데는 그림의 기본요소를 가지고 그리는 것이 추상이라는 생각에서다. 기본 요소로 점과 선, 면, 색 등 네가지를 꼽았다. 작가는 주로 선을 사용한다. 선 중에 곡선을 구사한다. 단순하게 선이 선에 그치지 않는다고 인식한다.

“선은 형태에 가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선에는 형태로 가기까지의 에너지가 있어요. 무예수련을 7년 했는데 그 무렵 도심이 아닌, 장성에 거주를 하게 되면서 무예 연마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검을 제 손처럼 자연스럽게 쓰기 위해 연마했던 것처럼, 붓을 드는 일 역시 수행처럼 하고 있죠. 추상회화를 하려면 정신적으로 탄탄해야 하니까 이 모든 것들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에게 철학서 읽기와 무예에 이어 자신을 닦는 수행과 같은 역할을 해준 것이 서예였다. 서예를 연마하는 것 역시 게을리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임했다는 후문이다.

송유미작가는 교사를 하면서 작업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작가로서 깊이있는 작업을 잊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작품 앞에 선 송유미 작가
나중에는 종교적 기운에까지 가닿았던 것으로 보인다. 큰 아이를 임신하면서 추상에 깊게 몰입했다. 그 전에 그는 대학시절을 회고했다. 이태호 교수로부터 한국미술사 수업을 받았는데 고구려 고분벽화 ‘주작도’는 그에게 큰 감화를 남겼다. ‘주작도’를 보고 그는 에너지를 느꼈던 것 같다. 동북공정이 그래서 더 안타깝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붕새’에 관심을 두고 있다. 붕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새로 9만리를 나는 데 6개월을 난 뒤 쉴 정도로 자유로운 새라고 설명한다. 그의 전시에서 선보인 ‘무한에 대한 상상’ 연작은 이를 근거로 하고 있다. 근래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선을 계속 반복해 무한히 연결하면 그 안의 선들은 밀려 들어갈 것으로 본다. 붕새가 날 수 있는 큰 공간을 구축하고 싶은 것이 작가의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떤 작가로 평가받고 싶냐’는 질문에 연구하는 작가라는 답을 내놓았다.

“꾸준히 연구하고 계속 변화를 추구해 나갈 거예요. 변화하지 않고 멈춰버린다면 그것은 기계적 반복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죠. 저는 추상을 함에 있어 변증법적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변증법을 통해 과정의 중요성과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 등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변화하려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시민자유대학 활동을 망라해 철학적인 부분을 많이 섭렵한 이면도 정신적인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였죠.”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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