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풀 뜯어 먹는 소리
김요수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감사실장
입력 : 2022. 04. 20(수)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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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세평] 100의 우리말은 ‘온’이고, ‘온’에는 ‘많다’는 뜻이 담겼다. 그래서 ‘온 누리에 떨쳤다’는 세상 곳곳에 알렸다는 뜻이겠다. 천의 우리말은 ‘즈믄’이니, ‘즈믄 나들목’이라면 천안 3거리처럼 사람들이 천 번을 다니는 길이겠다.
만의 우리말은 ‘골(거믄)’이니, 골짜기는 매우 깊숙하다는 뜻이겠고, 억의 우리말은 ‘잘’이니, ‘곧잘’ 한다는 말은 ‘골잘’이 바뀐 만 번 억 번을 연습했다는 뜻이겠고, ‘잘 한다’는 억 번을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조의 우리말은 ‘울’이니, ‘울울하다(우울하다)’는 너무 빽빽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거나 너무 많아 답답하다는 뜻이 아닐까?
잊힌 우리말을 살려서 온 누리에 떨치고, 우리말이 즈믄 해로 빛나면 좋겠다. 우리말을 골잘(곧잘) 갈고 닦아서, 해처럼 거룩하게 잘울 내내 지지 않으면 좋겠다.
455일째 하루 ‘골(만) 걸음’ 걷기를 한다. 하루도 빼지 않았지만 골로 가지는 않았다. 아, 사흘 빼먹었다. 코로나 예방 주사를 맞고 해롱거린 하루, 황 박사랑 12시간 토론하느라 하루, 마냥 게으르고 싶었던 하루. 봄이 오니 곳곳을 더 많이 걷는다.
요즈믄(요즘) 걸으면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 꽤 있다. 개라고 하면 퉁바리를 먹을 수 있으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개라는 우리말을 버리고 ‘반려견’이라 해야 핀잔 듣지 않는다. 반려견을 끌고 나오는지 반려견에 끌려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끌고 가는지 민주주의에 끌려가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있다. 사람이 주인이라는 말이 자랑스러우니까.
옛날의 개는 기르는 것이어서, 먹을 것을 주면 좋아했다. 지금의 반려견은 함께 사니까 먹을 것을 봐도 껄떡거리지 않는다. 먹을 것을 주면 좋아하는 것을 ‘사육’으로 보느냐, 먹을 것을 줘도 껄떡거리지 않는 것을 ‘훈련’으로 보느냐의 차이는 알 수 없다. 힘부림(권력)의 언저리에서 사육되는지, 훈련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힘부림 앞에 고개를 숙이며 산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옛날의 개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짖었고, 낯익은 사람이 오면 꼬리를 흔들거나 날뛰며 좋아했다. 지금의 반려견은 함부로 짖지 않고, 아무렇게나 날뛰지 않는다. 개는 짖어서 제 노릇을 했고, 꼬리를 흔들어 마음을 드러냈다. 반려견은 이웃에 거리낌(방해)을 주지 않도록 못 짖게 수술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주인이 부르면 달려와 무릎을 꿇고 앉도록 가르쳤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의 뜻대로 개를 기르는지, 반려견의 마음을 읽어 함께 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만 인정과 견정(犬情) 사이에서 어지럽다.
묶인 개는 가까이에 똥오줌을 쌌고, 주인이 치워 거름으로도 썼다. 풀린 개는 냄새를 맡다가 알맞은 곳에서 다리를 들거나 웅크렸다. 주인은 치우지 않았고 똥오줌은 자연으로 돌아갔다. 가끔 ‘개 똥도 약에 쓰려고’ 찾는 사람이 있었다. 함께 산책하던 반려견이 똥을 싸면 주인이 바로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똥을 치운다. 비닐로 느껴지는 똥의 따끈함과 물컹함을 느끼겠다. 오줌은 잘 치우지 않는다. 비닐에 쌓인 똥은 쓰레기통에 버려져 파리가 들끓는다. 비닐이 썩은 뒤에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파리를 잉태하고 생산한 뒤 자연으로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높은 자리에 올라 제 몫을 하고 거름으로 쓰이는지, 제 배만 채우면서 파리만 들끓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개는 마당에서 살았고, 반려견은 방에서 잔다. 개는 좀처럼 씻지 않았고, 반려견은 주인의 손길로 깨끗이 씻긴다. 개는 추워서 쓸쓸하고, 더워서 헐떡인다. 반려견은 먹이를 다투지 않으니 배운 티(?)가 나고, 사람의 사랑을 애타게 찾으니 사랑이 목마르다. 슬기로운 목대잡이(리더)가 쓸쓸하나 다투지 않고, 어리석은 목대잡이가 헐떡이며 잘난 체하고 사랑을 찾는 것과 같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으니까, 개를 기르든 반려견과 함께 살든 하겠다. 그런데 개와 반려견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 것일까? 봄을 느끼면서, 개와 반려견의 마음을 읽으며 걸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걸음마를 한 뒤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2잘(억) 걸음은 넘지 않았을까?
그때 반려견과 함께 가는 두 사람이 말한다. 누리(세상)에는 우리 반려견(개)만도 못한 사람이 있다고! 뜨끔하다. 나는 개만도 못한 삶인가, 개 같은 삶인가, 개보다 나은 삶인가?
만의 우리말은 ‘골(거믄)’이니, 골짜기는 매우 깊숙하다는 뜻이겠고, 억의 우리말은 ‘잘’이니, ‘곧잘’ 한다는 말은 ‘골잘’이 바뀐 만 번 억 번을 연습했다는 뜻이겠고, ‘잘 한다’는 억 번을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조의 우리말은 ‘울’이니, ‘울울하다(우울하다)’는 너무 빽빽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거나 너무 많아 답답하다는 뜻이 아닐까?
잊힌 우리말을 살려서 온 누리에 떨치고, 우리말이 즈믄 해로 빛나면 좋겠다. 우리말을 골잘(곧잘) 갈고 닦아서, 해처럼 거룩하게 잘울 내내 지지 않으면 좋겠다.
455일째 하루 ‘골(만) 걸음’ 걷기를 한다. 하루도 빼지 않았지만 골로 가지는 않았다. 아, 사흘 빼먹었다. 코로나 예방 주사를 맞고 해롱거린 하루, 황 박사랑 12시간 토론하느라 하루, 마냥 게으르고 싶었던 하루. 봄이 오니 곳곳을 더 많이 걷는다.
요즈믄(요즘) 걸으면 개를 끌고 나오는 사람 꽤 있다. 개라고 하면 퉁바리를 먹을 수 있으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개라는 우리말을 버리고 ‘반려견’이라 해야 핀잔 듣지 않는다. 반려견을 끌고 나오는지 반려견에 끌려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끌고 가는지 민주주의에 끌려가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있다. 사람이 주인이라는 말이 자랑스러우니까.
옛날의 개는 기르는 것이어서, 먹을 것을 주면 좋아했다. 지금의 반려견은 함께 사니까 먹을 것을 봐도 껄떡거리지 않는다. 먹을 것을 주면 좋아하는 것을 ‘사육’으로 보느냐, 먹을 것을 줘도 껄떡거리지 않는 것을 ‘훈련’으로 보느냐의 차이는 알 수 없다. 힘부림(권력)의 언저리에서 사육되는지, 훈련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힘부림 앞에 고개를 숙이며 산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옛날의 개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짖었고, 낯익은 사람이 오면 꼬리를 흔들거나 날뛰며 좋아했다. 지금의 반려견은 함부로 짖지 않고, 아무렇게나 날뛰지 않는다. 개는 짖어서 제 노릇을 했고, 꼬리를 흔들어 마음을 드러냈다. 반려견은 이웃에 거리낌(방해)을 주지 않도록 못 짖게 수술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주인이 부르면 달려와 무릎을 꿇고 앉도록 가르쳤는지 알 수 없다. 사람의 뜻대로 개를 기르는지, 반려견의 마음을 읽어 함께 하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만 인정과 견정(犬情) 사이에서 어지럽다.
묶인 개는 가까이에 똥오줌을 쌌고, 주인이 치워 거름으로도 썼다. 풀린 개는 냄새를 맡다가 알맞은 곳에서 다리를 들거나 웅크렸다. 주인은 치우지 않았고 똥오줌은 자연으로 돌아갔다. 가끔 ‘개 똥도 약에 쓰려고’ 찾는 사람이 있었다. 함께 산책하던 반려견이 똥을 싸면 주인이 바로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똥을 치운다. 비닐로 느껴지는 똥의 따끈함과 물컹함을 느끼겠다. 오줌은 잘 치우지 않는다. 비닐에 쌓인 똥은 쓰레기통에 버려져 파리가 들끓는다. 비닐이 썩은 뒤에 자연으로 돌아가는지, 파리를 잉태하고 생산한 뒤 자연으로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높은 자리에 올라 제 몫을 하고 거름으로 쓰이는지, 제 배만 채우면서 파리만 들끓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개는 마당에서 살았고, 반려견은 방에서 잔다. 개는 좀처럼 씻지 않았고, 반려견은 주인의 손길로 깨끗이 씻긴다. 개는 추워서 쓸쓸하고, 더워서 헐떡인다. 반려견은 먹이를 다투지 않으니 배운 티(?)가 나고, 사람의 사랑을 애타게 찾으니 사랑이 목마르다. 슬기로운 목대잡이(리더)가 쓸쓸하나 다투지 않고, 어리석은 목대잡이가 헐떡이며 잘난 체하고 사랑을 찾는 것과 같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으니까, 개를 기르든 반려견과 함께 살든 하겠다. 그런데 개와 반려견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 것일까? 봄을 느끼면서, 개와 반려견의 마음을 읽으며 걸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걸음마를 한 뒤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2잘(억) 걸음은 넘지 않았을까?
그때 반려견과 함께 가는 두 사람이 말한다. 누리(세상)에는 우리 반려견(개)만도 못한 사람이 있다고! 뜨끔하다. 나는 개만도 못한 삶인가, 개 같은 삶인가, 개보다 나은 삶인가?
광남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