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자연·일상과 나눈 내적 대화…인간적 체취 ‘가득’
고재종 시인 에세이집 ‘감탄과 연민’ 출간
여러 매체에 발표…시·수필·시론 등 투영
입력 : 2021. 05. 17(월)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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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 출생 고재종 시인이 내밀한 고백을 담은 에세이집을 펴냈다.

‘첫사랑’과 ‘면면함에 대하여’, ‘성숙’, ‘수선화, 그 환한 자리’ 등 여러 명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의 에세이집 ‘감탄과 연민’(문학들)이 그것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앞의 시들을 포함해 수필 ‘감탄과 연민’을 함께 엮었다. 시인의 문학적 모태이자 자산이라 할 수 있는 고향과 가족사 그리고 성장기의 아픔까지 진솔하게 담아내 시인의 인간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며 시와 책, 인생에 대한 간명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가 읽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인은 그동안 신문, 잡지 등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 가운데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가려 뽑았다.

시인은 수필 ‘감탄과 연민’에서 ‘눈 들어 산을 바라보면 연두 초록 마구 번지는 사이로 산벚꽃, 철쭉꽃, 조팝꽃이 펑펑 제 황홀을 터트린다. 발자국 옮겨 들길을 걸으면 보리밭 서리서리 물결치는 그 곁에 자운영, 민들레, 제비꽃은 또 꽃수를 놓고, 어느 담장 안을 들여다본들 영산홍, 금낭화, 홍도화 한 무더기 피지 않은 집이 없다’고 읊고 있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산벚꽃의 휘황함이나 철쭉꽃의 정열, 조팝꽃의 떨림이나 민들레의 미소, 자운영의 유혹과 같은 찬란한 자연물의 미(美)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서정적 언어로 풀고 있다.

또 수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에서 ‘나와 함께 교회를 다녀오는 2~3km의 강둑길에 아까시꽃이 만발해서 그 길은 천국 길이었다. 꽃의 향기와 새하얀 빛깔에 달빛이라도 더해지면 나는 몹시 힘들어지는 숨결이 혹시 누나에게 전해질까 봐 자꾸만 고개를 외로 돌렸다’고 쓰고 있다.

이 수필은 중학교 2학년 때 호남예술제에 출전해 산문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인연으로 만난 같은 반 친구 누나와의 추억이 드러난다.

시와 시론을 활용한 문장들은 산문의 깊이를 더한다.
고재종 시인
‘길은 어디서나 열리고 사람은 또 스스로 길이다. 서늘하고 뜨겁고 교교하다. 난 아직도 들에서 마을로 내려서는 게 좋으나, 그 어떤 길엔들 노래 없으랴. 그 노래가 세상을 푸르게 밝히리’(시 ‘들길에서 마을로’ 일부)라거나 ‘시인이란 궁극적으로 삶과 세상과 우주의 비밀을 혼자 읽고 깨치는 ‘독학자’거나, 자본의 태양세례로부터 자기를 지키고자 ‘지하생활자’가 되거나, 혹은 자발적인 발언을 위해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남는 존재다’(시론 ‘나는 울부짖음의 전문가가 되겠다’)라고 하는데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에세이집은 4부로 구성됐다.

먼저 제1부에는 자연과 일상을 관찰하며 느낀 삶의 경이와 이상을 담았으며, 제2부에는 아홉 남매의 태반을 고스란히 보관해 오시던 어머니, 생의 축복과 슬픔이었던 누이들, 늘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온 자신에게까지 돈을 꾸러 온 친구, 호기심을 참지 못해 금단의 영역을 엿보고자 한 어린 시절의 추억 등 시인의 개인사와 성장기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제3부에는 문학 작품을 비롯해 시인이 30여 년 동안 머리맡에 두고 탐독해 온 구도서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제4부에는 소설가 지망생이 시인이 된 사연,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시작(詩作)에 대한 고민 등 일상을 자양분 삼아 독자적인 영역을 갖추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시인의 삶이 돋보인다.

이처럼 이 에세이집은 시인과 자연, 일상과 주고 받은 내적 대화의 기록들로 이해하면 된다.

고재종 시인은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동구밖집 열두 식구’ 등 7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를 시청하다’와 육필시선집 ‘방죽가에서 느릿느릿’이 있고, 산문집으로 ‘쌀밥의 힘’,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와 시론집 ‘주옥시편’, ‘시간의 말’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 다수를 수상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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