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잘 만지는 시인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 詩 쓸 거예요"
[광주작가] ‘몽골과 광주문학’ 가교 나선 강회진 시인
유년시절부터 작가 꿈…삶 표류할 때마다 해외서 길 모색
‘몽골문학 모임’ 결성 산파 역할 문단 해외교류 시발 주목
앞으로 착하고 순한 작품보다는 다른 패턴 창작 시도 계획
입력 : 2018. 03. 15(목)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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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회진 시인은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시적 방향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시의 방향을 틀어 써보고 싶다”며 “착한 시 말고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대신 지금까지 제가 해보지 못했던 다른 패턴의 시를 창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몽골 사람들은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고 말하지요. 고비의 바람은 무슨 색일까. 2박3일 초원을 달려 고비에 도착했습니다. 저물 무렵, 고비의 바람은 하얀 바람. 사막에 조심스럽게 당신의 이름을 써 봅니다. 훅, 바람 불자 글자들이 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아마도, 당신 마음 쪽으로 날아갔으리라 믿습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당신이 나를 지나간 자리 … 어딘가를 생각한다는 일은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당신을 지나가는 중입니다. 하얀 초승달 목에 걸고 끄덕끄덕 낙타 한 마리, 흰 사막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포토에세이집 81쪽 ‘바람의 색깔’ 전문이다. ‘했으나 하지 않은 날들이 좋았다’라고 하는 다소 독특한 제목의 이 포토에세이는 강회진 시인이 그동안 몽골에서 깨달은 말들을 감성적 촉수로 걷어올려놓은 것이다. 몽골 이야기하면 흔히 몽골 여행서 쯤 될 것으로 여기기 쉬우나 이 포토에세이는 시인이 삶이 막혀 표류할 때마다 그 표류를 끝내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한 동력과도 같은 몽골에 대한 마음과 정신의 기록이다.

이처럼 시인이 내보이는 지점은 광주시단에서 매우 독특하다 할 수 있다. 미술이나 공연 분야처럼 소외되지 않았더라면 새롭지 않을 수 있겠으나 문학 분야는 지극히 침체되고 소외된 장르로 인식된 지 꽤 오래됐다. 그러다보니 해외와의 문학교류는 점점 언감생심(焉敢生心)이 되는 듯 여겨져 왔다. 뜻맞는 문인들이 모여 해외문학답사를 떠났다는 이야기기도 들은 바 없다.

그런데 문인들 10명이 의기투합해 지난 1월26일부터 30일까지 몽골 문학답사를 다녀왔다. 몽골 문학과 가교를 가능하게 한 장본인은 이 포토에세이집의 저자인 강회진 시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광주에서 처음으로 이처럼 많은 문인들이 함께 해외문학답사를 다녀온 첫 사례로 꼽힐 정도다. 그만큼 문학분야는 이 지역에서는 해외를 다녀오기가 어려운 여건이 지속돼 왔다. 이들은 몽골로 건너가 그곳 작가회의와 정식 MOU를 체결해 교류를 위한 첫 단추를 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몽골 문학답사는 강회진 시인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시단에서 몽골 통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어서다. 이런 강회진 시인을 지난 2월9일 광주시 서구 풍암지구 한 카페에서 만나 문학 입문에서부터 현재 활동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침 이날 ‘몽골문학과 교류하는 광주전남작가들의 모임’이 결성돼 첫 모임을 갖는 날이었다.

시인이 문학에 입문한 계기는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다. 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와 손위의 오빠들이 글이나 그림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책이나 독서가 친숙해진 것이다. 그는 유년시절 공부 상보다 글짓기상이 더 많은 문학꿈나무였다. 다만 그가 자라던 곳이 시골이다보니 교과서류를 제외하고는 책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교과서 속 글을 읽으면서 책과 좀더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 그러니 꿈도 자연히 책과 가까운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

그는 청소년기 든든한 문학선생님을 만난다. 고교시절 은사였던 구재기·이정록 시인을 만나게 되고, 이들 은사들로부터 유야무야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그때 인연이 돼 지금도 명절날 고향인 충남 홍성을 찾게 되면 꼭 인사차 찾아뵙는다는 후문이다.



몽골 징기스칸 공항에서 기념촬영에 나선 광주작가들.
시인은 광주와 대학 때 인연을 맺는다. 당시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던 고 조태일 시인(1941∼1999·前 광주대 교수)을 보고 선택한 곳이 광주였다. 그가 학부를 졸업할 무렵에는 대학원에 문예창작과가 없어 단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한 뒤 2003년 아르바이트 등으로 마련한 여비로 몽골에 처음 다녀오게 되면서 그곳과 연을 맺는다.

이후 그는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어과가 개설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리자미 사범대에 한국어 선생으로 들어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머물면서 고려인의 삶과 역사, 그리고 실상들을 파악하게 된다. 이것이 훗날 그가 고려인 문학을 최초로 다룬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하게 된 단초가 됐다.

그래서 중앙아시아는 시인의 시문학 한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제1, 2시집 모두 자신이 출국해 있던 나라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점은 이를 잘 뒷받침한다.

“제 시는 여행 또는 낯선 곳의 감성을 형상화한 것들이 많아요. 첫 시집 ‘일요일의 우편 배달부’를 출간하는데 중앙아시아의 영향이 컸죠. 여행으로부터 감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 속에서 낯선 지명이나 용어 등의 노출을 되도록 꺼려 했죠.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적 여행시보다는 깊이있는 시를 쓰고 싶은 것이 지금의 제 생각이라고 보면 됩니다. 여행하면서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두죠. 이 시적 메모는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창작을 통해 완성을 합니다.”

그의 두번째 시집 ‘반하다, 홀딱’은 중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제남대학 한국어과에 적을 두고 머무르면서 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시인으로서의 삶 대부분이 여행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는 네팔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도 섭렵했다. 그의 여행은 그냥 여행의 추억 쯤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집으로 승화하거나 에세이집으로 반드시 승화한다. 그의 여행은 미술에서의 결과보고 전시처럼 분명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시문학 역시 닮은꼴을 하고 있다. 그의 시는 습작기부터 줄곧 시가 너무 착하고 순하다는 지적을 받아오곤 했다. 그래서 시적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려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시적 방향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시의 방향을 틀어 써보고 싶습니다. 계간 ‘문학들’(2017년 겨울호)에 시 ‘나는 여러번 죽고 싶다’를 발표했었죠. 착한 시 말고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대신 이 시처럼 지금까지 제가 해보지 못했던 다른 패턴의 시를 창작할 생각입니다. 이번 포토에세이집도 착하고 순하다는 평가가 있는 것을 보면 성향 자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지만요.”

요즘 시단에서 난해한 일부 시집이 독자들을 만나고 있으나 그는 난해한 시보다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시를 꿈꾼다. 문인으로서 후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결과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마음 한켠으로 이번 몽골 포토에세이집을 낸뒤 몽골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더라고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몽골 여정이 완성됐다는 생각 때문으로 이해됐다.



강회진 시인이 최근 펴낸 포토에세이집.
그에게 ‘어떤 시인으로 평가받고 싶냐’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오랫동안 기억되는 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단어를 잘 만지는, 만드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저는 시를 한번에 쭉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 만지고 또 만지고 하는 스타일입니다. 오랫동안 만져 완성시키죠. 그런 만큼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시를 쓸 거예요. 대중들의 기억에 회자되는 단 한편의 시일지라도 말이죠.”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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