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흐엉’은 시대의 아픔이자 희망
전남도립국악단 ‘흐엉의 희망일기’를 보고
전라남도 문화정책자문위원 임영규
입력 : 2017. 06. 13(화)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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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문화정책자문위원 임영규
다문화라는 말을 실감하듯 도심 한복판이나 북적이는 공단, 한가한 시골마을 등에서도 이제 외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거주 외국인들의 비율을 보면 중국에 이어, 베트남이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외국인과의 혼인비율은 10%에 해당되며, 다문화가정의 자녀수는 9만명 선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다문화는 우리사회에 폭넓게, 깊숙이 연관돼 있는 분명한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 다문화주의란 하나의 국가 안에서 여러 민족(국가) 간의 다른 문화들이 공존하는 형태를, 다문화가족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가정을 의미하고 있다. 저마다의 색과 향이 다른 고유문화들이 잘 어우러져 보다 진보한 신문화를 창출하고, 나아가 인류화합에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은, 예기치 못한 문제점에 봉착해 있다.

언어불통과 문화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특히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총부리를 겨눈 적대국이었던 관계로,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서로 풀어야 할 역사적 책임을 떠안고 있다. 월남전 당시 자유월남을 지원했던 나라는 미국을 비롯하여 한국, 태국, 호주, 필리핀, 뉴질랜드 등이 있었다. 이중 한국군의 용맹성은 어떤 나라의 군대와도 감히 비할 수 가 없었다. 8년여(1965~1973) 동안 32만 명의 교체병력을 투입한 것도 다른 나라에 비해 대규모였지만, 세계는 한국군의 우수한 전투력을 매우 높게 평가했었다. 하지만 그 업적이 크면 클수록 상대방의 피해와 아픔은 또 그만큼 더 깊어 졌을 것이다.

전남도립국악단이 기획한 ‘흐엉의 희망일기’ 공연을 관람하면서 농촌청년, 국제결혼, 외국인 며느리와의 고부갈등, 다문화가정, 베트남과의 전쟁역사 등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농촌이 많은 전남의 현장을 그대로 베껴 놓은 듯하면서도, 우리나라와 베트남이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를 인식시켜주고, 또 그것을 풀 물꼬를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베트남 어부의 딸 흐엉은 친구 홍누홍처럼 한국남자와 결혼하기로 맘먹는다. 건장한 무안 노총각 삼식은 결혼할 여성이 필요했고, 흐엉은 가난한 가정 때문에 한국행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흐엉의 아버지는 월남전 피해자로 한국을 무척 증오하는 사람이었고, 치매에 걸린 삼식의 할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였다.

과거 어쩔 수 없었던 전쟁의 비극과 현대의 다문화 문제 등, 시대성이 강조된 새로운 극으로 기획된 이 창극은 스토리도 탄탄하고, 대사처럼 많았던 음악곡도 모두 훌륭했다. 아울러 단원들의 가창력과 연기,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서 쉬는 시간 없이 2시간여 계속됐던 기악연주도 뛰어났다. 흐엉과 삼식 두 주인공들의 연기도 아주 우수했지만, 삼식모와 부녀회장의 실감나는 끼, 흐엉 아버지와 오노인(삼식조부)의 중압감은 실로 대단했다. 그리고 이장과 마을 남녀주민들, 촌티 팍팍 풍기는 건달 등도 서로 조화롭게 융화되면서, 각자 배역 이상의 양념효과를 잘 나타내 주었다.

유장영 예술감독은 연출, 작곡과 각색을 도맡았고, 단원들은 외부 객원 투입 없이 정해진 역할을 적절히 소화해 주었다. 이는 대작을 국악단이 독자 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데 충분했다. 1986년 창단된 국악단의 설립주체는 전남도(단장 행정부지사), 운영은 전남문화관광재단이 맡고 있는데, 앞으로 전문성과 효율성이 더욱 향상되리라 기대된다. 지금까지 국내외 초청과 기획·정기 등 2600여 회의 공연을 실시했으며, 창작브랜드 공연으로 창무악 ‘해상왕 장보고’(2000), 국악뮤지컬 ‘인동초처럼 살리라’(2011), 창극 ‘홍길동’(2013), 판페라 ‘이순신’(2014), 창극 ‘나비야 청산도가자’(2016) 등의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지만, 당시대를 주제로 한 작품은 ‘흐엉의 희망일기’가 처음이다.

이번 공연은 광주와의 시·도립교류공연의 일환으로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열었다. 국악공연인데다가, 다음날 출근을 앞둔 일요일인데 과연 관람객은 얼마나 올까? 하는 필자의 선입견과 우려는 사람들로 꽉 메워진 로비에서부터 무너지고 말았다.

뜨거운 환호와 박수로 성원해 준 1500여 관객의 가슴속에 ‘흐엉의 희망일기’가 한국과 베트남, 전남과 도립국악단의 미래 희망으로 깊게 새겨졌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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