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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광주 광산구 '더 좋은 자치공동체 주민회의'

2017. 04.02. 17:44:55

지난해 6월22일 열린 수완동장 주민추천회의

지난해 6월22일 열린 광산구 수완동장 주민추천회의
지난해 10월12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마을국제컨퍼런스 참여한 민형배 광산구청장 (오른쪽 첫번째)
지난해 10월12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마을국제컨퍼런스 참여한 민형배 광산구청장 (오른쪽 첫번째)
지난 2월7일 광산구 운남동주민회의 마을의제 선정투표
지난 2월20일 광산구 첨단2동에서 열린 마을의제 선정투표




내가 가꾸는 공동체…민주주의를 꽃피게 하다



‘마을의제 선정부터 사업 우선순위까지’ 21개 동서 논의

2014년 전국 최초 동장 주민추천제 시행…7명 동장 임명

“행정만족도·인사정책·투명성 등 상승…일석삼조 효과”



봄이 왔다. 헌정 초유의 국정농단과 탄핵의 계절은 지났다. 광장의 시민혁명은 이른 대선을 이끌었다. 여기저기서 더 나은 삶을 약속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은 정치인만의 몫일까. 시민의 역할은 한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걸까.

광주 광산구에 사는 시민들은 공동체에서 답을 찾았다. 공동체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키운 직접 민주주의는 내 삶, 내 이웃의 삶을 돌봤다. 4년차를 맞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푸릇푸릇한 잎사귀도 제법 탄탄하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뜨거운 민주주의를 경험했다면 올봄 싱그럽고 살맛 나는 민주주의를 엿볼 차례다.



△내 삶은 내 손으로

매년 봄·가을이면 광산구 동마다 민주주의 잔치가 열린다. 2014년부터 시작한 ‘더 좋은 자치공동체 주민회의’(이하 주민회의)다. 지난달 2일 7회차를 마친 광산구 주민회의의 누적 참여인원은 2만2000여명, 제안된 의제는 700건에 이른다. 한 번 열릴 때마다 평균 토론시간은 100분을 훌쩍 넘긴다.

주민 스스로 마을 의제를 발굴하고 현안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만큼 주민회의 열기는 국회 못지않다. 봄에는 주민들이 제안하거나 해결을 요구한 사업들을 구가 접수하고 가을에는 완료했거나 추진 중인 사업 경과를 상세히 공개한다. 동별 자치조직은 주민회의 2~3개월 전부터 분과별 위원회를 구성해 토론하면서 주민회의에서 다룰 마을 의제를 마련한다.

주민회의는 광산구 21개 동을 순회해 열린다. 참석한 주민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 있어서 전문가다. 마을 현안을 꿰뚫고 있다 보니 관료 중심 탁상공론으로는 볼 수 없었던 내 삶과 이웃의 삶이 의제에 오른다. 발언 기회도 공평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안건을 제안하고 토론과 투표로 이어진다.

신창동 주민회의에선 공방거리 힐링공간 조성이 안건에 올랐다. 가구·의상·생활용품을 만드는 공방들이 밀집된 거리에 주민이 모여 대화를 나눌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인 장소를 어디로 정할지부터 재능기부와 장소공유 의사가 즉각 교환된다.

송정1동의 ‘카페 마망’(maman 프랑스어로 엄마)과 신가동 ‘뚝딱뚝딱 예술창고’는 주민회의의 성과다. 송정1동 주민들은 미혼모가 우리 이웃이자 일원으로 설 수 있도록 주민센터 일부 공간을 카페로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카페 마망은 마을공유공간이자 미혼모의 자립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

뚝딱뚝딱 예술창고는 방치된 폐창고가 아이들의 문화교육공간으로 재탄생한 사례다. 신가동 주민회의에서 결정되고 비아농협과 예술교육단체 마당집의 지원을 받았다. 마을의 20여명 아이들이 하교 후 예술창고로 몰려와 그림을 그리고 색을 채워놓으면 작가들은 이를 보조해 작품을 완성한다.

송정시장 빈 점포를 카페로, 폐교된 옛 본량중학교를 농촌체험학교(꼬마농부 상상학교)로 만들고 마을신문과 동네방송을 신설하는 것 모두가 주민이 제 손으로 만든 삶의 변화다.

주민회의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일상의 정치가 실현된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전화로 주민의 뜻을 행정에 반영시킬 수 있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광산엠보팅’(광산 M Voting)덕이다.

운남동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 인사말 자동음성기 설치여부나 광산구 주민 무료정보화 교육의 수강과목 정하기 같은 소소한 일부터 2017 광산구 13억원 예산 사용처를 정하는 일까지 광산엠보팅에서 주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

주민회의의 성공적인 안착에는 광산구공익활동지원센터의 다양한 뒷받침이 크게 작용했다. 공익활동지원센터는 주민회의 진행자 교육과 실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마을별 맞춤 전략을 수립해 실천했다. 또 주민들이 마을에 필요한 사업 자금 확보를 위해 중앙정부와 광역시, 공공기관 등이 진행한 공모에 응해 좋은 성과를 내도록 사업계획서 작성, 추진 전략 등을 조언했다.

주민회의를 경험한 지역민들의 반응도 진화하고 있다. 처음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익숙하지 않아 나서는 이가 드물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논의할 안건에 대해 미리 준비한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에도 적극 임하고 있다. 초창기 민원성 제안이 주를 이루던 것에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이웃과 함께 생각하는 등 공공성이 강화된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주목할 만한 점은 또 있다. 광산구에 여러 사람이 모여 문제를 심도 있게 의논하는 ‘숙의 민주주의’ 문화가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선거민주주의로 대변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대의제가 한계를 갖고 있다. 주민회의는 주민들의 의사를 구와 의회에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주민들은 10~14명을 한 조로 편성해 마을 현안을 깊이있게 의논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주민이 결정하면 광산구는 한다’라는 모토 아래 성장 중인 광산구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높은 세간의 평가로 돌아왔다. 지난해 10월 재단법인 희망제작소 등이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주최한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 정책포럼’에서 소개된 주민회의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이날 정책포럼에 참석한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여러 성과를 관통하는 철학은 문제도, 답도 현장에 있다는 것과 해결책 또한 거주하는 주민들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며 “이때 행정기관의 자세는 지원은 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거리 원칙을 지켜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자치공공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지방자치경쟁력 순위에서 광산구는 전국 69개 자치구 중 3위에 올랐다. 1위는 강남구, 2위는 서초구였다. 재정 등 물적 토대가 풍부한 서울의 ‘노른자위’ 자치구에 이어 광산구가 3위에 오른 배경은 주민들의 높은 자치역량 때문이라는 것이 이 연구소의 분석이었다.



△주민이 선택하는 동장

광산구는 지난 2014년 전국 최초로 동장 주민추천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주민 구정참여를 보장하고, 마을과 주권자를 위해 일할 동장을 주민이 직접 선택·추천하는 인사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동장 선거일 후보들의 정견 발표, 상호 토론을 들은 주민들은 적임자를 투표하고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자는 구 인사위원회에 통보된다. 인사위원회는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해 동장을 확정한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동장을 임명해 지역으로 보내는 하향식과 달리 주민이 구에게 적임자를 통보하는 상향식이다.

2014년 수완동에서 최초의 주민투표 동장이 나온 후 지금까지 송정1동장, 도산동장 등 7명의 동장이 임명됐다. 자치단체장이 인사권을 내려놓으면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행정동 단위까지 파고든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두 번째 동장 주민투표가 열린 수완동은 공직자들의 승진과 맞물려 특히 열기가 뜨거웠다.

인구 7만9000여명의 수완동은 사무관(5급)이 동장을 맡고 있는 다른 동과 달리, 서기관(4급)이 동장직을 수행한다. 지방자치법상 인구 7만 이상의 대동(大同)에는 4급 공직자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수완동장 후보는 모두가 4급 승진대상자였다. 공무원 승진 여부가 인사권자가 아닌 주민 손에 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승진하거나 요직으로 직책을 바꾸고 싶은 공무원이라면 인사권자에 줄을 서는 대신, 주민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상향식 동장 주민추천제를 도입하자 인사청탁 등 부정적인 관행이 사라지고 공무원의 행정서비스는 주민 지향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 투명한 인사시스템 정립과 행정 만족도 상승이라는 효과를 얻은 셈이다.

당시 투표에 참여한 이영수 씨는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말고 동장을 투표로 뽑는 것은 처음”이라며 “주민들이 직접 수완동의 미래를 대동제로 결정하고, 그 동장까지 추천하도록 해 광산구정의 발전을 실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광산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폴인사이트에 의뢰해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민 3명 중 1명은 추천한 동장이 부임한 후 행정서비스가 ‘좋아졌다’(29.4%)고 응답했다.

주민추천제에 대한 주민의 평가도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긍정적인 측면을 반영한 평가 항목과 부정적인 측면을 반영한 평가 항목을 각각 4개씩 배치해 4점 만점의 리커트 척도로 살펴본 결과다. 주민들은 동장 추천제가 ‘주민자치의 실현’(3.0점), ‘지역발전에 도움’(3.0점), ‘주민과 행정기관의 소통 증진’(3.0점)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보여주기식 행정’(2.4점), ‘비효율적 인사제도’(2.3점), ‘자질이 미흡한 공무원 선출’(2.6점), ‘불필요한 예산낭비’(2.5점) 등 부정적인 평가는 긍정 평가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주민 상당수가 동장 추천제를 전체 지역으로 확대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전체 응답자의 69.1%(691명)이 ‘지역의 모든 동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 동장 주민추천제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주민은 전체의 64.3%(643명)에 달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은 동장 주민추천제도 정착 방안을 △자발적 참여 방안 실시 △동장 지원 후보자 정보 제공 △동장 주민추천제 인식 확대 등 순으로 제시했다.

더욱 큰 결실은 직접 민주주의 강화다. 직접 동장을 선택하면서 생긴 마을에 대한 관심도가 더 좋은 공동체 만들기 활동 참여로 이어진다.

광산구 관계자는 “동장 주민추천제를 시행해보니 직접 민주주의 강화, 행정만족도와 인사정책 투명성 상승 등 일석삼조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주민 의견을 더욱 반영해 제도를 보완하고 강화해 더욱 나은 모델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광산구는 동장 주민추천제가 3가지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는 직접민주주의 강화이다. 자신이 직접 동장을 선출함으로써 생긴 관심도가 더 좋은 마을만들기 활동 참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주민에 의해 선출된 만큼 그렇지 않은 곳보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에 동장이 더욱 힘쓰고 있어 행정 만족도가 오르고 있다.

셋째는 투명한 인사시스템 정립이다. 승진하거나 요직으로 직책을 바꾸고 싶을 때 인사권자에게 줄을 서는 대신, 능력과 추진력 위주로 주민의 선택을 받는 제도를 정착했기 때문이다.

누가 동장이 되든 관심 없던 과거와 달리, 후보를 직접 뽑기 위해서는 지역 현안을 이해하고 있어야 현명한 선택이 가능하다. 나의 선택이 지역과 내 이웃의 삶에 변화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며 높아진 정치효능감은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온다.

관치 문화에 익숙했던 주민이 주권자로 바로 서도록 뒷받침하고, 구는 주민이 의결한 결과에 따라 구정을 운영하며 주민과 구가 함께 발전하는 선순환이 그려지는 셈이다. 참여와 자치로 직접 민주주의 시대를 지역에서 열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구정의 최일선인 동주민센터를 책임지는 동장을 주민투표로 추천한다는 것은 직접민주주의로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라 자평한다”며 “직접민주주의 기반을 강화해 주민과 구정을 협치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발굴하고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고귀한 기자 pressgh@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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