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 포용과 상생으로 미래를 열자
위인백 한국인권교육원 이사장(前 광주여자대학교 교수)
입력 : 2026. 03. 23(월)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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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백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친위쿠데타 헬기와 총칼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맨손으로 물리친 위대한 국민이고, 문화강국임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80년 전 우리는 광복을 맞았으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분단과 전쟁은 나라와 겨레에 큰 고통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좌절을 딛고 가난을 벗어났고, 폐허 위에서 번영을 이룩했으며, 민주주의의 빛나는 성취도 일궈서 이젠 그동안 체감하지 못했던 국민주권의 새로운 대통령을 보고 있다.
그러나 빠른 성장은 사회 곳곳에 깊은 상처와 균열을 남겼다. 눈부신 발전의 뒤편에서 대립과 반목, 분열과 갈등은 일상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등지고, 의견이 다르면 고개를 돌리는 적대와 불통의 황무지로 바뀌고 있다. 말은 거칠어지고 의견이 다르면 대화가 멈추는 곳으로 전락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최소한의 믿음과 연대도 사라지면서 나라의 내일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 경제는 발전했지만,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열심히 일하면 생활이 나아진다는 소박한 믿음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젊은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은 희망과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과 걱정이 됐고, 거세게 몰아치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파도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태롭게 한다.
책임은 전적으로 이 시대를 일군 우리들 몫이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성장과 번영을 이끌었으나 그 과정에서 적대와 반목의 씨를 뿌렸고, 경쟁과 갈등이라는 원치 않는 결과를 만들었다. 속도와 효율만을 앞세운 성장의 논리는 포용과 공존, 절제라는 공동체의 기본 가치를 흔들었고, 기성세대는 급속한 노령화의 부담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떠넘긴 채 불안한 생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변명의 여지 없는 역사적·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면서 고통스러운 성찰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포용과 공존, 그리고 절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대립과 분열, 적대와 반목으로 벼랑 끝에 몰린 우리 사회를 살릴 유일한 대안이다. 포용은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너른 마음이고, 공존은 서로 다른 사람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함께 사는 태도이다. 그리고 절제는 하고 싶은 걸 모두 하지 않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스스로 지키는 자세다.
지금처럼 진영이 극단으로 치닫는 흐름에 대하여 지도자들부터 각성해야 한다.
여기에 최우선으로 앞장서야 할 분야가 정치권이고, 기성세대의 몫이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정치권이 정치 본연의 역할을 외면한 채 권력만 잡으려는 정쟁으로 치닫고 반대 아닌 반대의 목소리만 내고 있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민은 알고 있는데, 궤변으로 국민을 우롱함은 물론 반성조차 없음이 문제다. 경쟁과 협력의 조화를 국정의 가치로 삼고, 이러한 우리 사회의 갈등을 직시하면서 정치권의 자성과 기성세대의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
인공(AI)지능을 비롯한 기술의 빠른 변화는 인류의 삶과 생존방식을 근본에서 흔들고 있다. 그러나 첨단 기술의 발전만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국제질서와 삶의 속도를 돌아보며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그 방법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국제적으로도 인류가 겪고 있는 지구적 위기의 일부이다. 세계화 시대 기후·생태의 붕괴와 제국주의 망령으로 제3차대전이 도래한 전쟁의 피해는 먼 나라 미래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로 닥쳐왔다.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다. 전쟁의 기억과 긴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전쟁과 대립의 아픔을 몸으로 겪어왔기에 평화와 공존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과 북은 현실적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 국내적으론 우리부터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을 넘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로 세대 갈등을 극복하자. 포용과 공존, 절제 그리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약속을 정립하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선 다가오는 지방선거부터 다름을 인정하고, 합리적 진보는 개혁적 보수를 끌어안고, 개혁적 보수는 합리적 진보를 이해하는 포용과 상생의 길을 찾아야 우리의 밝은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80년 전 우리는 광복을 맞았으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분단과 전쟁은 나라와 겨레에 큰 고통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좌절을 딛고 가난을 벗어났고, 폐허 위에서 번영을 이룩했으며, 민주주의의 빛나는 성취도 일궈서 이젠 그동안 체감하지 못했던 국민주권의 새로운 대통령을 보고 있다.
그러나 빠른 성장은 사회 곳곳에 깊은 상처와 균열을 남겼다. 눈부신 발전의 뒤편에서 대립과 반목, 분열과 갈등은 일상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등지고, 의견이 다르면 고개를 돌리는 적대와 불통의 황무지로 바뀌고 있다. 말은 거칠어지고 의견이 다르면 대화가 멈추는 곳으로 전락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최소한의 믿음과 연대도 사라지면서 나라의 내일을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 경제는 발전했지만,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열심히 일하면 생활이 나아진다는 소박한 믿음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젊은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은 희망과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과 걱정이 됐고, 거세게 몰아치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파도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태롭게 한다.
책임은 전적으로 이 시대를 일군 우리들 몫이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성장과 번영을 이끌었으나 그 과정에서 적대와 반목의 씨를 뿌렸고, 경쟁과 갈등이라는 원치 않는 결과를 만들었다. 속도와 효율만을 앞세운 성장의 논리는 포용과 공존, 절제라는 공동체의 기본 가치를 흔들었고, 기성세대는 급속한 노령화의 부담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떠넘긴 채 불안한 생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변명의 여지 없는 역사적·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면서 고통스러운 성찰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포용과 공존, 그리고 절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대립과 분열, 적대와 반목으로 벼랑 끝에 몰린 우리 사회를 살릴 유일한 대안이다. 포용은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너른 마음이고, 공존은 서로 다른 사람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함께 사는 태도이다. 그리고 절제는 하고 싶은 걸 모두 하지 않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스스로 지키는 자세다.
지금처럼 진영이 극단으로 치닫는 흐름에 대하여 지도자들부터 각성해야 한다.
여기에 최우선으로 앞장서야 할 분야가 정치권이고, 기성세대의 몫이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정치권이 정치 본연의 역할을 외면한 채 권력만 잡으려는 정쟁으로 치닫고 반대 아닌 반대의 목소리만 내고 있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민은 알고 있는데, 궤변으로 국민을 우롱함은 물론 반성조차 없음이 문제다. 경쟁과 협력의 조화를 국정의 가치로 삼고, 이러한 우리 사회의 갈등을 직시하면서 정치권의 자성과 기성세대의 책임 의식이 있어야 한다.
인공(AI)지능을 비롯한 기술의 빠른 변화는 인류의 삶과 생존방식을 근본에서 흔들고 있다. 그러나 첨단 기술의 발전만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국제질서와 삶의 속도를 돌아보며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그 방법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국제적으로도 인류가 겪고 있는 지구적 위기의 일부이다. 세계화 시대 기후·생태의 붕괴와 제국주의 망령으로 제3차대전이 도래한 전쟁의 피해는 먼 나라 미래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로 닥쳐왔다.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다. 전쟁의 기억과 긴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전쟁과 대립의 아픔을 몸으로 겪어왔기에 평화와 공존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과 북은 현실적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 국내적으론 우리부터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을 넘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로 세대 갈등을 극복하자. 포용과 공존, 절제 그리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약속을 정립하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선 다가오는 지방선거부터 다름을 인정하고, 합리적 진보는 개혁적 보수를 끌어안고, 개혁적 보수는 합리적 진보를 이해하는 포용과 상생의 길을 찾아야 우리의 밝은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이산하 기자 goback@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