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우리가 남이가
최총명 허그맘허그인심리상담센터 광주무등점 원장
입력 : 2025. 10. 28(화)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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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제14대 대선을 앞둔 시점, 부산의 ‘초원복국집’에서 김기춘을 중심으로 한 공무원들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를 내세운 지역주의 성향의 발언을 하며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와 지역감정 유발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김기춘은 대선 개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사건은 불법 도청 프레임으로 전환됐지만, 오히려 김영삼 후보가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필자는 서울에서 살다가 광주로 이주한 이후, 지역 현안이나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관찰자,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만 놓고 보면 싫어할 사람이나 지역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문득 이 구호가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의 광주 방문 당시 여러 지역 현안에 대한 약속이 있었고, 전남대학교의 글로컬대학 최종 선정 등 광주는 오랜만에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맞이했다.

이런 시점에서 광주시민의 역할은 무엇이며,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거나 당선될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광주가 최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다.

또한 지역 내부인으로서 지역 민심을 살피고 공약에 반영하는 것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광주를 바라보는 객관적 관찰자의 시선도 필요할 것이다.

지난 2020년 처음 광주에 와서 심리상담센터 사업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교육청, 시청, 구청 등을 상대로 다양한 업무를 진행했는데, 담당자들 중에는 MOU 체결이나 과제 수행 등 전문 영역의 협약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위에서 내려온 매뉴얼대로’ 하거나, ‘예전 선임자가 하던 방식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게 어떤 법이나 규정에 근거한 것이냐’고 물으면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관례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전문가가 많지 않아서 그냥 선배가 하라는 대로 했고, 앞으로는 수정하겠습니다’라며 웃고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관찰자이자, 현지인이며, 또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그 사업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왜 이런 방식이 비효율적이며, 결국 자기 발전과 지역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까’, ‘왜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까’에 대한 애통함이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은 흔히 쓰인다. 그만큼 우리는 고인 물이 있는 상황을 자주 목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1세기를 살고 있고, 새로운 대통령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지금, 광주 시민들은 글로컬대학 유치 등 세계적 도약의 기회를 맞은 이 시점에 ‘고인 물을 어떻게 뺄 것인지, 새로운 물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 편이 잘되고 지역이 발전하길 바라는 열망이 클수록, 부당한 외부에 대해서는 치열하고 정당하게 저항해야 한다. 동시에 내부에서는 우리의 정당함과 올바름, 나아가 발전 방향을 두고 끊임없는 토론과 비판이 필요하다.

‘이대로가 좋사오니, 우리가 남이가’라는 근성이나 분위기는 발전을 이루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멸망의 징조일 수 있다.

새 시대가 열렸고, 지역 발전의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변화와 달라짐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특히 공공성이 있는 분야부터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광남일보@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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