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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공천파동…선거 결과는
김상훈 뉴미디어문화본부장

2024. 03.17. 17:50:23

[김상훈의 세상읽기]
#1

공천(公薦)은 공식추천(公式推薦)의 줄인 말로 여러 사람이 합의해 추천하는 일, 또는 공정하고 정당하게 추천하는 것을 칭한다. 오늘날에는 공인된 정당조직에서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 등에 출마할 당원을 공식 추천하는 일로 통용된다.

공천은 지금과는사뭇 의미가 다르지만 예전에도 있었다. 송나라때 과거시험의 폐단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을 그 효시로 보고 있다.

당시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쳐 정착된 과거제도는 호족세력 견제를 위해 도입된 취지에 맞게 민생 안정과 국력 강화보다는 황제에게 충성하는 문인 인재를 주로 발탁했다. 그러다 보니 무인을 키우는 데 소홀했고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이었다. 또 지배층은 특권을 세습시키기 위해 부정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송나라는 이같은 문제점들이 노출되자 매년 과거시험 전 중신들이 재능과 기예가 있는 인물들을 공식 추천하는 공천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때 이와 유사한, 과거시험(문과, 무과)을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음직제도가 있었다. 보증인이 천거한 자를 간단한 시험을 거쳐 관직에 임명하거나 각 마을에서 능력과 덕망있는 자를 중앙에 공천하는 이 제도는 자제의 벼슬을 구하는 고관대작의 청탁 수단이 됐다.



#2

현대적 의미의 공천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54년이다.

당시 자유당이 203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제3대 총선거를 앞두고 181명의 공인후보자를 선정, 당 차원에서 선거를 지원해 의원 정수의 56.2%에 해당하는 114명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 때 무소속은 67명, 민주민국당은 15명이 당선됐다. 이때부터 정당공천이 일반화됐다.

하지만 초기에는 공천과정에서 총재(대표)와 주류세력이 공천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하향식 공천’이 많아 공천장사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했다.

현재는 각 당이 당원들이 후보자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을 시행하고 있지만 잣대가 명확하지 않아 아직도 당 대표와 지도부이 입김이 여전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때문에 공천파동은 선거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먼저 1971년 야당 신민당의 당수 유진산은 총선 후보 등록마감일? 갑자기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갑 출마를 포기하고 비례대표인 전국구 1번으로 등록한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 지역구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처조카 사위인 여당 민주공화당 후보가 출마한 곳으로 이같은 행동은 그냥 상대 후보에게 지역구를 넘겨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실제 서울 총선에서 공화당이 19개 선거구중 유일하게 이곳만 이겼다. 결국 유진산은 뒷거래 의혹이 불거져 사퇴하게 됐고 당수 권한대행이 선거를 치루게 됐다. 이 파동으로 신민당은 준비도 못한 채 선거를 치렀지만 다행히 개헌 저지선(69석)을 훌쩍 넘는 89석을 얻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중진들이 공천 탈락에 반발해 신당을 창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이회창이 이끌던 야당 한나라당이 대대적 물갈이를 단행해 김윤환, 조순, 이기택 등 거물들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이다. 이들은 인기가 높았던 박찬종과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에서 탈락한 김상현 등과 힘을 합해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지만 결과는 전국구 1명과 지역구 1명 당선에 그치며 참패했다.



#3.

18대 총선에서는 ‘친박 무소속 연대’와 ‘친박연대’로 대변되는 공천파동이 일어나 탈당파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는 이례적인 일도 발생했다.

선거 한 달 전 한나라당 영남권 공천 발표에서 대거 탈락한 친박계는 탈당 후 친박연대·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친박연대’는 지역구에서 6명, 비례대표로 8명이 당선돼 14석을 확보했고 ‘친박 무소속 연대’도 10명 이상 당선자를 내며 선전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당시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을 대거 공천하면서 친노·비노 계파 갈등이 불거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쇄신에 나선 새누리당에 152석대 127로 완패했다. 4년 후 20대 총선에서는 180석 이상 획득할 가능성이 높았던 여당인 새누리당이 ‘진박감별논란’과 ‘옥새 파동’으로 계파 갈등이 이어지면서 122석을 확보하는 데 그쳐 원내 2당이 됐다. 당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했지만 각각 123석, 38석을 확보하며 선전했다.

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여야의 공천파동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아래 치러진 공천 경선과 전략공천 등에서 주류 세력인 친명계(친이재명)가 약진하고 원외 친명계도 대거 본선행을 확정지었지만 대다수 비명계(비이재명)는 ‘컷오프’,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감점 페널티 등에 발목이 잡혀 줄줄이 탈락해 어느 때보다 불공정 경선 논란이 일고 있다.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민주당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지 관심사다.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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