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미학’ 가치 발견…생활을 아트로 물들이다
[포커스이사람]일상예술사이연구소 ‘구름’ 이유진 소장
광주문화재단 떠나 연구소 설립 ‘삶의 예술화’ 실천
카카오 브런치에 글 연재…시간 기록 아카이브 구축
"일상의 중요성 깨달아야" 감각 일깨우는 프로 계획
입력 : 2022. 09. 25(일)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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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소장은 “일상성, 일상 예술, 일상 미학을 키워드로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에서든 가치를 발견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고 싶다. 천천히 한 사람씩 물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이 소장
일상과 예술. 두 단어를 발음하는 것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소박하면서 특별하게 느껴져서다. 똑같은 루틴으로 이뤄진 일상과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했을 듯한 예술이 하나로 뭉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일상과 예술 사이, 그 ‘틈’에 주목하는 이가 있다. 자칭 일상예술가인 이유진 일상예술사이연구소 ‘구름’ 소장은 두 단어의 간극에 주목한다.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궁리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오래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 지난 3월 광주 서구 상무지구에 일상예술사이연구소 ‘구름’을 개소했다. 일상 예술을 실천하고 이를 공유하는 작가이자 기획자, 실행자 등 크리에이터 역할을 이 소장 홀로 해낸다. 익숙한 직장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일에 발을 내딛은 이유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때 광주 동구 예술의거리 한 가운데 소재했던 가나아트광주 소속으로 국내외 미술 작품을 선보였던 그는 구름을 개소하기 전 광주문화재단에서 정책연구교류팀과 문화예술교육팀, 도시문화교류팀 등을 돌며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예술의 범주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그는 장소성을 살리거나 예술 씨앗을 뿌리는 일, 예술의 다른 쓸모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 그가 이처럼 예술에 매달릴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예술이 종교와도 같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거나 논리적인 잣대를 들이대야 할 때면 항상 가슴이 먼저 발동해 예술 편에 선 이유다.

이같은 삶의 연장선 상에서 세운 연구소 ‘구름’은 일상과 예술 사이 곳곳을 구름처럼 자유롭게 다닌다는 의미다. 일상 속 미학을 되살리자는 메시지가 담겼다.

아카이브 구축을 위해 회의를 하고 있는 이 소장
아카이브한 내용이 담긴 책자
이 소장은 “구름은 일상과 예술의 사이, 상호작용성(interaction)에 대해 상상하고, 질문하며, 실험하고, 기록한다”고 소개했다. 그 사이를 규명해야 그 틈을 좁힐 수 있다는 게 그가 간극에 주목하는 이유다.

“물리적 공간 그 이상, 일상미학을 갈구하는 마음과 태도에서부터 일상 예술 즉 ‘삶의 미학’이 시작된다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실천이 뛰따라야죠.”

우리의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반복되는 생활을 지겨워 하는 반면, 그런 일상이 깨질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일상의 소중함을 잊는 가운데 일상을 재해석, 그 가치에 포착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거창하고 유명한 것에 가치를 두기보다는 우리의 삶 자체, 그 안에 깃든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이 시대에 주효한 활동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작품이 되게 하라!’고 말했죠. 여기에서 작품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예술적 사물, 오브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을 알고, 이해해 스스로를 이끄는 것이죠.”

최근 그는 PM을 맡았던 광주 동구 아시아음식문화거리를 조명하는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마쳤다. 1908년부터 2021년까지 지역 근대 역사의 중심이었던 거리의 시간을 기록하고, 음악과 미술 및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해온,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작업이었다.

“얼마 전 광주 동구를 거점으로 일상을 아카이브하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문헌 조사와 구술 채록을 통해 작게는 한 개인에서부터 크게는 지역의 역사까지 두루 다뤘죠. 기존 굵직한 역사적 사건이나 정책의 기록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문화적 활동을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아시아음식문화거리 아카이브프로젝트를 통해 알게 된 가게 내부
아시아음식문화거리 아카이브프로젝트를 통해 수집한 문화거리 곳곳의 모습들.
그는 지역의 일상을 기록, 펴낸 자료집이 지역 자원화의 원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구축한 아카이브는 아시아음식문화거리 내에서 선보이는 중이다.

이 소장은 일상 예술 실천 활동의 하나로 지난해 8월부터 글쓰기 플랫폼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지금 59세, 예술 잡 노매드(Nomad)는 계속된다’는 타이틀로 글을 시작해 이것들을 모은 브런치 북 ‘일상, 예술이 되다’를 발간했다. 일상과 예술을 자기 삶에 적용한 실험을 다룬 ‘일상미학 수업’도 선보이고 있다. 이외에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인식의 확산을 목표로 재활용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한 번 더 쓸모’ 시리즈를 카카오 브런치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등에도 연재 중이다.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어떤 사물이든 한 번 쓰고 버리기 마련인데 이를 문화예술로 치환해 완전히 다른 기능, 혹은 비슷하지만 필요한 사물로 바꿔보자는 내용이다.

“일상성, 일상 예술, 일상 미학을 키워드로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에서든 가치를 발견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하고 싶죠. 천천히 한 사람씩 물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앞으로 그는 일상 미학을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려 한다. 이 아이디어는 지역의 한 향토사학자가 했던 이야기에서 얻었다. 그동안 신화나 향토사만 했지, 정작 중요한 먹고 사는, 사랑했던 일상사를 놓쳤다고 후회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 소장은 연구소 이름에서 착안, 시간마다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구름을 하루내내 바라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구름을 소재로 일상에서 미적 감성을 기르는 예술 산책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또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 다양한 문화공간을 연계해 일상 예술의 소중함을 콘텐츠화해 공유할 계획이다.

연구소는 업무에 따라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운영, 하반기에 30대 연구원도 들인다.

“저를 지지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 고마워요. 일상이 예술이 되는 활동을 진행하는 데 힘이 됩니다. 일상과 예술 그 사이를 주목해 우리 몸의 감각을 열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겁니다.”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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