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존재들이 전하는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
임성규 장편동화 ‘붉은 여우 홍비’ 출간
전래동화 ‘구미호’의 현대적 재해석 시도
입력 : 2026. 02. 26(목)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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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우 홍비’
전래동화 ‘구미호’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한 한국형 판타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동화가 나왔다.

한국의 멸종 위기종인 ‘붉은 여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우리 옛이야기 속 구미호 설화를 현대적 판타지로 재탄생시킨 임성규씨의 장편동화 ‘붉은 여우 홍비’가 도토리숲 문고 10번째 권으로 출간됐다.

전래 동화 속 ‘구미호’와 ‘여우 구슬’이 생명과 치유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을 하고 있는 이 장편동화는 기후 위기 시대, 상처 입은 존재들이 전하는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성장 동화로 이해하면 된다. 주제의식은 성장, 가족, 기후, 숲, 구미호설화, 판타지동화, 치유, 생태, 정체성, 나눔, 희망 등을 두루 포괄하고 있다.

작가는 설화 속 ‘여우’와 ‘구슬’ 모티브를 비틀어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전래 동화에서 인간을 홀리거나 해치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여우는, 이 작품에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가족애를 지닌 따뜻한 생명체로 그려진다. 또 사람의 정기를 빼앗던 ‘여우 구슬’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생명의 증표이자 기억을 담는 소중한 그릇으로 재정의됐다. 이런 설정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우리 고유의 정서를 전하는 동시에,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보는 문학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야기의 갈등은 붉은 여우 ‘홍비’가 사라진 아빠와 형을 찾아 ‘기억의 숲(청림)’을 떠나며 본격화된다. 홍비가 마주한 세상은 감정과 기억을 제거해야 할 오류로 규정하고 통제하는 ‘무연’의 지배 공간, ‘흑림’이다. 무연은 동물들의 기억을 강제로 추출해 ‘구슬’로 만들고, 이를 인간에게 주입해 고통없는 질서를 세우려 한다. 작가는 생명력이 넘치는 ‘청림’과 인공적이고 삭막한 ‘흑림’의 대비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문제를 날카롭게 형상화했다.

작가는 기억이 지닌 힘을 바탕으로 ‘치유’와 ‘연대’의 의미를 전한다. 주인공 홍비는 처음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치려 하지만, 선유·이레·수리·노아와 함께하며 점차 성장한다. 특히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여우 구슬을 나눠 죽어가는 친구를 살려내는 장면은 경쟁이 아닌 ‘나눔’과 ‘희생’이야말로 생명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임을 감동적으로 드러낸다.

‘구미호’ 설화를 재해석한 깊은 서사와 강한 필체의 그림이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보이는 이 장편동화는 잊힌 숲과 인간 도시 사이, 잃어버린 가족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붉은 여우 소년 홍비가 구슬의 힘과 친구들의 연대로 흑림의 망각을 막아낸다는 스토리다.

임성규 작가는 서두를 통해 “‘붉은 여우 홍비’는 판타지이지만, 결국 성장의 이야기다. 형과 아버지를 잃고 숲을 떠난 작은 여우 홍비가 기억을 잃을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지켜나가는 여정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두려움과 선택의 은유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모험의 즐거움과 더불어 잊히지 않으려는 마음, 함께 기억하려는 연대의 힘을 전하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장편동화는 ‘2025년 광주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된 바 있다. 그림은 장애인 화가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박희선씨가 맡았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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