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들 평생 일군 작품 ‘어디로’…보존 방안 없나
대책 세우지 않으면 폐기 등 수순 대표 작품 보존 길을
‘미술은행’ 방식 대안 제기, 순환구조 만들면 해결 단초
"절대 개인 문제 아냐…아카이빙 되지 않아 안타까움"
‘미술은행’ 방식 대안 제기, 순환구조 만들면 해결 단초
"절대 개인 문제 아냐…아카이빙 되지 않아 안타까움"
입력 : 2026. 06. 09(화)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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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병모 작가의 작업실 풍경. 아들인 김정훈 동곡미술관 학예실장이 그대로 작업실과 창고를 보존해 폐기 수순을 밟지 않은 경우다.

고 김병모 화가의 작품 보존 모습.
공공미술관 수장고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전체 작가들을 대상으로 1년에 몇점 정해놓고 구입해 소장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로들 작품만 소장할 수는 없기에 공공미술관 소장은 근본적 대책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원로들의 작품 보존과 관련해 진일보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 데는 사회적 시각이 크게 작용한다. 무작정 이를 특정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다.
평생에 걸쳐 작업해온 작품들로 무작정 쓰레기장으로 향한다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예술작품이 일반쓰레기처럼 다뤄져서는 안된다. 당장 70~80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의 추후 보존에 대해 항구적 대책이 세워진 경우는 드물다. 운좋게 자신이 건축물을 짓거나 가족 혹은 자녀 중 재력있는 사람이 그 용도로 특별하게 건축물을 지어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 공통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작업실에 수북하게 쌓여져 있는 작품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고, 군데군데 삭아서 작품이 훼손되기까지 하는 등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최근 들어 원로 작가 작품전을 열기 위해 원로 작가와 그 밑세대의 화가 작업실을 방문해본 기획자들의 입을 빌려보면 원로들의 작품에 대한 보존 방안을 더이상 늦춰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을 간파할 수 있다.
지역 대표적 젊은 기획자들로 꼽히는 예술공간집의 문희영 대표와 이강하미술관의 이선 학예실장 등으로부터 작업실 환경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먼저 문희영 대표는 강연균 원로작가의 개인전을 최근 성황리 열었다. 2부로 나눠 1부 전시는 3월 19일부터 4월 19일까지, 2부 전시는 4월 24일부터 5월 24일까지 각각 진행했다. 1, 2부 전시에는 총 500여 점이 출품돼 선보였다. 문 대표는 이 전시를 위해 강 원로화가가 기거하고 있는 광주 동구 학동 소재 아파트로 지난 1월부터 출근하다시피하면서 분류되지 않고 쌓여 있는데다 분산돼 있던 작품 5132점을 모두 꺼내 선별작업을 해야만 했었다. 당시 문 대표로부터 너무 방대해 분류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작업하기도 벅찬 나이대에 접어들면 작품 분류를 작가 스스로 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어 이선 학예실장은 지난 5월 14일 개막, 오는 8월 2일까지 ‘새로운 창작, 미래의 유산’이라는 타이틀로 열리고 있는 오월특별전을 준비하며 출품작가의 작업실을 최근 찾았다. 이중 담양에 화실을 두고 그곳에 거주하며 작업을 펼치고 있는 박문종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강 원로화가의 아래 세대이지만 박 작가의 작품 역시 분류가 되지 않은 채 쌓여져 있었다는 귀띔이다. 작가만의 분류방식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박 작가의 경우도 작품 보존 문제는 원로화가들이 직면했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처럼 현장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개성적 시각을 존중하더라도 많은 작품들의 보존이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희영 대표는 “이들의 작품 보존 공간 마련 등에 대해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보려는 사회적 시각이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절대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해서는 안된다.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카이빙이 되지 않아 그동안 여러 현장을 돌아보면서 대개 안타까웠다”라며 “70대 이상의 작가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작품의 양이 방대한 만큼, 이를 특정 장소에 보존하기도 어려우니 우선 순환구조를 만드는 게 급선무가 아닐까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 학예실장은 “원로 작가들의 연구와 작품이 지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년이나 중진 작가들이 원로작가를 보고 작업을 한다. 중요한 자산이자 보물이다. 이들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또 문화적 자산이 아니라 개인적 문제가 돼 버리는 것이 문제다. 정책적 대안이 세워져야 이들이 광주 안에서 건강하게 창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면서 “원로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되고 아카이빙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후 정리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작고했지만 김병모 작가(1949~2019)의 경우 아들인 김정훈 동곡미술관 학예실장이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자의 기록-큐레이터가 아버지의 그림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여전히 그는 부친의 작품 수백점을 작업실과 창고에 보존하고 있다. 이처럼 자녀가 보존하는 경우가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근래 고 양계남 화가(1945∼2023·전 조선대 교수)의 작품은 물려받을 주체가 부재해 다소 혼선이 일었고, 유명세가 더했던 황영성 화가(1941∼2025·전 조선대 교수)의 작품들 역시 대안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김정훈 학예실장은 “좋은 작품들도 흩어지거나 맥락이 깨져버리면 의미가 축소되거나 가치가 하락한다. 돌아가시면 보존보다는 활용도가 없어져 문제다. 작품을 찾는 요청이 줄면 작품은 더더욱 창고에 박혀 존재의 이유가 사라져 버린다”고 덧붙였다.
현재 원로작가들의 작품은 폐기처분, 미술관 및 지인 등에 기증, 가족이 미술관 건립, 헐값 처분 등으로 정리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남도미술은행처럼 작품 구매·위탁·임대·순환 전시 구조 방식을 도입해 타개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수익사업이 아니더라도 작품을 구매, 이를 임대해 순환하게 하자는 것이다. 관공서나 동네 행정복지센터, 동네 경로당을 위시로 한 공공시설 및 순환에 동참하는 사립 시설물 등을 활용하면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시각이다. 이는 수장고를 지어 보존하자는 절대적 시각에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한해 한해 갈수록 이들은 노쇠해간다. 특별한 대책이 없으면 이들이 남긴 작품은 설 곳이 없게 된다. 예술가의 혼이 깃들어 있는 작품들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그들의 남아있는 대표작들만이라도 영구 보존될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