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언제부터 그들은 왕이 되었나
이지안 에이아이티브 대표
입력 : 2026. 06. 09(화)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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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안 에이아이티브 대표
지난 6월 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돌아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선거에서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인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니, 듣고 보기는커녕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뒤늦게 투표지가 전달되고 대기하고 있던 유권자들에게는 오후 6시가 넘더라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조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또다시 음모론이 제기됐고 일부 시민들은 투표소로 몰려가 투표함 반출을 막아서기도 했다.
그런데 사태를 파악할수록 더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 확인됐다. 투표지가 부족하다는 통보가 이미 이른 오후부터 선관위에 전달됐는데도 제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덧붙여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선관위의 해명이다.
선관위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지난 선거 투표율을 고려해 수량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권자 수의 110% 수준으로 투표용지를 제작하는 것을 전제로 지자체에 예산을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은 넉넉하게 확보해 놓고도 정작 현장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셈이다. 국민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욱이 선관위와 관련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발생한, 이른바 ‘소쿠리 투표’ 사태다. 코로나19 확진자 투표 과정에서 투표함이 아닌 소쿠리와 종이상자 등에 투표지를 담아 이동시키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를 책임져야 할 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선관위는 공식 사과에 나섰지만, 국민의 신뢰는 크게 땅에 떨어졌다.
그 후에는 특혜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감사원 감사 결과 일부 고위직 자녀들의 채용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고, 선관위는 관련자들에 대한 임용 취소 조처를 내렸다. 감사 과정에서는 다수의 채용 절차 위반도 확인됐다. 공정한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에서 공정하지 못한 채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선거의 공정성을 관리하는 기관이 정작 내부에서는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철 휴직자 증가도 논란이 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마다 적지 않은 선관위 직원들이 휴직 상태였으며 선관위 내부에서는 불요불급한 휴직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까지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휴직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국가의 중대한 선거 업무가 진행되는 시기에 인력 부족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된다면 조직 운영의 적절성을 묻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투표용지 부족, 소쿠리 투표, 특혜 채용, 휴직 논란. 이 모든 사건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말도 안 되는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본질은 똑같다. 그리고 반복되는 실수는 결국 신뢰의 문제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선관위를 향한 견제와 감시의 한계가 함께 지적된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헌법이 보장한 독립기관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제도적 성과이기도 하다. 과거 권력이 선거에 개입했던 경험을 반성하며 선거만큼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독립성이 곧 무소불위의 권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권력도 견제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를 견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감사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국민 사이에서는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선관위를 감시할 장치는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특혜 채용 논란 이후 국회에서 특별감사관 제도 도입과 외부 감시 체계 강화 방안이 논의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독립성을 훼손하자는 것이 아니라, 독립성에 걸맞은 책임성을 확보하자는 요구였다.
국민은 선관위의 정치적 독립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독립성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독립성은 신뢰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반복되는 논란 속에서도 스스로를 점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독립성은 국민적 신뢰가 아닌 불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반복되어 온 여러 문제를 되돌아보고 제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선관위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한이 아니다. 국민이 다시 믿을 수 있는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민주주의의 심판은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심판일수록 더욱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지금 국민이 선관위를 향해 던지고 있는 질문도 결국 하나다.
‘언제까지 무소불위의 왕관을 썼다고 착각할 것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뒤늦게 투표지가 전달되고 대기하고 있던 유권자들에게는 오후 6시가 넘더라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조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또다시 음모론이 제기됐고 일부 시민들은 투표소로 몰려가 투표함 반출을 막아서기도 했다.
그런데 사태를 파악할수록 더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 확인됐다. 투표지가 부족하다는 통보가 이미 이른 오후부터 선관위에 전달됐는데도 제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덧붙여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선관위의 해명이다.
선관위는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지난 선거 투표율을 고려해 수량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권자 수의 110% 수준으로 투표용지를 제작하는 것을 전제로 지자체에 예산을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은 넉넉하게 확보해 놓고도 정작 현장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셈이다. 국민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욱이 선관위와 관련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발생한, 이른바 ‘소쿠리 투표’ 사태다. 코로나19 확진자 투표 과정에서 투표함이 아닌 소쿠리와 종이상자 등에 투표지를 담아 이동시키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를 책임져야 할 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선관위는 공식 사과에 나섰지만, 국민의 신뢰는 크게 땅에 떨어졌다.
그 후에는 특혜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감사원 감사 결과 일부 고위직 자녀들의 채용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고, 선관위는 관련자들에 대한 임용 취소 조처를 내렸다. 감사 과정에서는 다수의 채용 절차 위반도 확인됐다. 공정한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에서 공정하지 못한 채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선거의 공정성을 관리하는 기관이 정작 내부에서는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거철 휴직자 증가도 논란이 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마다 적지 않은 선관위 직원들이 휴직 상태였으며 선관위 내부에서는 불요불급한 휴직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까지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휴직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국가의 중대한 선거 업무가 진행되는 시기에 인력 부족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된다면 조직 운영의 적절성을 묻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투표용지 부족, 소쿠리 투표, 특혜 채용, 휴직 논란. 이 모든 사건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국민이 느끼는 ‘말도 안 되는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본질은 똑같다. 그리고 반복되는 실수는 결국 신뢰의 문제로 이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선관위를 향한 견제와 감시의 한계가 함께 지적된다는 점이다.
선관위는 헌법이 보장한 독립기관이다. 이는 우리 민주주의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제도적 성과이기도 하다. 과거 권력이 선거에 개입했던 경험을 반성하며 선거만큼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독립성이 곧 무소불위의 권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권력도 견제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를 견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감사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국민 사이에서는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선관위를 감시할 장치는 충분한가 하는 점이다. 특혜 채용 논란 이후 국회에서 특별감사관 제도 도입과 외부 감시 체계 강화 방안이 논의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독립성을 훼손하자는 것이 아니라, 독립성에 걸맞은 책임성을 확보하자는 요구였다.
국민은 선관위의 정치적 독립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독립성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독립성은 신뢰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반복되는 논란 속에서도 스스로를 점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독립성은 국민적 신뢰가 아닌 불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실수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반복되어 온 여러 문제를 되돌아보고 제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선관위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한이 아니다. 국민이 다시 믿을 수 있는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민주주의의 심판은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심판일수록 더욱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지금 국민이 선관위를 향해 던지고 있는 질문도 결국 하나다.
‘언제까지 무소불위의 왕관을 썼다고 착각할 것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광남일보@gwangna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