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란/엎드려 헌신하는 존재 같다//넘어지는 누구라도/받아주는 땅바닥/땅바닥에/발바닥을 대고 일어서봐/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중후략…’(‘바닥’ 일부)

그는 바닥을 알고 있다. 삶이 높은 능선에 올라야만 하늘을 다 본 것처럼 으시대는 현실이지만 바닥이 없는 공중은 없는 법. 시인은 바닥을 통해 우리네 굴곡진 삶을 조망한다. 사는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거나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에 신자본주의를 견뎌내고 가야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 노정된다. 이처럼 시인이 대면한 삶의 무늬들이 편평하지 않게 펼쳐진다. 전남 강진 출생 금별뫼 시인의 세번째 시집 ‘묻고 싶은 아침이 있다’가 현대시학 기획시인선 31번째 권으로 최근 출간됐다.

시인의 시편들은 군살이 없는 게 특징이다. 행간 길이가 굉장히 짧다. 대개의 시들은 ‘울음의 능력’이나 ‘포옹’, ‘자기만의 방’ 같은 작품을 제외하면 얍실하게 전개되고 있다. 시어를 수없이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한 듯하다. 의미들이 한층 선명하게 다가오는 마법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두 갈래 길’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이치는 명징하다. 운명을 쥐고 있는 갈래길에서 친구는 햇빛길로, 자신은 그늘길을 택했다. 나중에 친구는 부유한 자가 됐고, 자신은 시인이 됐다고 밝힌다. 그러나 부유한 자가 아니더라도 삶의 이치를 꿰뚫고 가는 시인의 다층적 삶에 대해 직조한다. ‘생은 그늘을 통해 지나가는 것’이라는 시행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삶의 근원이 드러난다. 이는 늘 자신을 성찰하며 사는 삶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거울에 금이 갔다/한 세계가 깨어졌다/온전히 볼 수 없는 너를/견딜 수 있으려나//금간 것은 거울인데/마음이 다 깨어지는 것 같다//한번 금 간 것은 금이 간 사이처럼/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그래도 거울은/괜찮다 괜찮다며/나를 보여준다//거울의 세계는 그런 것이다’(‘거울의 세계’ 전문)

시인은 천박한 자본주의 시대 속 도덕율의 기준이 더욱 하락한 상황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한번 쯤 거울 앞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데도 세상은 갈수록 더 혼탁해지는 상황을 직시한다. 자기자신을 비춰보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거울의 1차적 목적만 활용하고 끝내는 시류가 넘쳐나는 풍토에 대해 아쉬워한다. 거울은 자신의 겉 뿐만 아니라 속까지 비추는 것이어서 그것이 깨지면 마음이 깨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시각이다. 여기서 금이 간 사이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현주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비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 아닐까 싶다. 시인은 시 ‘후기’를 통해 기억조차 썩지 않는 현실을 조망한다. 시인은 썩지 않은 기억을 어둠처럼 걸치고 긴 길을 간다고 표현한다. 긴 길은 짧지 않은 생을 말한다. 시 ‘가시’에서 가시는 삶이 온통 가시밭 같다는 비유와 궤를 함께 하고 있어 시 ‘후기’와 같은 구도를 하고 있다. 수록된 많은 시편들의 시적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번 시집은 4부로 구성, 분주한 가운데 일상 틈틈이 창작한 57편의 작품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한양대)는 “주변에서 서성이는 존재자들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 중심에 대한 시인 나름의 대항 논리를 펼쳐간다. 소외된 이들의 가치를 옹호하는 인식과 표현을 통해 시간의 속도 때문에 잊혔던 삶의 본령이나 의미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새로운 전율의 소리를 미덥게 경청하게 된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