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 ‘전시’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을 떠올린다. 전 세계를 통틀어 봐도 전시회의 중요도, 크기, 전통 등에서 유럽을 따라갈 수 있는 대륙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에는 전 세계 25대 전시장 중 17개가 소재하고 있으며, 최고 매출을 자랑하는 세계 10대 전시장은 모두 유럽에 위치하고 있다.

대형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유럽 대도시들이 전시회를 통해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필자가 1995년 스위스 츄리히 공항에 가족과 같이 첫발을 내디딘 이후 세 번에 걸쳐 약 10년 동안 유럽 대륙의 3개국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유럽인들이 우리에 비하여 유달리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여러 가지 면에서 참 여유 있고 평화롭게 살고 있어서였다. 유럽과 첫 인연을 맺고 20여년이 지나고 독일 근무를 마치면서 그 이유를 몇 가지 찾을 수 있었는데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의 중요한 하나는 전시컨벤션으로 대표되는 MICE 관광 산업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럽의 전시산업은 다양한 국제화 전략을 구사하면서 발전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전시회에 방문하는 기업 중 30-50%가 외국기업이며, 몇몇 유럽 국가는 전시회를 해외에 수출까지 한다. 독일의 경우 매년 200여개의 전시회를 해외에서 개최한다. 무엇이 유럽 전시산업을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유럽의 전시산업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럽에서는 약 11세기부터 전시회가 활발하게 개최되었으며 초창기에는 프랑스, 독일 전시회가 유명하였으나 13세기 100년 전쟁 등을 통해 프랑스 정치상황이 불안해지자 프랑스 전시회는 쇠퇴하게 되었고, 독일 정부와 귀족들이 전시회 개최가 국가재정에 직간접적으로 크게 기여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국가적으로 전시회를 적극 장려하여 독일에 집중적으로 상인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15세기에는 신대륙 발견의 가장 큰 수혜국인 스페인이 각광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당시 유럽의 선진국 이였던 영국, 프랑스가 전시산업을 주도했다. 20세기 부터는 독일의 전시산업이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 후 독일 정부가 쓰러진 경제를 일으키고 독일을 수출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전시산업에 올인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적으로 전시장을 짓도록 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시회나 세부 산업분야를 테마로 한 세계적인 전문전시회는 오늘날 까지도 대부분 독일에서 개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인구가 1,000만 명도 되지 않는 소국으로 독일의 빛에 가려 전시 산업 규모가 그다지 큰 편은 아니지만 양국 모두 대형 전시회 보다는 틈새시장에 집중하였다. 스위스는 시계, 보석 같은 특수 분야의 전문 전시회가 발달하였으며, 오스트리아는 컨벤션 쪽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모든 유럽 국가는 전시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유럽 주요 전시장은 정부, 주정부 또는 시 당국의 소유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독일, 프랑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주요 국가들은 자국의 전시산업 진흥을 위해 공공자금을 기꺼이 투입하고 있다.

독일은 ‘유럽전시산업의 제왕’, 스위스는 ‘유럽전시산업의 히든 챔피언’, 오스트리아는 ‘유럽 틈새 전시산업의 선두 주자’, 프랑스는 ‘EXPO의 온상’, 영국은 ‘세계 전시산업의 허브’, 스페인은 ‘4대 대륙을 잇는 전시회’, 이탈리아는 ‘알짜배기 전시회의 집합소’로 불리면서 유럽인들이 여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밑천이 되어 주고 있다.

호남지역은 MICE 수요 대비 전시컨벤션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는데 지자체들이 최근 이러한 MICE 수요에 맞추어 전시컨벤션 시설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전시컨벤션센터 운영은 막대한 시설투자와 운영노하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접지역에 있는 광역지자체가 각각 별도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보다는 대규모 전시회나 이벤트는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기존의 전시장에 집중하고, 회의등 중소형 컨벤션이나 관광은 각지의 교통이 편리하고 풍광이 수려한 지역에 안분하거나 지역별 산업특성에 맞게 특화하는 전략을 권하고 싶다.

MICE 시설 인근 호텔과 문화시설 등 부대인프라 구축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MICE 산업은 전시컨벤션센터와 함께 숙박, 먹거리, 즐길거리, 레저, 관광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 시너지를 발휘하는 종합 서비스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MICE 산업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창출에 선도적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MICE 인재양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

호남지역이 MICE 부문에서 유럽의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처럼 틈새분야를 찾고 특화분야에서 서로 상생 발전하여 지방 중소규모 전시컨벤션센터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MICE 산업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여,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어 진정 ‘정의롭고 풍요로운’ 지역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