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영의 ‘환이삼롱’(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작품전, 6월16∼19일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은 비유 서체의 유장함과 문자향으로 사유와 상상의 우주를 무한대로 확장시켜 준다.

‘환이삼롱’, 당대의 최고 작곡가 환이의 황학루 피리 선율 연주 풍경이 떠오른다. 이를 유유자적 누리는 강가 나룻배 왕희지가 보인다. 고위관료와 야인의 경계가 무너진다. 진나라 고관의 권위를 벗어 던지고 환이는 정성을 다해 피리 선율 세곡을 연주한다. ‘낙매화곡’으로 이백은 매화꽃 휘날림의 풍경을 상상한다. 도연명은 감동 화답 언어를 찾지 못해 혼미함의 ‘음주’에 빠진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영역, 선율이 시작된 것이다.

강한 듯, 억센 듯 상서로움이 도입부를 장악한다. 부드럽고 나직이 연출해 나가는 붓끝 운동선, 또 다시 설렘과 부드러움, 친밀함이 끼어든다. 자유분방한 붓끝 놀림, 운동이 빨라진다. 문자가 춤을 춘다. 사물이 춤을 춘다. 황학루가 세 마리 학으로 비상한다. 온 우주가 비상의 쾌감에 젖는다. 몰아의 기쁨, 홀림의 쾌감은 나에게서 너에게로 이어진다. 너와 나의 경계가 무너진다. 재연 답습의 유혹이나 불안은 저 멀리 달아난다.

좋은 예술작품은 창의적 말 걸기로 사유의 쾌감을 유도한다. 이백의 화법으로 말을 걸며 도연명의 몰아로 응답케 하는 힘, 신동영의 예술사물은 세속 시류를 제압해 나가는 힘이 넘친다. 흘림의 운동 흐름이 점차 빠르고 급박하다. 구경꾼으로, 단순 감상자로 머무르려했던 자, 운동의 극점에서 신명을 주체 못하는 자, 휘모리 노래꾼이 새롭게 탄생한다. 왕희지와 환이, 누가 더 뛰어난가. 누가 더 대단한 예술가인가. 언급 자체가 부끄럽고 어리석다. 연주자와 감상자가 하나 되는 풍경 연출, ‘감히 내게’라는 천박한 권위 지향의 유혹이 저 멀리 물러선다.

신동영 작품의 품격은 메타 시선으로 예술사물의 심미성을 건드림에 있다. 보이지 않던 보물 아우라가 동시 공감각 관점으로 조망되기 시작한다. 5월의 매화 휘날림, 선율로 이를 보게 하고 듣게 하는 작업, 창의적인 속도와 운동선이 메타 상상을 유도한다. 흘림의 서체와 그 운동 강도가 깊어지고 응축된다. 그 응축의 우주 안으로 모든 게 수렴된다. 나의 갈망, 너의 응어리가 녹아진다. 문자의 춤추기, 감동의 엑스터시가 펼쳐진다. 이제 나도 황학루 시인이 된다. 환이의 상상 선율 따라 필체가 요동친다. 그 요동침으로 가짜 드러내기 삶이 물러난다. 구름 두둥실 자유함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술작품의 성패는 내용과 형식의 앙상블 여부에 달려 있다. 이 작품에서 기운생동의 비유 필체는 권위에 찌든 옛사람의 심령과 골수를 찌른다. 뒤이어진 흘림의 서체가 감상자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부드러움은 극도의 절제와 줄임으로 이어진다. 너와 나의 유창한 언변도 끝났다. 체면도 끝났다. 무얼 예쁘게, 거창하게 표현하려는 욕망도 사라지는가. 이제 갈고, 조이고 또 줄이고 줄임으로 자연스런 운동선이 연출된다. 사물은 작가의 내면과 만나면서 새로운 메타 기호로 변주되기 시작한다.

보석공예품을 빚기 위한 작가의 예리한 눈빛, 이제 긴장의 눈길, 제압과 통찰의 눈길은 절제로 이어진다. 장인이 완성된 예술품 앞으로 나아와 무릎을 꿇는다. 이백의 시언어로, 도연명의 문장 언어로 승부를 걸려한 강단진 그 도도함도 이제 기꺼이 내려놓는다. 작품은 선율 음미의 욕망 틈새에서 잠시 허우적거리게 하다가 부드럽게 너와 나를 놓아주기 시작한다. 역동의 춤추기가 관조를 향한 비유의 서체 화법을 통해 부드럽게 마무리된다. 거기에 참 현존 회복을 향한 깨달음의 미소가, 닫힘에서 열림을 향한 참 소통의 우주가 우러나온다. 서체 안에 숨겨진 수많은 서권기와 문자향의 비밀 사연, 이를 하나하나 발견케 하려는 신동영 특유의 메타 서예철학은 우리 시대 문화가의 값진 중요 무형 자산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