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해 달리를 통해 기억하고 싶어했는지 모른다. 죽은 형의 이름을 갖게 한 부모에게 달리는 ‘무의식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그래서였을까. 1931년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는 네 개의 시계가 그려져 있다. 테이블 위에 치즈처럼 흐물흐물 흘러내린 시계, 나뭇가지에 축 늘어진 시계, 물개 같은, 또는 늘어진 치즈같은 것 위에 휘어진 시계, 회중시계 위에 우글거리는 개미 떼가 주된 이미지이다. 상식적인 사람들의 상상력을 난도질한 이 작품은 지금껏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풍경이다.

나는 이 그림을 미술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대하며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이 작품을 통해 ‘영원한 시간’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붙잡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기억’을 통해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는 것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나는 최근에 만 34년 전에 29살에 죽은 아랫동생의 봉분을 파묘했다. 레슬링 선수로 활동했던 동생의 죽음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너무나 건강했었기 때문이다.

달리는 성불구자여서 자식을 남기지 못했다. 아우도 혼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자식이 없다. 자신들의 죽음으로 자신들의 유전자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동생을 생각하면 달리의 ‘기억의 영속성’이 떠오른다.

일년에 두 번, 한식 때와 추석에는 동생의 무덤에 꽃을 갖다 놓았다. 처음에는 하얀 국화꽃을 갖다 놓았다. 그러다보니 하얀 국화꽃은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 같아 형형색색의 꽃을 무덤에 갖다 놓았다. 그러나 다시 동생의 무덤에 와서 마른 건초처럼 말라버린 꽃들을 보며 동생이 죽지 않았다고 내 깊은 곳의 의식은 무덤가에 살아있는 꽃을 심기에 이르렀다. 동생이 죽은 줄을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의식은 죽음을 상징하는 하얀꽃과 뿌리가 잘린 꽃다발을 부인하고 있었다. 그런 세월이 34년이라니, 이제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나는 차마 동생을 잊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유년에 동생과 함께 쏘다니던 마을 공동묘지에 급히 묻은 동생이 안쓰러워 나는 오래 전부터 선산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 아버지가 가꾸던 산, 동생이 심은 밤나무 숲이 무성해 추석에 성묘를 가면 밤나무가 잘 익은 밤알을 내 머리에 떨구며 “형!” 하고 부르는 듯한 그 선산에 동생을 데려오고 싶어했다.

몇 년을 마음 속으로 벼리다가 마침내 인부를 불러 동생의 봉분에 삽질을 하게 했다. 급히 묻느라고 꽁꽁 싸서 묻은 이불은 사라지고 검은 흙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늘 무엇인가에 골몰하던 동생의 두개골이 나오자 나는 눈물을 뚝뚝 흘러내렸다. 지그시 나를 바라보던 해맑은 두 눈도 사라져 그 자리에 커다란 구멍 두 개, 그리고 단정했던 입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그야말로 사진으로 보았던 죽은 자의 해골이었다.

나는 하얀 종이에 머리에서부터 목과 팔, 갈비, 엉치, 다리뼈를 사람의 형상으로 놓았다. 그러면서 살이 썩어 검게 변한 뼈에 붙은 흙을 손으로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털어냈다. 동생의 죽음을 비로소 실감하였다. 나의 따스한 온기가 참으로 오랜만에 동생의 몸에 전해졌다.

마을공동묘지에는 내가 아는 사람들의 비석들이 눈에 띄었다. 죽어서도 동네를 이룬 것이다. 그 이름들을 보며 생전 그들의 얼굴과 행적이 떠올랐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므로 기억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만났어도 만난 것이 아니다.

기억은 관계를 갖게 한다. 그러므로 기억은 이야기가 된다. 그런 까닭에 기억은 누군가가 죽었어도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장치이다.

동생을 화장시켜 유골항아리에 담아 선산에 묻고 평장을 하였다. 며칠 후 동생의 삶을 규명하고 증거하는 작은 비를 무덤에 세웠다. 동생 이름 석 자와 생몰연대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동생의 존재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이제 내 마음은 편해졌다. 늘 추운 곳에 혼자 내버려 둔 아이처럼 느껴졌는데, 7대조부터 모셔진 수십 기의 맨 끝 아버지의 곁에서 이제 동생은 비로소 안식을 얻으리라.

이러한 신성한 의식을 통해 동생은 비로소 이 세상을 살다 간 옛 사람이 되었다. 그 동안 동생의 죽음을 부인한 내 의식도 더 이상 죽음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동생의 무덤에 아버지의 무덤에서처럼 나는 기꺼이 하얀 국화꽃을 바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동생이 죽었어도 내가 살아있는 한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음으로 죽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가 생전에 착하고 바르고 성실하게 살았음을 나는 죽는 날까지 기억할 것이므로.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는 호적에 내 생일을 동생의 생일로 바꾸어놓아 나는 그 날이 되면 동생을 더욱 그리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