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광주영화비평지 ‘씬1980’이 10호 째를 맞이하고 있다. 2019년 창간 준비호를 시작으로 계간지 형태로 이어가고 있는 ‘씬1980’은 최근 9호가 발간되었으며, 매 호마다 1000부 가량이 인쇄되어 전국으로 배포되고 있다. 전국으로 광주영화를 소개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유일의 로컬 영화잡지 ‘씬1980’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씬1980’이라는 잡지 제목은 초기 기획위원들의 장시간 회의를 통해 나온 것이었다. ‘씬’은 광주에서 벌어지는 영화적 활동을 뜻하고 ‘1980’은 5·18민중항쟁이 갖는 저항과 공동체정신을 함축한다. 즉 ‘씬1980’은 부조리한 광주의 영화 환경을 타파하고 광주영화 진흥을 위해 함께 전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 다소 진부할 수 있지만 광주영화를 알리는데 이만한 제목은 없다고 생각했다.

잡지에는 지역영화 연구, 지역영화인 인터뷰, 영화정책 제언과 발굴, 제도 비평, 개별영화 비평 등의 글들이 수록되어 영화진흥위원회를 필두로 전국의 영화 기관과 단체, 영화제, 대학교, 연구자, 영화인 등 다양한 공간으로 보내지고 있는데 그 반응이 뜨겁다. 광주 바깥에서 ‘씬1980’을 받아 본 사람들은 일단 지역에서 영화잡지를 만드는 것에 대해 놀란다. 서울독립영화제 관계자는 다른 지역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못하고 있는 일을 광주가 하고 있다며 지역영화의 네트워크와 모범을 광주가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하였다. 부산영상위원회 전 운영위원장은 광주에서 영화 잡지를 출간할 수 있다는 것은 광주가 그만한 문화, 영화적 저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밖에도 외부의 많은 영화인들이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렇듯 광주영화의 비평 활동의 밑거름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9호까지 오는 동안 그것이 해내는 역할이 사뭇 적지 않다.

창간 준비호부터 함께 하고 있는 한재섭 편집장은 전국의 세미나 등에 초청되어 광주지역 영화네트워크의 성과들을 알려내는 활동을 하는 와중에 광주영화인들의 활동과 노력들이 잡지를 통해 타 지역과 공유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광주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른 지역의 영화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서로서로 공유되는 것이다. 잡지는 또한 지역 영화인들의 비평을 실으며 지역에서 영화를 연구하고 비평 활동을 하는 영화인들에게 성장하고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껏 비평의 기회가 없었던 지역에서 이제는 실질적인 비평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잡지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2019년 초였다. (사)광주영화영상인연대는 지역영화 진흥을 위한 생태계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지역영화잡지 발간이었다. 영화 생태계는 영화를 만들고, 보고, 교육받고, 연구하고, 소통하는 순환구조를 갖는데 미디어를 활용한 소통은 필수라고 생각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잡지 ‘씨네21’이 위기를 맞는 이때 영화잡지를 발간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 일 수도 있었다. 그것도 영화불모지 광주에서 인쇄 매체로 말이다. 그럼에도 인쇄 매체를 선택한 것은 나름 전략적 선택이었다. 뉴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스마트폰과 메일링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은 패스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온라인을 통한 매체 공유가 독자들에게 외면 받을 수 있으며 집이나 사무실로 배송되는 실물 형태의 잡지가 더 특별하다고 판단했다. 잡지를 만드는 편집위원들 또한 ‘씬1980’이 나오면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갖는다. 바로 작업의 결과물인 실물이 손에 쥐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손으로 넘겨보는 ‘진짜 잡지’ ‘씬1980’의 성실한 발간이 가능할 수 있었던 특별한 동력이 있다. 바로 ‘씬1980’의 창간 준비와 함께 진행했던 영화비평가 양성교육이다. 비평 관련 전국 유명 강사들을 초빙하여 기획했던 이 교육에는 지역 내에서만 100여명이 신청하여 새로운 지역 비평가들이 발견되었고, 이들이 편집위원과 필진이 되면서 잡지 발간의 토대가 되었다. 이 과정은 ‘씬1980’이 기획에서부터 지역 영화인들의 수준 높은 역량이 발휘된, 단순히 좋은 의미를 앞세워 의욕 넘치게 시작한 잡지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지속적인 발간을 위한 새로운 필진과 제작 인력을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을 잘 설계했기에 가능했던 결과인 것이다.

‘씬1980’은 편집장 이하 편집위원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매회 발간되고 있다. 그들의 노고에 비해 예산은 턱없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지가 계속 발간될 수 있는 이유는 좋은 팀웍을 가지고 독립성과 자율성 속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비평을 싣기 위해 기고자들을 물색하고 청탁하는 위원, 직접 지역영화인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발굴하는 위원, 좋은 사진을 싣기 위해 자신의 일정까지 변경하며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는 위원, 디자이너 옆에서 함께 아이디어를 짜고 지속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편집위원. 이들의 열정 속에서 ‘씬1980’은 만들어지고 있다.

‘씬1980’은 다음 10호 발간을 위해 달리고 있다. 영화뿐만 아니라 광주의 문화예술계에서도 비평문화가 활성화되고 존재하길 바라며 ‘씬1980’을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편집위원들과 영화인들에게 존경의 메시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