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작가가 기획해 진행한 내평마을 벽화

도심지가 아닌, 문화소외지역이 많은 농촌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며 창작을 병행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함평 잠월이나 고흥 남포 및 도화헌 같은 미술관들의 활동을 보면 어렴풋하게 직감이 되는 대목이다. 문화예술 분야 시설을 운영한다는 것이 수익 창출은 어렵고, 사비가 연달아 들어가는 형국이다 보니 그만큼 더 어렵다는 지적이다.

꾸준하게 전시 소식을 전해오는 농촌 지역의 미술공간들을 보면 안도가 되지만, 한동안 너무 뜸하면 괜한 걱정이 앞선다. ‘버팅기지 못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먼저 스치기 때문이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도’라는 명칭으로 문을 연뒤 지난해 12월 2종 등록사립미술관으로 승격, 재개관한 태곳미술관이 그곳이다.

태곳미술관은 전남 화순읍 내평리에 소재, 서양화가 김선미씨가 사비를 들여 개관, 운영 중이다. 마침 블랙으로 구현한, 남도 추상회화의 대가인 원로 김종일 서양화가(전남대 예술대학 명예교수)의 개인전(3월2일∼4월30일)이 ‘순수에로의 회귀’(Return to innocence)라는 타이틀로 열린 가운데 전시를 관람할 겸 해서 전시 기간 중 방문, 그로부터 미술입문 계기를 포함한 창작 인생 전반과 미술관 운영, 앞으로의 계획 등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먼저 그에게 미술입문을 묻자 순탄치 않은 과정이 언급됐다. 부모가 경찰관 부부였는데 부친께서 어린 시절 유화로 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 모습을 보고, 그것을 따라 그리면서 처음으로 미술을 접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중학교 때 화가로 활동 중이었던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으면서 한결 미술이 가까이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선생님은 도자기를 만들 때도, 초상화를 그렸을 때도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중학교 시절 가수 강수지가 한창 이름을 날리던 때라면서 강수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것으로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다. 여기다 피아노와 그림, 영어 등 다방면에서 잘했던 언니를 따라다니면서 더더욱 미술을 은연 중 마음에 품는 계기가 됐다.

그는 조선대 미술대학으로 오기 전에 모 대학 시각디자인과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뒤 2006년 조선대 서양화과에 편입해 어린 시절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미술의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편입을 하기 전에 김종일 전남대 명예교수와의 인연이 중요했던 듯 싶다.

미술공부를 깊이있게 하고 싶은 나머지 외삼촌인 국립현대미술관 장영준 학예연구관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분이 김 명예교수였다. 김 명예교수를 소개받게 되면서 연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무릉도원(武陵桃源)’

‘무릉도원(武陵桃源)’

그 무렵 그는 우연히 미술치료사와 종이접기 등 웬만한 관련 자격증은 모두 섭렵했을 정도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미술대학에 편입을 하게 된 것은 미술을 하려면 정통 미술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조선대 미술대학에 편입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아 아는 선배 언니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을 정도로 현실은 여전히 그가 미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간 대학,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면서 다녀야 했기에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했다. 대학 때는 최영훈 교수와 진원장 교수 등으로부터 지도를 받았으며, 최재영 화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최재영 화가와는 지금도 연락하면서 지낸다고. 이런 노력 끝에 전남대 교육대학원을 거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서양화 박사과정을 수료하는데까지 이르렀다. 논문을 남겨놓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대학 시절 그는 표현기법과 실험적인 것들을 많이 시도했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불교신자이지만 기독교 세계관의 작품도 서슴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러다 그의 미술 인생 전환점은 2015년으로 꼽을 수 있다. 첫 개인전을 아트타운갤러리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광주에 거주하는 주한외국인들을 위한 봉사단체에 소속돼 사무국장직을 수행했다. 이때 접한 외국인들의 초상화들을 주로 출품해 선보였다. 이 단체에서 난민이나 다문화가정, 원어민 영어강사 등을 대상으로 문화적 혜택을 안겨주기 위한 강의를 망라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이때 기획한 전시였다. 더욱이 이방인들에 대한 심층인터뷰까지 한 마당이어서 외국인들의 초상화 작업은 남들과는 다른 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듯 싶다.

“그 사람의 내면을 끄집어 내 미술로 표현하는데 집중했어요. 그들도 사람이고, 하나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내면과 잠자리, 꽃 등을 혼합해 심층 인터뷰했던 30여 명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죠.”

이후 그는 미술관을 운영하는 한편, 아이들이 어려 손길이 많이 가는 가정생활 등 분주한 일상 속 2021년 전라남도 도청갤러리 등에서 여덟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의 그에게 미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한때 꿈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고 전하며 담담하게 자신에게 미술이 갖는 의미를 밝혔다.

“한동안 글을 쓰고 싶었죠. 그러나 글쓰는 사람은 글로 표현해야 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림을 보고 글이 보이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보고 나를 보는 그런 예술을 해보고 싶긴 하네요. 이는 사회를 대변하는 미술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고민하는 미술이 있는 데 이게 섞인 것으로 보면 되죠.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미술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작가는 시대를 반영하는 화가들이지만 저는 아직 이렇게 못해서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죠.”

‘무릉도원(武陵桃源)’

‘Bouquet’(부케, 꽃다발)

그에 따르면 미술이 그 나름의 가치가 있어야 하고, 자기 사상을 담아내고 있어야 훌륭한 화가라는 것이다. 앞으로 그는 디지털 회화나 메타버스에 기반한 회화를 꿈꾸고 있다. 컴퓨터를 좋아하는 것을 전제한 뒤 기본적인 물성 차원에서 평면회화를 추구하는 쪽에 가깝다는 그는 앞서 말한 대로 디지털 회화나 메타버스에 기반한 회화를 위해 관련 공부를 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공부를 하는 데는 이차원적 평면 역시 에너지가 부족, 하나의 전환을 마련해 가야 해서다. 다만 김종일 교수 같은 분처럼 화풍이 일관성있게 유지돼야 하는데 자신은 전혀 일관성이 없게 비춰질까 걱정이라는 속내도 내비쳤다.

“아티스트라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하죠. 한 명의 아티스트 역시 자신의 환경과 상황, 역사, 사회가 모두 바뀌어가니까 작품 스타일 또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순수한 아티스트로서 제가 가진 세계들에 중점을 두면서 자유롭게 작업을 벌여가고 싶습니다.”

미술관이 자리한 내평마을은 그의 기획으로 담장 벽화가 아름답게 장식돼 있어 벽화마을로도 불린다. 미술관 입구는 아름다운 그림들과 가슴 따뜻하게 해주는 드라마 등의 문구로 인해 휴대폰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미술관 운영에 대한 소감을 빠뜨리지 않았다. 미술관 운영과 창작은 극과 극 같은 관계라는 전언이다.

미술관 운영은 행정이 절반을 차지하는 반면, 창작은 여유와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를 끌고 가다보니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마음을 다잡고 작품에 집중을 하는 등 좀 더 열심히 활동을 펼칠 각오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떤 화가로 평가받고 싶은가와 창작에 임하는 자세를 들려주는 것으로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굳이 평가라고 하자면 저만의 독창적 화풍을 가지고 꾸준하게 작업을 펼치는 작가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또 생활과 생활 등 그 사이에서 어떤 하나를 해 놓으면, 다른 하나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해 갈 거예요. 아울러 저는 제 삶을 위해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부터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다 개인적 삶이 작품에 묻어난다는 것에 공감을 해요. 덧붙이자면 저는 힘들고 괴로울 때 그림이 더 잘되는 느낌인 것만은 분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