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1.

시대정신(Zeitgeist·時代精神)의 사전적 의미는 한 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 또는 이념이다. 쉽게 말해 한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을 말한다.

1769년 독일의 철학자 J.G.헤르더가 맨 처음 사용한 이 말은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헤겔은 저서 ‘역사철학 강의’에서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이끄는 시대정신이 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지도자다”라며 이 말을 구체화시켰다.

오늘날에는 정권을 창출한 정부의 정체성이 담긴 국정운영방향과 철학, 즉 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비전을 시대정신으로 통용해 사용하고 있다.



#2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권이 바뀔때 마다 시대정신이 달라졌다.

이는 시대의 상황과 제각각의 특색을 가진 대통령 후보들이 자신들이 정한 미래 국정운영 방향 등이 담긴 시대정신을 내걸고 국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선된 후 집권 기간, 다른 현안보다 이를 우선 추진했다.

1948년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식민지에서 벗어난 당시 세태를 반영한 ‘자주’를 시대정신으로 내세웠고 모두가 가난했던 박정희 시대의 최대화두는 ‘산업화’였다.

군부 독재 시절인 전두환시대에는 뚜렷한 시대정신이 없었지만 ‘보통사람’을 표방한 노태우시대에는 소련해체라는 세계사적 흐름속에 북방외교와 냉전체제 해체라는 시대정신을 만들어 냈다.

김영삼 정부는 군부를 사회와 단절시키고 금융실명제 등을 실시하며 문민정부를 만들었고 김대중 정부는 시대정신인 ‘완전한 민주화’를 이끌어 냈다.

노무현 정부는 낡은 정치 청산을 내걸고 평화와 평등의 가치를 시대정신으로 만들어 갔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 선진일류국가 건설을, 박근혜 정부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시대정신은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이들 시대정신은 집권 과정에서 그대로 실현되지 않거나 권력자의 사욕(?)에 의해 성과가 반감됐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경우 선진 일류국가보다는 신자유주의적 토건국가로 후퇴했고, 박근혜 정부도 자신들이 내건 복지국가는 고사하고 국정농단에 따른 탄핵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방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지만, 부동산 정책과 공정 구현에서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3.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다음달 10일 제 20대 대통령 취임식을 갖는다.

하지만 이날 취임하는 윤 당선인의 앞 길에 대한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우선 역대급 비호감·초박빙 선거로 사분오열된 민심에 6·1지방선거까지 겹치면서 여전히 수습이 요원한데 다 장기화된 코로나 19로 인한 서민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서울 등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망국병인 사회 양극화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 환경도 예측불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른 상태에서 유가 등 소비자 물가는 치솟고 있고 각자도생의 각축전인 글로벌 경제 질서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치닫고 있다.

이같은 불안한 국내외적 환경에서 대한민국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분열된 국론을 한데 모아야 한다.

윤 당선인도 첫 당선 소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국민 통합을 말했고, 첫 당선인 행보로 현충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방명록에 ‘국민 통합으로 번영의 길로 가자’고 쓸 정도로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새 정부의 화두인 ‘국민통합’은 임기 시작전부터 우려되고 있다. 윤정부 첫 내각 인사에서 광주·전남 출신이 1명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배제했기 때문이다. 반면 윤 당선인의 지지세력과 측근들은 능력있다(?)는 이유로 대거 포함돼 있다.

한 쪽을 갈라치고 자기 식구만 감싸며 ‘내로남불’의 자세를 일관해 온 역대 정권들은 대부분 국민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는, 진정 통합의 시대를 여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