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9일 광주페퍼스타디움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 V리그 2021-2022시즌 여자부 경기가 끝이 났다. 비록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시즌을 정상적으로 완주하지는 못했으나 선수들은 팬들에게 배구의 재미를 선물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여자배구는 도쿄올림픽 4강 신화에 이어 또한 번의 전성기를 맞았다.

막내 구단 AI페퍼스의 영향력도 지대했다. AI페퍼스는 젊음과 패기를 앞세운 멋진 활약으로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또 몸을 사리지 않은 헌신적인 플레이로 지켜보는 팬들에게 강한 울림을 선사했다. 6개월간 코트에서 감동의 무대를 보여준 AI페퍼스의 올 시즌 성과와 다음 시즌 과제에 대해서 살펴본다.



△실내스포츠의 즐거움에 흠뻑

광주는 항상 ‘동계스포츠 불모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흥행보증수표’ 프로야구(KIA타이거즈)와 프로축구(광주FC)의 시즌이 열리면서 모든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다. 반면 겨울만 되면 스포츠시즌이 끝났다. 2006년 여자프로농구팀 ‘신세계 쿨캣’(현 부천 하나원큐)이 광주에서 경기도 부천으로 연고지를 옮긴 탓에 동계 스포츠는 관심 밖이었다.

이런 악순환은 지난해 멈춰 섰다. 광주를 연고지로 하는 여자프로배구단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가 탄생하면서 광주시민들은 모처럼 즐겁고 알찬 겨울을 보냈다.

실내스포츠의 묘미를 즐기고자 하는 팬들의 열망은 대단했다.

AI페퍼스의 창단 첫 경기가 열린 지난해 10월 19일 광주 페퍼스타디움은 광주 팬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다.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인 방역 지침에 따라 600명만 입장할 수 있었으나 티켓은 예매 시작 10분 만에 매진됐다.

이날 센터 하혜진(25)이 블로킹으로 창단 첫 득점을 올렸을 때는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가 터졌다. 경기 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광주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받은 선수들은 첫 경기에서 1세트를 잡아내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1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11월 9일에는 IBK기업은행을 맞아 창단 첫 승리를 맛보며 지역민의 기대에 한껏 부응했다. 코트를 누비는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는 코로나에 지친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축포를 너무 일찍 터트린 게 화근이었을까. AI페퍼스는 승부처마다 무너지면서 2~3라운드서 전패를 당했다. 홈과 원정을 오가는 강행군에 체력까지 바닥나면서 팀 분위기가 크게 떨어졌다.

17연패에 빠진 순간. 광주팬들이 나섰다. 이들은 ‘1승도 좋다! 연패도 좋다! 우리는 끝까지 페퍼를 응원한다’ 등의 커다란 플래카드를 내걸며 선수단을 응원했고, 그 결과 AI페퍼스는 4라운드 마지막 경기서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안방 첫 승을 따냈다. 5라운드에서는 흥국생명을 상대로 깜짝 승리, 시즌 3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목표했던 5승도 채우지 못했다. 프로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정상을 목표로 차근차근 궤도에 오른 AI페퍼스 덕분에 광주시민들은 오랜만에 뜨거운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지난 2월 11일 광주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AI페퍼스 선수단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젊음·패기 팀 컬러 실현

시즌 개막 직전 AI페퍼스는 팀 컬러를 스마트(Smart), 스피드(Speed), 스트롱(Strong)의 삼박자(3S)로 밝혔다. AI페퍼스는 팀 컬러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상대 허를 찌르는 호쾌한 공격, 몸을 사리지 않은 허슬플레이, 볼에 대한 끈기와 집념, 매 경기 포기하지 않는 투혼 등으로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객관적인 전력도 나머지 6개 구단보다 열세라는 한계를 딛고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상대들과 당당히 맞서 싸웠다. 그리고 3번의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이중 백미는 3번째 승리를 거둔 5라운드 흥국생명전이다. 이날 AI페퍼스는 선수 부상, 코로나19 여파 등 악재를 딛고 당당히 실력으로 승리를 쟁취, 수백여 명의 광주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마치 성장드라마와도 같은 눈물겨운 승리였다. 이날 AI페퍼스는 선수 전원이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상대 코트의 흥국생명에서 자가진단 키트 양성 반응이 나옴에 따라 코로나19 감염에 대비한 조치였다. 반면 흥국생명에서는 리베로 김해란만이 마스크를 착용했다.

이에 AI페퍼스 선수들은 답답함은 물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구단에서 사전에 제공해준 숨쉬기 편안한 스포츠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숨을 쉬는데 어려움은 분명했다.

팀 상황 역시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얇은 선수층에 피로까지 누적되면서 이한비와 박경현, 하혜진은 100%의 몸 상태를 유지하지 못했다. 최가은 역시 훈련 도중 발등을 다쳤다.

‘신인왕 후보’로 거론됐던 박은서가 발목인대 수술로 ‘시즌 아웃’됨에 따라 김세인이 윙스파이커로 나서게 됐다. 때문에 리베로는 문슬기가 홀로 전담하게 됐다.

온갖 어려움 가득했지만 AI페퍼스 선수들은 ‘오뚝이’ 같이 일어서며 상대와 팽팽하게 맞섰고, 밀리던 경기를 뒤집으며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리베로 문슬기는 40개 디그 성공·12개 리시브 등으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엘리자벳, 박경현, 이한비가 나란히 20점씩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미들블로커 하혜진·최가은도 각각 7득점·5득점으로 제 몫을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