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발표한 뒤 나라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국방부 청사로의 졸속 추진에 따른 ‘안보 공백’, 이전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 집무실과 관저 이전에 따른 취약한 경호 문제 등 신경 쓰이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청와대 부지는 역사적으로 고려시대 남경의 별궁이 있던 곳이다. 조선 세종 때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뒤쪽에 후원을 조성하면서 이 지대를 경무대로 불렀다.

그 뒤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무대에 융문당 등의 건물을 새로 지었고, 이 곳에서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곳은 또 농사가 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8배미의 논, 즉 경농재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가 1910년부터 경복궁을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하면서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다 허물고 관사와 공원을 조성했다. 일제가 경무대에 총독관사를 지은 것은 조선 왕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지리학상 용맥을 끊어 민족정기를 말살해 이 나라를 영원히 지배하고자 했던 것이다.

1945년 해방 후 이곳은 미군정 사령부 하지 중장의 거처로 사용됐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됐다.

경무대라는 이름은 3·15 대통령 부정선거 등 독재의 대명사처럼 인식돼 1960년 8월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청와대란 이름은 본관 건물의 지붕과 담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유래한다.

그 뒤 5대 박정희 대통령에서 19대 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일관되게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로서 청와대가 사용되고 있다.

청와대는 본관과 관저, 영빈관, 춘추관, 비서실별관, 녹지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본관은 대통령이 업무를 보고 외빈을 접견하는 건물이고, 관저는 대통령과 가족이 사는 사적인 공간이다.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와 외국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개최하는 건물이며, 청와대 프레스센터라 할 수 있는 춘추관은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나 출입기자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는 곳이다. 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이처럼 청와대가 역사적 정통성에 대통령 집무실로서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윤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을 강행하려 하는 데 대해 국민은 납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집무실 이전의 목적을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남으로써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사물과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물인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이 될 수 없고, 청와대에서 사는 대통령이 제왕적일 수 있다. 즉 제왕적 권력을 바꾸기 위해서는 청와대를 바꿀 일이 아니라 청와대에 사는 대통령의 철학과 사상을 바꾸면 될 일이다.

국민 여론도 반대가 찬성보다 훨씬 높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2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전 반대가 58.1%로 이전 찬성 33.1%보다 월등히 높게 나왔고 지난 24일 KBS가 보도한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이전 반대가 53.8%로 찬성의 40.6%보다 많았다.

안보 공백 등의 문제 외에도 이렇게 많은 국민이 이전을 반대하는 데도 윤 당선자는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생각을 하지 않고 ‘선거를 통해 역사적인 결정을 한 것’이라는 둥 하며 이전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풍수가의 자문으로 한 나라의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임기 동안 집중해야 할 국정 과제를 선별해 국민의 여론을 듣고 추진 동력을 확보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윤 당선인은 기껏 집무실과 관저를 어디로 옮길 것인가를 놓고 소모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소통하기 보다 자신의 고집을 앞세우면서 국민 여론을 우습게 아는 윤 당선인. 임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그의 특성부터 확인하고 보니,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