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광주광역시가 ‘문화예술 발전 8대 정책의제’를 발표하였다. 문화예술 종합 창작센터 조성, 광주역사 박물관 건립, 청년창작 지원센터 조성, 광주브랜드 문화콘텐츠 전문인력 양성 등 주로 하드웨어 인프라 조성이 주된 내용이다. 장밋빛 청사진이다. 광주가 아직도 문화예술중심도시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이유를 왜 하드웨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하드웨어나 인프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문화행정은 유연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껏 ‘순환 보직’으로 돌아가는 문화행정은 양질의 목표 달성을 위한 지속적이고 원활한 업무 진행을 끊어버리고 단순 결과 중심의 경직되고 폐쇄적 일처리를 유도해 왔다.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을 민원인 취급하고 단순 수혜자로 생각하게 만들어왔다. 이런 비전문 공무원들이 문화행정을 담당하니 자연스럽게 산하기관(문화재단, 정보문화산업진흥원 등)에 의지한다. 이미 문화재단이나 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규정과 업무범위를 들먹이며 더욱 경직화 되었는데 말이다. 타 예술 장르도 불합리한 장면들이 있었겠지만 영화라는 장르로 국한해서 경험했던 광주의 문화행정 씬을 기억해 본다.



S#1 장편영화 로케이션 협조 뺑뺑이

개봉영화 PD를 맡고 있는 삼프로는 영화 촬영장소 섭외를 위해 영락공원을 방문하였다. 유족 대기실과 인근 장소에서 촬영하기 위해 영락공원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영락공원 측은 ‘공원은 광주시가 관리하니 광주시에 문의해보라’고 하였다. 삼프로는 바로 개봉영화 로케이션 지원 담당부서인 광주시 문화산업과에 연락하였다. 문화산업과 영화담당자는 ‘영락공원은 시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광주도시공사가 관리하니 도시공사에 문의하라’고 하였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삼프로는 광주도시공사에 전화를 하였다. 역시나 도시공사는 다시 ‘영락공원에 문의하라’고 하였다. 소위 관공서 뺑뺑이를 돌린 것이다.



S#2 또 바뀌었어? 문산과장!

광주OO영화단체 김이사장은 2016년부터 광주영화센터와 영화전담기구 설립을 위해 광주영화인들과 함께 고군분투해 왔다. 독립예술영화와 지역영화영상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문화산업과 최과장은 광주영화영상인연대가 주관하는 행사와 영화제, 세미나, 광주영화인들과 스킨십을 통해 광주영화현실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영화센터와 영화전담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광주영화인들의 열정과 역량을 알 수 있었다. 영화인들도 이번에는 영화교육, 영화관람, 영화창작을 위한 공간과 시스템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런데 이럴 수가... 한창 일을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최과장은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하였다. 그 후임 김과장은 영화센터, 영화전담기구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하였다. 김이사장과 영화인들은 김과장에게 다시 지역영화의 현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다시 노력했다. 하지만 몇 달 후 김과장 역시 문산과를 떠나 인사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박주무관도 떠나게 되었다. ‘후~ 우리 다시 시작해야 해?’ 이렇게 5년 동안 바뀐 문화산업과 과장만 5번이다.



S#3 별 문제 없던데요?

광주OOOOO라는 단체는 광주시 위탁사업자로 매년 3억원 가량의 예산으로 광주영화드라마 로케이션 사업을 하고 있다. 타 지역에서는 지자체 산하의 영화전담기구가 로케이션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광주만 이 민간단체가 10년 넘게 사업을 위탁 받고 있다. 지역 영화인들은 이 단체의 전문성과 변화된 환경에서 로케이션 지원사업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 놀랍게도 이 로케이션 지원사업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사업평가의 자리는 없다. 도대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영화에 얼마만큼의 인센티브 지원을 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사업 정산만 잘 맞아 떨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문화산업과에 이 단체가 이번 년도 사업 예산의 1억 정도를 반납한 이유를 묻고, 로케이션지원 사업 개선 요구의 목소리를 전달하였다. 들려오는 답변은 이렇다. ‘코로나 때문이에요‘. ‘뭐, 별 문제 없던 데요’. 매년 바뀌는 담당자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얼마 있다가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고 정산만 문제없으면 됐지. 광주국제영화제 파행의 교훈은 이미 잊힌지 오래다. 사실, 이 단체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광주시의 사업 위탁을 받는 영화단체들 모두가 평가의 대상이다. 광주시가 관리와 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것이다. 직접 관리감독이 어려우면 관 내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옥석을 가려야 한다. 시스템화 하자는 것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렸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견제와 각성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광주광역시 ‘문화예술 발전 8대 정책의제’ 참 그럴 듯하다. 하지만 광주는 자기 반성적인 의제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인과 문화행정 간의 두터운 벽을 무너뜨리고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을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예술인과 단체들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관리할지에 대한 섬세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문화행정 공무원들의 각성과 자각이다. 소위 ‘공무원 마인드‘로 통칭되는, 양질의 업무 진행을 막는 방해꾼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