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플라스틱 병뚜껑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공간이 있다. 지난해 10월 발산마을 입구 청춘빌리지 1호(광주 서구 천변좌로 12-16)에 들어선 ‘플라스틱 정류장’이 그곳이다.

플라스틱 병뚜껑은 투명페트병과 우유팩, 종이 등이 분리수거를 통해 재활용될 동안 일반쓰레기와 함께 소각되거나 매립돼왔다. 크기가 작고, 소재가 다양해 따로 선별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장비를 이용해 병뚜껑을 분쇄하고 있다.

수거한 병뚜껑의 무게를 재는 모습.

그러나 플라스틱 정류장에서는 플라스틱 병뚜껑을 중점적으로 모아 업사이클(Up-cycle, 버려진 물건을 새롭게 디자인해 예술적·환경적 가치가 높은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재활용 방식) 제품으로 탄생시킨다.

이곳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버려지는 플라스틱 병뚜껑을 포함해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HDPE 또는 PP의 소재만 가능)을 수거해 색깔별로 분류하고 세척한 뒤, 분쇄와 사출, 금형을 거쳐 쓸모있는 물건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렇게 재탄생한 제품은 발산마을 고유 패턴과 지형을 바탕으로 만든 열쇠고리와 마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고양이 모양의 치약 짜개 등이다.

병뚜껑으로 만든 열쇠고리와 치약짜개 등 제품들.

발산마을 입구 청춘빌리지 1호 내부에서 색깔 별로 분류해놓은 플라스틱 병뚜껑들.

청춘빌리지 1호 카페 한 켠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의 새활용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리사이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문화상품으로 탈바꿈한 소품들은 빌리지 1호에서 상시 판매한다. 향후 온라인 판매도 진행할 예정이다.

더 많은 병뚜껑을 모으기 위해 시민들이 병뚜껑을 가져오면 재활용 가능 여부를 판단한 뒤, 100g 당 도장 한 개를 찍어주고, 도장 12개를 채우면 업사이클 제품을 증정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플라스틱 정류장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산마을에서 진행되던 도시재생사업이 끝날 무렵, 마을의 활성화와 자립을 위해 청년들과 주민들이 함께 청춘발산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해 골목이웃회를 매달 열기 시작했다. 골목이웃회를 통해 마을 어르신의 참여를 독려해 공병이나 캔을 모아 행복장학금을 마련,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 게 계기가 됐다.

병뚜껑들의 무게를 재고 있는 어린이들.

이후 보다 쉽게 공병과 캔을 모으기 위한 ‘행복장학금 box 캠페인’을 실시, 매주 목요일을 ‘마을자원관리의 날’로 정하면서 마을 자원 관리와 이를 활용하는 일에 대해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본격적인 기획은 2020년부터로, 지난해 10월 공간과 장비 등을 갖추면서 운영에 들어갔다. 향후 어르신 일자리와도 연계할 계획이다.

송명은 청춘발산협동조합 대표는 “재활용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잘 분류하는 게 자원순환의 시작점이다”며 “플라스틱 정류장은 분류한 자원이 다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까지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2g의 작은 병뚜껑을 모으는 일로 시작해 삶의 방향, 그리고 지역의 문제, 공동체를 만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힘을 가진 활동”이라면서 “플라스틱 정류장이 발산마을의 어르신들과 청년들을 문화를 순환시키는 것은 물론, 자원활용을 통한 친환경 거점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