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얼마 전 언론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된 산모가 아이를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구급차 안에서 출산한 사실이 알려져 우리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만약 아이나 산모에게 자칫 위급한 문제라도 생겼으면 충분한 의료적 조치를 받을 수 없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코로나19라는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근대 자유주의 국가 이후로 국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범적 장치로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 등의 기본권을 인정하고 보호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는 당연히 생명권과 신체의 건강에 대한 권리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반 발열환자들이 코로나19 증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수차례 진료거부를 당하는 등 자칫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해 우려를 낳고 있다. 코로나 발생 이후 8월까지 전국 1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생한 발열환자 병원 응급실 수용 거부 사례는 총 2959명에 이른다. 특히 70세 이상 고령 환자가 1394명이었고 60세 이상으로 확대해 보면 1813명이 병원에서 진료거부를 당했다.

진료 거부를 당한 환자 중에는 뇌경색 환자나 심정지가 온 환자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지난 9월에는 광양에서 50대 남성이 인근 병원의 격리 병상이 없어 기다리던 도중 구급차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순천에 위치한 의료기관으로 급히 이송된 사례도 있었다. 전남소방본부의 ‘코로나 유무증상자 의료기관 수용거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2021년 8월까지 광주·전남 소재 병원에서 응급환자의 병원 수용 거부 건수는 총 177건에 이른다.

병상 부족 등의 이유로 진료를 못 받는 부득이한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단순히 발열로 인해 코로나가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국민 건강권의 심각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감염병 유행 시 응급실 운영 권고안’에 따르면 병원은 응급실을 코로나 의심환자 구역과 일반환자 구역으로 나눠 대응하고 응급실 앞에 사전환자 분류소를 설치해 중증도와 감염 위험도를 판단한 후 지정된 구역에 분리수용 하도록 하고 있다. 즉 생명이 위험한 중증환자는 코로나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응급 치료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한 지침이다.

하지만 일선 병원 현장에서는 이 같은 보건복지부의 매뉴얼이 준수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병원의 상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응급실에 감염의심 환자를 무턱대고 수용했다가 일반환자에게 전염되면 응급실을 폐쇄해야 하고 심각한 상황에는 병원이 폐쇄될 수 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병원의 피해로 돌아오고, 의료체계 붕괴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응급실 내 격리병상을 획기적으로 증설하고, 필수 장비와 그 장비를 운용할 전문 의료진이 확충돼야 한다. 정부의 재원은 항상 한정돼 있다.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지원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정부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급한 대로 정부의 관계 부처와 의료계 등이 머리를 맞대고 효율적인 재원투자 방안과 자원의 재배치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 코로나 상황을 극복해 내더라도 바이러스나 전염병 등의 위기는 언제든 가까운 미래에 다시 반복될 확률이 크다. 국가는 현존하는 위기에서 배우고 다가올 위기에 대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의 의무는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치료하는 것은 현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