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괘고정수(掛鼓亭樹)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왕버들이다. 필문(畢門) 이선제(李先齊,1389~1454)가 심은 높이 15미터인 이 왕버들은 지난 1998년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었다. 이선제의 후손이 과거에 급제하면 이 나무 가지에 북을 걸어 놓고 축하연을 열었기 때문에 괘고정(掛鼓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선제는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도 쇠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1589년 기축옥사 때 이선제의 5대손 이발과 그의 일족이 역모로 죽음을 당하면서 나무도 말라죽었으나 나중에 이발의 억울함이 밝혀지자 다시 살아나 지금에 이르렀다한다.

기축옥사란 정여립 모반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벌인 옥사를 말한다. 이이의 제자였던 정여립이 동인으로 돌아섰고 스승인 이이를 공격하는 발언을 해 정여립은 서인의 공적이 되었다. 정여립은 고향인 전주로 낙향해 대동계를 조직하고 노비, 승려, 무사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의 이런 행적이 서인에게 위험한 인물로 비춰진 것이다. 정여립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고변을 듣고 선조가 보낸 금부도사가 그를 잡으려 하자 그는 진안에서 아들과 함께 자살했다. 지금도 그의 죽음에 대해 의문점이 많다. 실제로 그가 모반을 일으켰다는 점에 의구심을 품은 사람도 적지 않다. 동인에 대한 서인의 모략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이발은 과거에 장원급제했고 그의 동생은 이등으로 급제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형제가 다 문장과 학문에 뛰어났다. 동인의 영수였던 이발은 서인 정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정철은 성산별곡, 관동별곡 등 뛰어난 문재文才였으나 성질이 급하고 술을 너무나 많이 마셔 실수가 잦았다. 정철은 자신과 절친한 사이인 송익필이 동인에 의해 노비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자 성혼과 더불어 기축옥사를 일으킨 것으로 추측하는 사가史家들도 있다. 서인의 배후로 선조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왕권을 위협할 만큼 동인의 힘이 너무 셌기 때문이다.

평소 정여립과 자주 서신을 주고받았던 남명의 제자인 진주 최영경이 모진 고문 끝에 죽었다. 정철은 최영경의 집을 뒤져 이발과 주고받은 편지를 증거로 이발과 그의 가족을 몰살시켰다. 기축옥사로 선비 1000여 명이 희생당했다. 그 여파로 나라는 동서로 나뉘고 힘을 잃었다. 3년 뒤 임진왜란 발발 한 달 만에 왜군에 의해 한양이 점령당하고 선조는 평양으로 의주로 도망쳤다. 집권세력의 위선과 무능을 지켜보던 백성들은 의지할 대상을 잃었다. 충과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던 유생들과 백성을 하늘로 삼겠다던 왕의 위선이 전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임진·정유 7년 동안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농토는 산과 들로 변해 백성들이 먹고 살 방편이 없어졌다. 세종이 일군 150만 결의 옥토는 거친 들판이 되었다. 선조 이후 광해군이 집권해 개혁 정치를 펼쳤으나 서인에 의한 인조반정으로 중단되었고 이어진 병자호란으로 조선은 청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효종 때 북벌 논의가 있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럼에도 조선은 노론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기축옥사 이후 호남의 선비들은 과거를 단념하고 시와 그림에 빠져 살았다 한다. 출사해봐야 정적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집안이 화를 당했기 때문이다.

포충사 옆 예사롭지 않게 생긴 왕버들 옆에 설명이 있어 이 나무에 서린 안타가운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왕버들 앞을 지나면 뭔지 모를 숙연함이 들었다. 남구에는 이런 사연을 가진 나무와 바위, 건축물들이 많다.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에도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한 그루 왕버들에도 오백년의 역사가 깃들어 있지 않는가! 이들을 발굴하고 공유해 남구의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