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1982년 이하석 시인은 시집 ‘투명한 속’을 통해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면서 도시라는 근대화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반생태적인 행태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하고 고발한다. 철, 껌 종이, 아스팔트, 알루미늄, 합성세제, 나사, 치약 껍질, 타이어 조각, 비닐, 병마개, 수은, 빈 병, 깨어진 유리 조각, 흘러내린 기름, 공장 굴뚝에서 치솟는 시커먼 연기, 무분별하게 건설되는 건물 등 도시에서 자행되는 인간의 무분별한 행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인간의 각성과 성찰을 요구했다.

이렇듯 서정시인으로 주목되는 이하석 시인이 펴낸 ‘투명한 속’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은 광물질을 시적 대상으로 삼은 그를 ‘특이한 감성’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했다. 오늘날에는 식상할 정도로 많은 시인이 ‘생태시’, ‘생명시’ 혹은 ‘환경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되어 시적 주제로 삼고 있다. 근대화가 오래전에 시작된 서구에서는 생태 문학이 보편화되어 있다. 하지만 그 무렵만 해도 한국 시단은 1980년 오월광주의 폭풍에 휩싸여 리얼리즘 색채가 강한, 이른바 ‘민중시’가 한국 문단을 강타하고 있었다.

독일의 경우 이미 1960년대에 많은 시인이 환경 오염에 대한 인류의 고민을 통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성찬경 시인이 환경 오염을 염려하는 시를 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2년, 한창 근대화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근대화의 중심 공간인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생태적 비정함에 대한 성찰이 이하석 시인에 의해서 시작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수천 년 내려온 가난을 떨치겠다는 일념으로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이후 박정희의 개발 독재 앞에서는 아무도 환경 오염에 대해 지적을 할 수가 없었다. 경제개발을 통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 건설이 박정희 정권의 최대 목표였기 때문이다.

나라가 근대화되어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소비가 미덕이 된 시대에 이하석의 ‘투명한 속’은 한국 시단에 많은 메시지를 던졌다. 이후 수많은 시인이 생태 문제, 생명성에 관한 탐구, 그리고 환경에 관심을 가진 후 삶의 주변 모습들을 살피며 본격적으로 생태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풍요로운 소비사회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봉사해야 할 것들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있다는 쓰디쓴 자각이 일반화되었다. 원자력 발전소 부근 사람들이 이름 모를 병에 걸리고 장애아를 낳고 가축들은 물론 강이나 바다의 물고기들이 기형으로 변하고 있음을 고발하였다. 이제는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들이 중금속에 오염되어 결과적으로 인간의 탐욕이 자연과 인간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해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현대문명의 가장 큰 동력인 석유산업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고 무분별한 개발 또한 인간과 자연을 함께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인식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듯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추구해온 문명사적 발전을 통한 환경 파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통찰에 이르고 있지만, 여전히 인류는 이러한 반성이 개선을 위한 실천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국의 발전에 골몰할 뿐 선뜻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1992년 ‘리우선언’ 이후 전 지구적으로 환경보전을 위한 대책 마련에는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환경 개선을 위한 실천에는 인색하다. 이를 방관하면 지구의 미래에 끔찍한 재앙이 닥쳐오리라는 것에는 국제사회의 이견이 없지만, 여전히 푸른 행성 지구를 살리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최근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어느 때보다도 지구의 환경 위기를 심각하게 논의했지만, 아직도 국제사회가 실행하려는 데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걱정된다.

1990년대 한국문학의 큰 화두였던 ‘생태 문학’, ‘환경문학’, 또는 ‘생명 문학’이 한차례 유행처럼 지나가고 난 뒤 보다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논의되고 관심을 가져온 생태문학은 단순하게 환경을 보호하자는 캠페인 정도의 구호를 넘어, 본질적으로 생명성 탐구가 더욱 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문단 주변을 살펴보면, 특히 한국문인협회라는 문단에서 가장 큰 단체에서조차 겨우 생태 문학에 대한 관심이 ‘환경보호’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생태 문학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상생이다. 오늘도 수많은 생명의 종들이 멸종해가고 있다. 생명체들이 사라지면 인간 홀로 살 수 없다. 결국 인류도 멸종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태 문학의 끝은 지구의 모든 생명들이 함께 번성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보다 심화시켜 생명성 탐구가 정신영역과 실천영역으로 확산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실천에 이를 때 그 가치가 분명해지고, 인간과 자연은 상생할 것이고, 지구도 더욱 푸른 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