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의가 세상을 항상 지배할 수 없으므로 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 중심세력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만든 강제규범이 법의 속성이기에, 사법 관료들은 집권세력이 원하는 사실과 선택적 정의를 기준삼아 법을 집행해왔다.

우리나라 사법 관료들도 국민들을 총살하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 일당 앞에 무기력하게 항복했고 충성하거나 동조하며 기득권을 공유했다.

5·18 광주학살의 진실을 끝내 팽개치고 떠나버린 전두환씨의 사망소식을 듣고, 문득 그 시절 일단의 청년학생들이 떠올랐다.

‘광주학살 5공비리 전두환 노태우 구속처벌을 위한 한총련 체포결사대’ 대원들이다.

5·18시민군의 후예임을 자처한 전남대 총학생회 선봉대 오월대의 핵심전력으로 구성된 80여명의 체포결사대는, 5·18민중항쟁 제13주기 전야제날인 1993년 5월 17일 금남로에 모인 광주시민들 앞에서 출정식을 갖고, 전두환 노태우를 체포해 광주로 압송해오겠다며 오랏줄과 깃발을 품에 숨긴 채 은밀하게 상경해 연세대로 집결했다.

체포결사대 80명은 서울지역 대학생 4천여 명과 연세대에서 5·18민중항쟁 제13주기 추모제를 개최한 후 23개 중대 3000여 명의 경찰병력에 맞서 연세대 정문 봉쇄선을 최선두에서 돌파하고 연희입체교차로를 돌아 노태우 집 앞 400미터 지점까지 진격했다.

어둠이 깔리고 연희동 진격투쟁은 끝났다. 그러나 체포결사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마당에 무슨 낯으로 광주에 내려가 시민들을 볼 수 있겠느냐며 투쟁을 멈추지 않고 연세대에서 철야농성을 이어갔다.

홍익대 등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연대하여 200명으로 늘어난 체포결사대는 20일까지 연세대 북문을 통해 전두환 체포를 수차례 시도했으나 몇 배 늘어난 경찰병력에 막혀 결국 거의 모든 대원이 부상을 입었다.

체포결사대원들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며 연세대 앞에서 연희동 주민들이 경찰 지휘부 멱살을 잡고 버텨준 덕분에 봉쇄선을 뚫었고, 연세대 북문에서 연희동 주민들이 마련해준 냉면과 빵을 맛있게 먹던 인생기억을 갖고 산다.

1995년 5·18특별법 제정의 불씨가 된 1993년 전두환 노태우 체포결사대 투쟁은, 사회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청년들의 정의로운 행동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사법 관료들은 정의를 고려할 만큼 자비롭지 않았다.

체포결사대 일부는 수배를 받아 결국 감옥을 갔고, 2년 뒤인 1995년 부활하여 전두환 노태우 구속처벌 투쟁을 다시 이끌었다.

부조리한 법도 수호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적 관점이나 인간은 행동할 때 항상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행동한다는 공리주의 또는 실정법만을 법으로 인정하는 법실증주의 관점에서 보면, 체포결사대 투쟁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맹자, 토마스 아퀴나스, 존 로크의 관점에서 보면 당대의 법이 학살자를 보호하는 도구로 전락된 시기이므로 전두환 노태우 체포결사대 청년들의 투쟁은 정당한 저항권의 행사였다.

5·18당시 승려로서 부상자를 돌보다 본인도 계엄군 총에 맞아 41년을 고통 속에 살면서도 5·18의 진실과 인권을 위해 싸웠던 희생자 한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보며, 체포결사대 청년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정의를 새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