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예술가를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 나선 길, 하필 가을비가 오락 가락. 바람 한번에 누렇게 들뜬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져 날린다. 떨어져 날린 만큼 겨울은 한발짝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지만 그가 생각하는 예술행간들이 궁금해 서둘러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춥지만은 않았다. 더욱이 젊은 화가들일수록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만날 작가 역시 그런 취지에서 실행된 것이다. 더욱이 그가 이뤄내는 작품세계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와는 전시 소식으로 간혹 대면한데 그쳤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자주 보아온 터라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광주 광산구 소촌동 소재 소촌아트팩토리에서 ‘시간 여행자의 섬’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3일 개막, 오는 18일까지 일곱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전남 함평 출생 서양화가 서영실(36)씨가 그다. 애초 작업실이 있는 남동으로 갈까 하다 작품이 모두 전시장에 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촌아트팩토리를 찾게 된 것이다. 전시실 한쪽 의자에 앉아 있던 그를 10일 오전 만나 창작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



전시장에 도착해 먼저 그의 작품을 둘러봤다. 이번 개인전에는 드로잉 30여점을 포함해 본 작품 20여점 등 50여점이 출품돼 선보이고 있다. 타이틀인 ‘시간 여행자의 섬’에 대한 설명부터 읽어내려갔다. 전시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작가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변화를 거쳐왔는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작가에 따르면 시간 여행자는 동시대인으로 가정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되고, 섬은 동시대인들의 서식지로 동시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의 의미다. 현재의 작품 패턴에 이르기까지는 몇차례의 변화를 거쳐 자신만의 세계를 일군 것으로 풀이됐다.

그는 대학재학 시절을 포함하면 채 20년이 안되는 작업 기간이지만 드로잉 기법을 차용한 아크릴화 등 대략 세차례의 작업 변화를 거친다. 그는 말이 드로잉이지 채색화에 집중하던 시기(2004∼2013)와 사라져가는 소재에 대해 기초를 잡아가던 시기(2014∼2016), 작업의 확장을 꾀해온 시기(2017∼현재) 등을 거치며 그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 왔다. 이 대목에서 이렇게 젊은 작가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뚜렷하게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가는 문맥은 반가웠다.

‘골목길-남동’

대개의 화가들이 유년시절부터 미술을 시작했던 것처럼 서 작가 역시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미술에 눈을 뜨기 시작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입시미술을 통해 미술대학 진학을 꿈꾸면서 화가에 대한 목표가 정해진 듯 보였다. 소묘부터 익히고 수채화에 몰입했다. 서양화 전공으로 진학하고 싶어서였다.

앞서 세 시기로 나눠 작품세계를 언급했지만 그의 기법이 궁금해 질문을 했더니 대학 졸업 후 5∼6년 동안 드로잉부터 시작했고, 작업 환경과 재정 문제 등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간단한 작업들 중심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다 30세가 넘어 지금의 기법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그냥 회화 같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가져갈 수 있다. 가령 전봇대 전깃줄이 작품 안에 설치(표현)돼 있는데 이는 회화에 그 자신이 줄곧 매력을 느껴온 판화를 화면에 반영하고 있어 다른 느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그는 일찍부터 회화와 판화의 접목을 꿈꿨다고 귀띔했다. 학부시절 판화를 공부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젊은 작가이지만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다. 아직 젊어서 풋풋한 서투름이 느껴질법도 한데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작품을 보면 작가가 이처럼 젊었다는 게 오히려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회화와 판화의 접목은 상보적 역할을 통해 그 서투름을 보완하는 듯한 인상이다. 명제 또한 감성 위주의 접근이나 난해함 대신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다. ‘섬이 된 바위’나 ‘하루의 끝’, ‘시간 여행자의 섬’ 등 생각하게 하는 명제들이어서 경박해 보이거나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이들 작품 역시 구상을 한 뒤 드로잉을 하고, 색상을 올리며 밑작업을 거쳐 적합하게 건조된 상태에서 조각을 통해 완성된 것들이다.

‘무등일월도’

다시 그의 작품세계를 언급했다. 아크릴화 혹은 채색화를 하던 무렵, 인물과 체세포(인체 세포)를 소재로 했다.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삶을 그려내고자 하는 취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소재로 하던 무렵, 주로 대인시장 등 퇴락한 도시 풍경에 천착했다. 그가 대인시장과 인연을 맺은데는 이곳의 임대료 등이 다른 도심보다 저렴해 작가들이 많이 모여있는 지역이어서 서 작가도 이곳에 머무르며 작업을 했고, 2015년 1년간 이곳에서 입주작가를 지내게 됐다. 그는 대인시장 시절을 본격적 회화의 출발 시점으로 꼽았다.

“대인시장은 제게 여러 영향을 끼쳤고, 전환점이 된 곳이죠. 작업실을 처음 얻은 곳이었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작업세계를 구축한 곳이었으니까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천착한 계기가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보면 됩니다. 어느 날 우연히 나무전봇대를 접한 것이 단초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제 생각에는 나무전봇대를 보며 자란 세대가 아닌데도 나무전봇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본 것이죠.”

그는 이 나무전봇대를 단순한 전봇대로 바라보지 않은 듯하다. 이 나무전봇대는 현대역사와 함께 했을 것이고, 소시민들의 삶을 모두 지켜봤을 것이기에 가볍게 보아넘기지 않은 것이다. 각별하게 인식하며 작품에 형상화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 그가 말하는 작업의 확장 핵심에는 사라져가는 소재에 대한 기록보다는 ‘왜 사라져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자리한다. 그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층위들은 대개 퇴락한 골목풍경과 멸종됐거나 멸종위기종인 한국 동물들 그리고 개발되고 있는 도시 풍경으로 귀결된다. 이런 그가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소재가 무엇일까’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는 크게 작업방향은 이미 잡은 듯 보였으나 구체적인 방향은 이번 출품작 중 ‘무등일월도’에서 찾은 듯 싶다. 미술의 의미와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일월도’ 방식을 차용할까 해요. 시간의 개념을 확장하는 도구로 삼아보려고 하죠. ‘무등일월도’는 100호로 올해 신작인데 제 역량을 다 쏟은 작품입니다. 전시를 앞두고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은데다 한없는 부담을 이겨내야 했기에 작업하면서 너무 힘들었죠. 노동 강도도, 정신적 부담도 엄청났구요. 아울러 이같은 미술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미술은 제게 현재 1순위이에요.”

일곱번째 전시가 열리고 있는 소촌아트팩토리에서 포즈를 취한 서영실 화가

그가 의미부여를 망설이지 않은 ‘무등일월도’는 정주공간인 광주를 확실하게 해둬야 겠다는 생각으로 임한 작품이다. 구도심과 신도심, 멸종 동물들, 광주천, 초록 옥상, 광주인의 삶을 소나무 두 그루가 내려다보는 풍경이 눈에 띄는데 한국적 민화 형식을 가져가면서 광주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을 시도한 것이다. 그는 힘들게 작업한 작품은 기억이 남는다고 발언한다. 이 발언을 뒷받침하는 작품이자 지금 봐도 복합적 감정이 이는 작품이라고 손꼽았다.

마지막으로 ‘훗날 어떤 작가로 평가받고 싶냐’라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죠. 나이가 들어도 열정은 물론, 도전하는 작가로 평가를 받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