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 태양이 작열하고 장마가 길어지는 올 여름, 새벽이면 울려오던 카톡소리!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연 꽃 사진을 보내오는 지인의 수고로움은 입가에 평온한 미소를 머금고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몽롱하게 교차되는 통영 앞 바다 언덕에 위치한 작은 묘비 ‘처염상정’(處染常淨)! 비록 연꽃이 더러운 진흙탕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는다는 것과 처한 곳이 더럽게 물들어도 항상 깨끗함을 잃지말라는 의미를 담은 윤이상의 묘비명이다. 생전에 “나의 음악은 경쾌하지도 않고 차라리 정의를 향한 절규 그리고 아름다움에의 호소에 더 가깝다. 거기에는 억압된 자들을 위한 위로와 외침이 있다. 나는 음악가이기 전에 양심과 정의감을 굳게 지키는 인간이고 싶다.”고 절규했던 윤이상의 정신세계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네 글자이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여러 형태의 작품을 통해 과거 현장의 사건과 인물을 만날 수 있어서다. 특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역사의 예가 많고 이는 후일 예술작품으로 반드시 남겨짐을 본다. 프랑스 대혁명의 승리를 발판삼아 정의라는 미명하에 온갖 전횡과 과격한 정치를 계속하여 독재권력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로베스 피에르’의 단두대의 공포정치, 스탈린의 대숙청,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러시아의 데카브리스, 중국의 문화혁명, 튀니지의 쟈스민 혁명, 현재도 진행 중인 아프카니스탄과 미얀마의 상황 등을 우리는 알고 있다. 최근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여순사건’, ‘제주4·3’, ‘5·18 민주화 운동’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며 진실이다. 우리가 꿈꾸는 정의는 무엇일까?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부터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순천지역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무력 충돌 및 이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여순사건 특별법이 공포돼 2022년 1월 21일 본격 시행됨에 따라 여수·순천 10·19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의 길이 열리게 되고 가슴에 담고 살아야했던 많은 기록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여순사건이 본격적으로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시점은 1998년 여수 민미협의 활동이 시발이 됐고,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 여순사건을 거쳐 6·25전쟁 중 좌우익의 갈등과 민중의 처절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여순반란사건이 여순사건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 계기가 ‘태백산맥’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르포소설 ‘여수역/허공(박지영)저’, 연극 ‘손가락 총’, 창작 오페라 ‘1948년 침묵’, 베를린 인권 영화제 출품작인 ‘동백’, 김영랑 시인의 ‘새벽의 처형장’과 ‘어느 날 어느 때고’, 발레 작품 ‘애기섬’ 등이 있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3특별법에 따라 제주 4·3평화재단이 설립됐으며, 2000년 1월에 공포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실시됐다.

제주 4·3사건이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것은 가용백 화백의 ‘젖먹이’, ‘동백꽃 지다’, 게임으로 역사를 고발한 ‘언 폴리드:동백 이야기’, 영화 ‘지슬-끊이지않는 세월 2’, ‘비념’, ‘레드헌트’, 미군이 현장을 촬영한 13분 짜리 ‘제주도의 메이데이’, 소설과 연극, 오페라로 탄생한 현기영의 ‘순이삼촌’, 현기영의 소설 ‘길.고향’, 연극 ‘잃어버리린 마을’, ‘협상 1948’, 다큐멘터리 ‘소리없는 기억’ 등을 탄생시켰다.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은 1995년 12월 21일 법률 제5029호로 제정, 시행됐다.

예술작품으로 승화는 소설 분야에서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한강의 ‘소년이 온다’, 박상률의 ‘통행금지’, 박혜강의 ‘꽃잎처럼’, 김상윤과 정현애의 ‘녹두서점의 5월’이 있다. 영화로는 ‘택시 운전사’, ‘화려한 휴가’, ‘아들의 이름으로’가 개봉됐다. 음악으로는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하라’, 5·18창작 오라토리오 김성훈의 ‘빛고을 아리랑’, 김선철의 오페라 ‘무등둥둥’, 판소리 ‘윤상원 歌’가 있다. 뮤지컬로는 광주문화재단이 제작한 ‘광주’와 ‘빛골아리랑’이 무대에 올려졌다. 무용작품으로는 임지형 현대무용단의 ‘무등 판타지’와 광주시립발레단의 ‘오월바람’이 있으며 연극분야에서는 ‘휴먼푸가’, ‘시민군 삼촌 윤상원’, ‘반성문 살인추억’, ‘언젠가 봄 날’, ‘푸르른 날에’, ‘애꾸눈 광대’가 있다. 광주문화재단이 제작해 에딘버러에 출품한 ‘쟈스민 광주’는 5개의 별을 받기도 했다.

많은 브랜드 작품은 수정과 반복을 통하여 탄생하게 된다. 우리는 조급하게 완결판을 바라며 또한 비판한다.명작의 탄생을 위해서는 기다리며 응원해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 사건들은 과거의 아픔과 슬픈으로만 기억 되어서는 안된다. 과거에는 반란과 사태로 규정했지만 진실이 밝혀지며 혁명과 운동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문화예술로의 표현과 절규의 몸부림 속에서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

제주 돌 문화공원에 새겨진 ‘수급불유월(水急不流月):급한 물살에도 달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글귀처럼 세찬 풍랑과 물결에도 본질이 변질되지 않고 인생은 유수와 같이 흐르지만 진리는 흘러가지 않는다는 역사인식을 새겨보며 역사의 진실이 보다 많은 예술작품으로 탄생돼 아픈 삶과 역사가 치유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