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가장 당연하면서도 불편한 순간을 꼽자면 바로 어떤 곳에 들르든 ‘출입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다. 방문한 시간과 연락처, 거주지를 작성하고 개인정보 수집 동의에 체크를 한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명부라지만, 생활 이동 동선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것만 같아 찝찝한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이 최소한의 안전장치인지, 아니면 국가의 통제수단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팬데믹 상황 속, ‘감시와 통제’ 혹은 ‘사생활 침해’라는 가치충돌의 이면을 낱낱이 드러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는 11월14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6관에서 열리는 지역아시아작가전 ‘친애하는 빅 브라더: 다시는 결코 혼자일 수 없음에 대하여’가 그것이다.

전시의 부제 ‘다시는 결코 혼자일 수 없음에 대하여’란 다소 섬뜩한 문장을 되뇌며 전시실로 입장한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여러 화면 속에 등장하는 요상한 사람의 모습이다. 화면 속 인물은 침팬지 흉내를 내기도 하고, 고양이처럼 포즈를 취한다. 또 가만 앉아 한참을 앉아있다 돌연 다리를 추켜 세워 춤을 추듯 움직이기도 한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활동하는 아이사 혹손은 동물원 우리 속 동물들의 상황을 고스란히 흉내 낸 작품 ‘동물원’을 선보이고 있다. 각 채널 속 5명은 4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줌’을 통해 각자의 거처에서 작업을 이어왔다. 5명이 8시간씩 총 40시간 동안 자신을 온전히 노출시킴으로써,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영상으로 담아냈다. 소수가 다수를 통제하고, 다수가 소수를 감시하는 이 시대의 명암을 목격할 수 있다.

하산 엘라히 作 ‘수천의 리틀 브라더’와 연작 ‘구’

반면 감시 상황을 역으로 이용,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내보이는 작품도 자리했다. 전시장 한 벽면이 빼곡하게 1만8000여장의 사진으로 채워진다. 하산 엘라히의 ‘수천의 리틀 브라더’다. 작가는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으며 감시가 시작되자, 차라리 나를 ‘오픈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이 먹은 음식, 다녀온 곳부터 계좌와 변기통까지 몇 년의 일상을 올렸고 이를 출력해 내걸었다. 벽면 전체를 멀리서 바라보면, 노랑 파랑 초록 빨강 등 TV화면 조정 색깔이 연상되는 컬러바가 눈에 띈다. 매체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작가의 숨은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옆으로는 인공위성 형태 혹은 폭탄과도 같아 보이는 검은색 기계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수 개의 모니터에는 ‘수천의 리틀 브라더’에 나오는 사진들이 5초마다 바뀌며 재생된다. 의자가 마련돼 있어 누워서 감상하는 시스템인데, 이 불편한 감시 상황을 안락한 의자에서 편안하게 둘러보는 모순을 경험할 수 있다.

또 중국 작가 아지아오·쉬 원카이의 작품은 한 벽면엔 ‘404’란 숫자가 반복적으로 적혀 있다. 여기서 404는 중국에서 차단된 웹사이트에 나타나는 오류메시지다. 흰 벽면 가득 오류메시지가 떠 있고, 중간에는 롤러가 걸려있다. 궁금한 마음에 롤러를 들고 죽 긁자, ‘404’ 메시지가 작품 위로 덧씌워진다. 금방 칠한 것이라 다른 이들이 한 것보다 더욱 진하다. 롤러로 메시지를 훼손하는 것은 정보 통제에 대한 반기이나, 롤러마저 ‘404’로 칠해지는 것을 보면 404 메시지의 증폭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아이사 혹손 作 ‘동물원’

이어 이연숙 작가의 ‘보이는 보이드’ 앞에 서자, 동행하던 전시해설사가 얼른 입장해 보라 한다. 작품은 긴 커튼으로 가림막이 쳐진 미로처럼 X자로 길이 나 있다. 쭉 걷자 중간쯤에 유리로 된 막이 있어 뒤따라 온 해설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허나 서로를 마주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오직 반대편에서만 보이는 형식이다. 투명 유리가 아니라 특수 제작된 거울로, 한 방향에서 감시만 가능한 구조다. 영화 속 범죄자를 취조할 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지만 밖에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를 생각하면 쉽다. 하얀 커튼 아래로는 자그마한 종이 달려 있어 관람객이 움직일 때 마다 짤랑거린다. 자신의 동선을 숨길 수 없는 이 시대 사람들의 존재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이연숙 作 ‘보이는 보이드’

또 도쿄팀 ‘침↑폼’의 프로젝트 ‘벽으로 이뤄진 세상’은 코로나19 상황 속 세계를 여행하지 못하는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2011년 3월 일본의 대지진 당시 미술관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선, ‘예술의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좇으며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침↑폼’은 원래 미술관의 흰 벽을 상징하는 퍼즐 조각을 세계 곳곳의 장소, 계층, 인종들의 삶터에서 얻은 조각들과 맞바꾸는 작업을 이어왔다. 허구의 미술관 벽이 살아있는 존재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의 변신에 초점을 둔 것이다. 허나 이번 전시에서는 각국에서 모아 온 퍼즐을 전시하는 대신, 다큐멘터리 영상만 보여줌으로써 움직임에 제약을 받는 현재 상황에 답을 내고 있다.

이밖에도 CCTV를 피해 사람들이 ‘사라질 수 있도록’ 돕는 퍼포먼스 덩 위펑의 ‘사라지기 운동’, 현 상황을 영화 ‘트루먼 쇼’에 빗대어 표현한 임용현 작가의 ‘달콤한 트루먼’ 등 아시아 예술가 8팀의 총 10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10월2일부터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한길석 교수(중부대), 서동진 교수(계원예술대), 주하영 교수(전남대)의 강좌가 마련되고, 마지막 23일에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이연숙, 임용현 작가와의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