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비엔날레 현장을 가보면 각 대회마다 특징이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감독과 각 코너의 기획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직전 디자인비엔날레가 휴머니티를 통해 근본적인 디자인 가치와 역할을 깊게 탐구하며 지속가능한 사회와 인류 공동체를 위한 디자인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비중을 뒀다면, 올해 아홉번째를 맞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포스트 코로나시대와 4차 산업혁명시대 등 변화의 물결 속 미래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데 중점을 두는 가운데 기술과 감성의 콜라보를 디자인 속에 구현하는데 치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개막 당일 둘러본 전시장 곳곳에는 실제 그런 전시의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여기다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인류의 비대면적 생활 방식의 변화에 대한 참여작가들의 고민 행간도 읽혀졌다.
과거에는 아트와 산업의 부조화로 인해 순수비엔날레인지, 디자인비엔날레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비판적 시각이 일부 존재했었지만 그때에 비하면 이번 전시는 확실하게 산업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각 공간의 특징들은 선명했지만, 아트와 산업의 중간 지점이 구축되지 않아 보였다.
 |
| 제1전시장의 각종 의자 작품들 |
또 이 지역 출신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사공도의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중 웅혼과 충담을 소재로 음양의 조화, 동양미학의 정신을 상징화한 ‘DNA 산수’ 역시 높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십사시품을 활용한 회화들이 작가의 세포 데이터로 재현되며, 역사와 생명의 흐름 속에서 자아가 존재하기까지의 과정을 역추적하는 발상이 돋보였다.
 |
| 김상연의 ‘우주를 유영하는 고래’ |
제2전시관(국제관)은 전반적으로 원형을 주요 콘셉트로 사용한 듯했다. 그 원형 위에 레게 스크랩북과 레게 책의 세계 등으로 구성된 ‘할 말이 너무 많은, 밥 말리의 구전 역사’ 등을 만날 수 있었다. 둥근 물건들의 홍수였다.
필자에게 또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작품은 제4전시관(체험관)의 조수미 홀로그램 미니콘서트(씨어터)였다. 예술의전당이 출품한 이 미니콘서트에서는 ‘빛으로 그린 노래’라는 타이틀로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르고’와 ‘나 가거든’, ‘인형의 노래’ 등 세곡을 감상할 수 있다.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르고’는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로 모짜르트 곡이며, ‘나 가거든’은 드라마 ‘명성황후’ 삽입곡으로 대중들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인형의 노래’는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올랭피아의 아리아로 오펜바흐의 곡이다. 작품의 음향적 효과와 몰입도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몰입형 사운드 시스템을 채택해 조수미의 생동감 넘치는 음색과 제스처로 인해 실제 공연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 역시 관람객들에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4전시관(체험관)에서는 서체 전문 기업 윤디자인그룹의 타이포 브랜딩쇼 스튜디오(엉뚱상상·꼴값쇼:레터빌런의 침공) 및 NC문화재단(프로젝토리), 포르쉐코리아(드리미스 온), 기아(opposites united) 등이, 제5전시관(지역산업관)에서는 오은식(AI 청자편종) 등이 각각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 지역 작가들인 제1전시관의 김은주의 5·18을 반추한 ‘치유되지 않은 빛’, 허달재·박일구 작가가 합류한 ‘오월 빛고을 향기’, 한선주(‘봄날은 온다’), 제3전시관(AI관)의 김상연(‘Sea Saving Whale’), 정정하(‘빛을 모으는 또 다른 방법’) 등도 발길을 붙잡았다. ‘오월 빛고을 향기’는 5월 광주를 상징하는 이팝나무의 향을 채취해 향기와 빛을 통해 구현하고 있고, ‘봄날은 온다’는 코로나19 이전의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진정한 봄으로 상정했다. ‘Sea Saving Whale’는 유영하는 고래의 이야기를 형상화했다.
 |
| 조수미 홀로그램 미니콘서트(씨어터) |
전시장에서는 시각적 작품이 주도하나 어쩌면 청각 등의 컨디션이 더 좋아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왜냐하면 아트와 산업이 공존하는데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인간과 인공지능(AI) 등이 함께 공존해 복합적으로 표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전시 일정에 돌입한 상황 속 일부 작품의 테스트가 계속되고 있어 일반 관람객이 들 즈음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까 우려됐다. 프레스데이 또한 전시기간에 포함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작품의 난이도에 따라 작업의 완료는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개막일까지 작업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개막일은 전시 준비가 완벽하게 다 마무리된 이후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여기다 각 전시장과 전시장을 이동하는 통로에는 그대로 텅 빈 채 활용되지 않아 아쉬웠다. 정적인 각 갤러리보다 어쩌면 훨씬 더 동적인 구성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전시장치가 되지 않아 다소 단조롭고 무료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여파로 시대적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해설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아 아날로그 세대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당장 큐피커(Qpicker·스마트 폰을 이용해 비대면 전시해설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다운받는 것부터가 어려워 문제일 수 있어서다.
 |
| 광주비엔날레 제1전시장 앞 광장 끝자락 계단 모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