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대 초반에 창립한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시창작 동아리 ‘비나리패’의 문예운동을 조명한 정명중씨의 ‘전남대 비나리패의 문예운동’(문학들 刊)이 트랜스로컬 감성총서 두번째 권으로 출간됐다.

1980년 5월 이후 광주는 변혁을 꿈꾸는 민중들의 열망으로 들끓기 시작한 가운데 전남대 국문과의 몇몇 청년들을 주축으로 그러한 열망에 예술로써 마땅히 응답해야 함을 직감한 것이 계기가 돼 ‘비나리패’라는 문예운동조직의 결성으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민중들에 대한 청년들의 열정 그리고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이 더해지면서 결성이 급물살을 탄다.

결성에 가담한 대학생들은 “구원의 노래, 해방의 몸짓”을 기치로 내걸고, 삶으로서의 예술 또는 운동(정치)으로서의 예술을 주장하며 한국문학의 토양에 만연한 반시대성을 맹렬히 고발한다. 한국문학을 새롭게 양식화하겠다는 포부를 천명한 셈이다. 당시로서는 꽤 전위적이고 의욕적인 목소리였다는 평이다.

비나리 선언인 ‘삶의 터전으로서의 노래와 해방의 메시지’에서 그들은 “우리 전통의 공동체 문화의 민요양식인 비나리가 개인적 체험이 민중적 체험으로 보편화돼 민족의 삶을 예술로서 표현하고 집적시켜온 고유의 문학전통"이라면서 "삶에 대한 의지와 정서가 관념적으로 분해되지 않고 비는 사람의 의지가 객관화돼 왜곡된 허상 없이 오직 인간의 능력을 스스로 다지기 위해 울려 퍼지는 구원의 노래이자 해방의 몸짓”이라고 밝힌다.

이처럼 한때 강직했던 시대에의 신념을 가졌던 비나리패는 세간의 평가를 찾을 수 없는 등 잊혀져갔다. 이는 우선 1980년대 학생운동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던 청년(학생)문예운동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 자체가 일천하며, 비나리패가 특정 학과의 학생 중심으로 결성된, 소위 아마추어 문예동아리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비나리패는 1980년대 말까지 일종의 동인시집인 다섯 권의 ‘비나리글마당’을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조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펴낸 책은 ‘비나리패와 80년대’, ‘비나리패의 실험들’, ‘비나리풍에 대하여’, ‘새로운 양식화 작업의 향방’ 등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비나리패와 80년대’에서는 비나리패의 결성 과정, ‘비나리’라는 명칭의 의미, 민요를 비롯한 전통예술에 대한 비나리패의 관심 등을 다뤘다. 이어 ‘비나리패의 실험들’에서는 구술성과 서사성에 대한 지향이라는 맥락에서 그들의 장시, 연작시, 공동창작시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으며, ‘비나리풍에 대하여’에서는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관통한다고 생각되는 몇몇 경향성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양식화 작업의 향방’은 본격적인 논의라기보다는 그들이 내세웠던 '한국 문학의 새로운 양식화 작업'이 잠정적으로 좌초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사적 맥락을 간략하게나마 탐문한 것이다.

저자인 정명중씨는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 논문으로 ‘인식되지 못한 자들, 혹은 유령들 : 5월 소설 속의 룸펜’, ‘괴물의 탄생 : 신자유주의, 유연성 그리고 지존파’, ‘신자유주의와 자기서사’, ‘역사를 뚫고 솟아난 귀수성의 세계 : 신동엽의 금강 읽기’, ‘국가폭력과 증오체제’ 등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신자유주의와 감성’이 있다. 현재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및 호남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