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의 끼 많은 ‘아재’들이 의기투합했다. 근로복지공단과 KBS가 공동주최하는 ‘제42회 근로자 가요제’에 출사표를 던진 것. 메탈이니, 록이니 노상 ‘시끄러운’ 음악만 하던 밴드로서는 색다른 도전임은 분명했다. 퇴근 후 시간을 쪼개 만나 합을 맞췄고, 설마 하면서 지원한 예선에서는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왕 나선 김에 광주전남의 저력을 보여줄 대통령상을 꼭 거머쥐겠다는 포부도 대단하다. 9일 본선 무대를 앞두고 있는 직장인 밴드 ‘스틸’(STILL) 이야기다.
‘스틸’은 기타 김광일 (46·온세미디어), 베이스 강철성(46·더박스), 보컬 김현국 (45·한국환경공단), 드럼 김창헌 (41·녹색에너지연구원), 키보드 박경만(38·한국전력공사)씨 등 5명으로 이뤄진 밴드다.
대한민국 최고의 록밴드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실 속에서 조금씩 닳아버린 꿈은 이제 취미가 돼 인생의 활력을 선사한다. 그렇게 음악으로 멤버들 간 인연을 맺은 게 벌써 20년이 넘어선다.
1996년 그 시절에는 광주신세계백화점 앞 간이 무대에서 공연이 성황이었다. 그때 ‘스틸’이 단골로 올랐는데, 하나 둘 팬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당시 송원백화점에서도 ‘러브콜’이 와서 두 탕을 뛰는 일도 잦았다. 좋아하는 연주나 실컷 하면서 살았던, 청춘들의 호시절이다.
다들 나이를 먹으면서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갔다. 직장을 얻었고 또 저마다 가정을 꾸렸으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틈만 나면 이뤄졌던 합주 횟수가 줄어, 한 달에 한 번 꼴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로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음악이지만, 그래도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밴드가 있기에 더없이 귀한 연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스틸’은 록밴드 ‘드림씨어터’나 ‘엑스 재팬’ 등 센 음악을 했다. 친구나 가족들에게 들려주면 “오메, 시끄럽다” 핀잔이나 들을 법한 취향 타는 곡들이다. 때문에 ‘근로자 가요제’에 출전 소식을 알렸을 때 주변에서 놀란 것은 당연하다.
스틸은 이번에 완전하게 태세전환을 했다. 전국 규모의 가요제인 만큼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곡을 꼽은 것. 출전 곡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다. 보컬 김현국씨는 “지금껏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만 했다면, 이번에는 모두가 좋아할 만한 곡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쩌면 지금껏 비주류의 음악을 하면서 괜한 자부심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대중적인 곡을 연주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연주에 디테일을 살리는 데 집중하면서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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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스틸은 “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연주를 선사할 것이다. 그야말로 아재들의 ‘파이팅’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사실 이번에 ‘일’을 벌이게 된 것은 김씨의 공이 크다. 어느 날엔가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데, 눈에 띄는 자막 하나가 지났다. ‘근로자 가요제’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무슨 일인지 가슴이 콩콩 뛰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는 감정이었다. 곧 멤버들에게 전화를 싹 돌렸는데, 2명은 찬성했고 2명의 반응은 꽤 떫었다. 전국 단위의 가요제에 ‘우리 실력이 가당키나 하겠느냐’는 걱정이었다.
나머지 셋의 구슬림으로, 합주가 시작됐다. 함께한 시간이 있으니 서로의 눈짓만으로 박자를 알아챌 정도라서 연주는 순항을 탔다. 지난 3월 연주동영상을 제출하는 ‘온라인 경연’에서 예상치 못하게 합격했고, 이후 KBS에서 치러진 현장예선에서도 떡하니 붙었다. 전국 각지에서 1000여 팀이 지원했고, 그 중 13팀만이 본선 행 티켓을 쥐었다. 그 중 ‘스틸’이 한 자리를 꿰찬 것이니, 이미 도전에 대한 결실은 달콤하다.
본선 무대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각자 업무를 마치고, 또 아이가 있는 집은 ‘육아퇴근’을 하고서 하나 둘 연습실로 모인다. 다 모이면 늦은 밤 9시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라 지친 모습이지만, 합주가 시작되면 또 에너지가 퐁퐁 솟는다. 음악이 멤버들에게 주는 힘이다.
이들은 “음악은 어릴 때부터 함께해 온 가장 오랜 친구다. 일상에 지치고, 또 고된 업무에 시달린 하루를 보냈더라도 조용히 음악을 듣는 일, 또 함께 만나서 합주를 하는 이 시간들을 즐길 수 있어 소중하다”며 “지금껏 음악으로 얻은 긍정의 에너지를 무대에서 쏟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연주를 선사할 것이다. 그야말로 아재들의 ‘파이팅’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이들 도전의 결과는 5월1일 ‘근로자의 날’에 KBS 1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9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는 ‘제42회 근로자 가요제’는 근로복지공단과 한국방송공사가 공동 주최한다. 본선에서는 대통령상 700만원 1명, 대상(고용노동부장관상) 400만원 1명, 금상 각 200만원 2명 등을 시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