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힘 빼, 몸에 힘 빼라고!”

젊은 시절 연습 내내 들었던 지청구다. 자다가도 경끼 일으킬 정도로 어찌나 많이 들었던지. 도대체 힘 빼라는 말이 뭔지. 난 분명히 힘 뺀다고 빼면, 벼락같은 다그침이 좀 전보다 두배 세배 더 크게 울린다.

“힘 빼라고 했지, 힘 없이 하란 말이 아니잖아. 그렇게 하면 대사가 들리겠니, 힘을 빼라는거지 목소리를 줄이라는게 아니야. 다시!”

눈물이 글썽인다. 주저앉고 싶고, 어떤때는 까짓것 그만두지 뭐! 연습시간이 지옥 같았다. 화려한 조명 빛으로 생동감있게 튀어오르는 침방울과 모근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의상에 흠뻑 젖고 나면 ‘아! 잘했다. 오늘 공연 정말 잘했구나!’라고 스스로 응원하며 눈물같은 땀 덕분에 오랜세월 잘 견뎠다.

한삼자락 휘리릭 내 던지는 한 순간이 춤이고, 빈 공간에 찍힌 한 점이 그림이고, 숨 한번 길게 내뱉는 지점이 말이 되는 연극, 힘을 뺀다는 건 여백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는 것이구나! 젊은 날 치열하게 오랜 시간들을 거쳐왔기에 가능한 그 지점이 예술이다. 최진석 철학자의 말을 빌어오면 그 순간이 ‘고요’라고 했다. 오르고 내리는 어떤 지점의 그 순간이 고요. 예와 술의 그 사이 고.요!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2020년과 2021년 사이에서 고요함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사에서 2020년은 꽁것이니 물려달라고 떼를 쓸수 없다. 일말의 알아차림도 없이 보이지 않는 것에 왕 펀치 맞은 듯 휘청휘청 주저앉기도 주춤주춤 물러나기도 했지만 결코 손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힘 빼는 시간이었고, 고요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삶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음에 고마운 날들이다. 내가 아니면 안돼, 이거 아니면 절대 안 돼, 그건 택도 없는 거야. 모 아니면 도! 못먹어고 고고고! 삶의 목적이 뭔지도 모른체 무한질주로 달려왔던 길에서 핸들을 놓칠것처럼 우왕좌왕 할 때 밟고 있던 엑셀레이터를 떼고 나니 속도가 줄어들면서 주변의 경치가 보이고 이정표가 보였다.

“잘 쉬었다.”

2020년 내내 닫혀 있던 극장문을 열었다. 매년 3월이면 공연을 시작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단원들과 청소를 했다. 몇 년 묵은 짐을 다 끄집어 내보니 재활용해보자는 욕심으로 쌓아둔 세트들이 거의 쓸모없어졌다. 다 버렸다. 한결 가벼워졌다. 겨우 일년이지만 잘 쉰 덕분에 2021년 매달 공연계획 등도 세웠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파블로 피카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연극이다” (피터브룩)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눈은 눈을 볼 수 없다”(부처)



수십년을 견뎌온 세월, 스스로 힘을 빼는 고요를 아는 예술가가 자본주의 시대에서 경제적인 여유 즉 돈이 안되는 기초예술을 한다는 건 참 무척이나 힘이 드는 일이다. 무엇이 돈이 되는 방법인지, 어떻게 돈을 만들것인지 변죽을 울리지 않으면 생업인 ‘창작’을 할 수 없게 된다. 예술가에게 돈은 창작 그 자체다. 하지만 창작의 힘이 되는 돈은 권력과 추종자와 떼려야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변질 될 수 있기 때문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예술가들의 순수한 예술작업은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다. 반면에 생활예술은 날로 번창하는 소상공인들 같다. 능력있는 예술동아리는 전문예술단체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하며 전문예술가를 모셔가며 흉내내기 창작에 분주하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연극하겠다는 배우지망생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후원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통장으로 입금을 한다. 시민들이 연극소극장 거리 만들자고 캠페인을 벌인다. 광주기업들이 앞다퉈 돈을 대겠다고 한다네!’ 상상, 그 자체로 아름답다. 연극하길 참 잘했다!